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갔고, 한 해가 왔다.
그래도 음력설이 지나지 않았을 때는 아직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지 않았다며 항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빼도 박도 못하는 2023년이다.
무언가에 떠밀려 한 해를 돌아보니 후회가 가득하다.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나이만 먹었다고 생각하니 초조함이 생긴다.
하지만 그 패배감을 뒤로 하고, 올 한 해를 계획해본다. 내년 이맘때는 좀 나아질까?
그러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연초 그렇게 굳은 결심을 했건만 한 해를 돌아보면 또 똑같은 후회와 초조함만이 남는다.
설령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생각만큼 기쁘지 않다. 고작 이걸 하려고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살았나 싶은 허탈감이 찾아올 뿐…
때문에 언젠가부터는 달력의 날짜를 계산하지 않는다.
연말 제야의 종소리도 듣지 않고, 새해 아침의 해돋이도 보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다보니 간혹 내 나이가 얼마인지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그냥저냥 살다보면 발전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인간이 발전한다는 건 뭘까? 월급이 좀 더 오르고, 더 좋은 옷을 입고, 좀 더 멋있는 차를 타는 것?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쓴 김영민 교수는 W.G 제발트의 작품 『아우스터리츠』를 인용하면서 인류 발전의 심각한 회의를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시간의 흐름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관점이라고 주장한다.
초조하게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이의 1분, 1초가 다른 사람들보다 길게 느껴지는 것처럼.
또는 누군가에게 1년이 1시간처럼 짧게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
당연해 보이는 시간의 흐름이 인간의 관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깨닫는다면 비로소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것 역시 나의 관점대로 자유로이 운용할 수 있다면 지금이 2022년이든, 2023년이든 뭐가 중요할까?
때가 되면 되돌아봐야 할 지난해도 없고, 세워야 할 계획도 없다면 스스로를 책망할 후회나 자괴감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문득, 예전에 읽었던 로랑 그라프의 『매일 떠나는 남자』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 트렁크를 사고, 책을 사고, 심지어 여행 중 생길지 모르는 감염에 대비해 예방주사까지 맞는다. 하지만 그는 결국 떠나지 못한다. 40년 동안 매일 매일 준비만 했다.
여행을 계획했지만 가지 못했던 그는 결국 실패한 인생일까?
천만에…
그에겐 매일 세웠던 계획 자체가 여행이었고, 삶 자체가 여행이었다.
‘여행 떠남’이라는 결과물은 적어도 그에겐 필요 없는 것이다.
어떤가? 시간 가는 게 아쉽고, 초조함이 든다면 시간 안에 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채찍으로부터 벗어나보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영광된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포기하지 말자.
대신 매일매일 찾아오는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보자. 『매일 떠나는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실현되지 않아도 괜찮을 그 무언가를 즐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