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1년] ⑥바닷속 가스 전쟁, 러시아의 천연가스 딜레마
[우크라이나 1년] ⑥바닷속 가스 전쟁, 러시아의 천연가스 딜레마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3.08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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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시장 유럽 잃은 러시아 가스 수출
가스프롬, “1월 수출 46% 감소 추산”
초유의 노르스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
퓰리처상 수상자, “폭발은 미국 소행”
중국 등지에 수출 수익성 미지수까지

2022년 2월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 명령에 따라 발발한 러-우 전쟁. 아슬아슬했던 유럽 대륙의 평화를 깨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2023년 2월로 1년을 맞았다. 예상외의 장기전이 이어지며 우크라이나의 사상자와 피해액이 불어나는 것은 물론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여파가 계속된다. 지난 1년간 전쟁이 남긴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본다[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정책을 포함한 러시아의 각종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사진/픽사베이)

전쟁 전보다 떨어진 유럽 천연가스 가격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결국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날이 갈수록 무리한 요구로 국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한편에선 천연가스를 둘러싼 암투와 테러가 일어난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국이라고 말하며 모두의 웃음을 사는 일도 벌어졌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3일 인도 뉴델리에서 인도 외교부와 옵서버리서치재단이 주최한 지정학 및 글로벌경제 포럼 ‘라이시나 다이얼로그’에서 발언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리가 끝내려고 하는, (서방 진영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이용해 러시아를 노리고 시작된 전쟁”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중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라브로프 장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 서방의 웃음거리가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정책을 포함한 러시아의 각종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며 발스트림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의 책임을 서방으로 몰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월 17일, CNN은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약 18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보다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원자재 분석 전문업체 독립상품정보서비스(ICIS)에 따르면 독일의 벤치마크 도매 가스 가격은 이날 약 5% 하락해 메가와트시(㎿h)당 49 유로(약 6만 8000 원)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자 지난해 8월 최고가였던 320 유로(약 44만 5000 원)에 비해 84% 내려간 것이다.

당초 EU의 천연가스 수입 물량의 41%를 러시아에서 사 왔지만, 이전부터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해 러시아가 EU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가스 밸브를 잠그고 공급을 줄이며 유럽은 비상사태에 들었지만, 다행히 지난 겨울 유럽은 연년보다 훨씬 따뜻한 온도를 유지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틀어막자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재고를 미리 축적해놓고 수요를 줄인 덕분도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은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스를 직수출하는 주요 경로였으나 당시 강력한 폭발로 덴마크 및 스웨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해저에 설치된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4개 중 3개가 파손됐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픽사베이)

유럽 고객 잃은 러시아, 노르트스트림까지 잃어

결국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수출을 러시아가 스스로 막았지만, 줄어든 수출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14일 로이터 통신이 수출 수수료와 수출량 자료로 추정한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의 지난달 해외 판매 매출은 34억 달러(약 4조3천억원)로 작년 동기(63억 달러)에 비해 약 46% 줄었다고 보도했다.

가스프롬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재무·실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올해 수출과 평균 가스 가격 추정치를 고려하면 올해 수출 금액 역시 적자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수출은 작년에 절반 가까이 줄어 소련 붕괴 이후 최소치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서유럽의 천연가스 수요에서 러시아산의 비중은 2021년 40% 수준에서 작년 말 기준 7.5%로 급락했다.

헤닝 글로이스테인 글로벌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 에너지기후 담당이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가격이 전쟁 이전 평균가보다 아직 상대적으로 비싸긴 하지만 작년처럼 에너지난 위험이 반영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부터 독일 또는 그 너머의 서유럽까지 연결된 수천km 길이의 가스관을 이용해 수십 년간 천연가스를 수출해왔다. 하지만 가스프롬의 한 전직 고위 간부는 로이터에 익명으로 "수십 년 동안 수출 시스템을 구축해온 수백 명의 노력이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여기엔 지난해 발생한 ‘노르트스트림’ 해저 가스관 유출 사고도 포함돼있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은 러시아에서 독일 등 유럽으로 가스를 직수출하는 주요 경로다. 지난해 9월 원인 미상의 강력한 폭발로 덴마크와 스웨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해저에 설치된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4개 중 3개가 파손됐다.

