아무튼 극에 달했다. <해시태그 시그네>는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를 연상시킨다. 샘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사랑에 빠져 자살했다는 인물처럼, <해시태그 시그네>의 주인공 시그네의 욕망은 극에 달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시그네의 닮은꼴을 볼 수 있다. ‘돋보이고 추앙받고' 싶은 욕망의 시그네들. 그들이 달려가는 궁극의 가치는 어디를 향한 걸까.
<해시태그 시그네, 원제: SICK OF MYSELF>(2022)는 노르웨이 영화다. 영화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보글리(1985)는 노르웨이 오슬로 출신으로 북유럽을 넘어,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은 영화를 연출 중이다.
“<해시태그 시그네>를 통해 관객이 호감을 느낄 순 없지만, 관찰하는 것이 즐거운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은 현대인의 일상과 문화 속에 있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를 녹여 낸다.
영화의 시점은 바로 지금을 사는 젊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스크린으로 마주하는 영화의 질감은 마치 전시대 아날로그 방식의 영화를 보는 듯, 장면 장면이 깊이감이 있다. 이는 감독의 예술적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감독은 옛날 영화 같은 느낌을 살리기 위하여 디지털이 아닌 35mm 필름을 고집했다. 아 얼마나 순박한 연출인지, 어쩌다 LP 음반으로 듣는 파바로티의 아리아 같은 진한 향수를 준다. 근래 좀처럼 극장에서 접할 수 없는 영화 질감이다. 그런데 이 질감이 주는 시각적 촉감이 별나게 매력적이다. 영화는 역시 필름 맛인 듯.
바리스타 ‘시그네’(크리스틴 쿠야트 소프)와 행위 예술가 ‘토마스’(아이릭 새더)는 동거 커플이다. 그런데 토마스가 행위 예술가로 주목받기 시작하자, 둘 사이에는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시그네는 점점 불안하다. 토마스의 관심 순위에서 점차 밀려나는 소외감이 결국 사고를 친다. 주위의 관심을 끌려고 시도한 피부병은 치유 불가능한 불치병이 되고, 삶은 되돌릴 수 없는 벼랑으로 치닫는다. 파국의 순간, 더 잃을 것이 없는 순간까지 감독은 시그네를 휘몰아간다. 지독한 연출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 나르시시스트야. 나는 나르시시스트가 아니야”라고 친구에게 당차게 말하던 시그네는 결국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자아도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해시태그 시그네>는 2022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호평받았다.
‘시그네’를 연기한 크리스틴 쿠야트 소프는 “시그네의 캐릭터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그네’의 바뀐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최소 2시간에서 길게는 7시간까지 분장을 받았던 것이 촬영 중에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통하여 유쾌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기 바란다”는 뼈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토마스’ 역을 한 아이릭 새더는 오슬로 국립예술학교에서 조각과 설치미술 등을 전공한 비주얼 아티스다. 그는 “오슬로는 다른 북유럽 도시들보다 더 활발한 예술계를 보유한 곳이다. 영화는 그런 오슬로 예술계를 약간 비트는 방식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며, 만족해했다.
감독은 요소요소에 ‘붉은색’을 주요 메타포로 사용한다. 피의 붉은색, ‘토마스’ 작품의 붉은 색, 그리고 ‘시그네’의 치명적 상처의 붉은색.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에 떠오른 붉은 태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