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데 인색한
받는 데 인색한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3.01.20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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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일. 정월 초하루.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거동이 불편하고, 늘 누워서 지내셨기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죽음은 갑자기 찾아왔다. 가족들 누구 하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아버지를 보냈다. 

경황이 없어 부랴부랴 장례식장을 정하고, 상조회사를 구했다. 
그날 오후, 상조회사에선 지인들에게 보내라며 부고장 형식을 보내줬다. 누구에게 보내지?
생각할 여유도 없어 다음 주 약속돼 있던 일들을 우선 취소하면서 대신 부고장을 보냈고, 최근 연락했던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 중의 한 명. 태백에 사는 친구에게는 부고장 대신 문자를 했다. 알고 지낸지는 얼마 되지 않아 부고장은 부담이 될 것 같았다. 짤막하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멀리서 기도해줘.’라고 만 보냈다. 문자도 보낼까 말까 망설였지만 무슨 일이든 함께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나 이번에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곤 잊고 있었다. 

문자를 확인했는지 장례 도중에 몇 차례 전화가 오긴 했지만, 받을 겨를이 없었고, 다시 전화를 걸지도 못했다. 다 이해해 줄 거라 믿고 장례를 다 치른 후 연락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장례 마지막 날. 장지를 가는 버스 안에서 문자를 받았다. 
‘너무 작은 거지만 받아줘. 꽃을 보내고 싶지만 대신 조의금을 보낸다. 잘 써주길 바라.’
그러면서 카톡으로 현금을 보내왔다. 

그 문자를 받자마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고장을 보낼지 말지 망설이는 대상에게 조의금까지 받기가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그 액수는 그들의 형편에선 꽤 큰 것이었다. 눈물 나게 고마웠지만 바로 답을 보냈다. ‘너무 크기 때문에 조의금은 받을 수 없다. 마음만 받을게.’

평소 그녀와 그녀 가족은 꽤 알뜰하다. 절대 불필요한 것이나 비싼 건 사지 않고, 필요한 것도 새 것보다는 주로 중고가게를 이용한다. 그런 그들이 1주일에 한 번 사치를 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먹기 위해 외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물가가 오르는 바람에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대신 집에서 만들어 먹자고 아이들을 설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에게 조의금을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가족과 몇 번의 외식을 더 하면서 행복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 보내준 조의금 액수는 그들에게 아주 귀중한 돈이었다. 
사실 같은 금액이라도 친척들이 준거라면 고맙게 받을 수 있지만, 그녀에게 그 돈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너무나 고맙고, 고마웠지만 미안했다.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이 일을 오빠에게 얘기했더니, 대뜸 그러는 게 아니라며 조의금을 받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 욕심에 그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은 주는 건 고맙게 받고, 혹시 나중에 그녀를 도와줄 일이 있으면 그때 마음 가는대로 하는 거라고 했다. 그게 관계를 이루며 사람 사는 방식이라며.

얘기를 듣고 보니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의 성격상 아이들과 외식을 하며 행복하게 보낼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섭섭할 지도. 

내가 그녀의 입장이 돼 생각해보니 더욱 선명해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냈는데 되돌아온다면 공돈이 생겼다거나 절약했다는 흐뭇한 마음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받지 않아서 꽤 섭섭하고, 이후 상대방에 대한 마음도 멀어질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조의금을 받지 않겠다는 문자를 보냈을 때 그녀도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잘 받지도 못하고, 잘 주지도 못했다. 마음을 주지 않았으니 누군가로부터 뭘 받는다는 게 사실 꽤 부담이었다. 이번에 부고장을 많이 보내지 못했던 것도 경황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그 ‘부담’이라는 것이 더 컸었다. 하지만 그 ‘부담’이라는 족쇄에 묶여 그동안 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멀어지게 했을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쿨(?)한 인간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 줄 모르는, 받는 데 인색한 사람이었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다시 조의금을 고맙게 받겠다며 얼른 송금 수락을 했다. 그리곤 그녀의 가족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산타클로스처럼 선물을 하나하나 챙겨 태백을 가면 그녀의 가족이 나를 위로해주며 따뜻하게 반겨주겠지. 
생각만으로 내 마음이 행복하다.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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