러시아는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21일, 바실리 네벤쟈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고를 조사 중인 덴마크·스웨덴·독일 등 서방 3개국을 믿기 어렵다”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독립적인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 3개국의 조사는 투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의 형제'인 자국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한 절차가 될 뿐”이라고 비난했다.

(사진/뉴시스)
200㎞ 길이의 노르트 스트림 1, 2 가스관은 모두 3개 선으로 되어 있으며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 지분이 절반이상인 회사가 보유 관리하고 있다. (그래픽/ 안지혜 기자, 사진/뉴시스)

세이모어 허시 기자, “폭발 주체는 미국” 폭로

이에 대해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존 켈리 주유엔 미국 공사참사관은 “이번 주 전 세계가 유엔 헌장에 부합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촉구하기 위해 단합하려고 하자 러시아가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려 한다”며 “오늘 회의 역시 (러시아를 향한 비판이라는)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러시아의 노골적 시도”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노르트스트림 파괴가 미국의 공격이라는 구체적인 정황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2월 8일(한국 시간) 과거 1969년 ‘미라이 학살’ 보도를 시작으로 베트남 전쟁의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탐사보도의 전설이자 퓰리처상 수상자 세이모어 허시(85)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미국은 이렇게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을 파괴했다’라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2021년 12월부터 6개월간의 준비 끝에 2022년 6월 노르트스트림 2에 폭발물을 부착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9월에 원격으로 노르트스트림2를 폭발시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세이모어 허시는 이러한 미국의 결정을 두고 노르트스트림2를 통해 러시아가 유럽에 수출하는 가스가 늘어나게 되면 향후 유럽이 러시아 응징에 동참하지 않는 등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허시는 블로그를 통해 “노르트스트림1이라 불리는 2개의 파이프라인은 독일과 서유럽의 많은 지역에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를 10년 이상 공급해 왔고 노르트스트림2라 불리는 2개의 파이프라인은 건설됐지만 아직 운영 중인 것은 아니었다”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하고 무력 충돌 발생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은 노르트스트림2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천연가스를 무기화할 수단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1년 9월 완공 예정이었던 노르트스트림2이 운영되기 시작하면 러시아 정부가 절실히 필요한 주요 수입원을 추가로 갖게 될 것이고,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은 러시아가 공급하는 저렴한 천연가스를 두 배로 수입할 수 있어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미국의 공격 배경을 분석했다.

허시가 밝힌 작전 계획에는 예정에 없던 바이든의 말실수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은 전쟁 직전인 2021년 12월경부터 러시아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노르트스트림는 파이프라인 2개를 파괴할 계획을 세웠다. 미국은 노르트스트림의 파괴가 미국의 소행으로 추적될 경우 그것은 전쟁 행위나 마찬가지일 만큼 위험한 계획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8일 전이었던 2022년 2월 7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만난 후 기자회견에서 “만약 러시아가 침공한다면 더이상 노르트스트림2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버렸다. 이를 두고 허시는 “태스크포스에서 계획단계에 참여했던 몇몇은 바이든의 발언에 굉장히 당황했다. 하지만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를 폭파할 계획이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 극비 작전에서 법적으로 보고할 필요가 없는 공개적인 작전으로 바뀐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뉴시스)
세이모어 허시 기자에 따르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노르트스트림 폭파 직전,  “만약 러시아가 침공한다면 더이상 노르트스트림2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한국을 방안한 바이든 대통령. (사진/뉴시스)

UN, 러시아 공식 조사 요구 거절

허시가 말하는 노르트스트림 폭파 작전은 그렇게 진행됐다. 2022년 9월 26일, 노르웨이 해군 P8 정찰기가 비행을 하다가 수중 음파 부표를 떨어뜨렸다. 수중으로 신호가 퍼져 노르트스트림2에 먼저 닿고 노르트스트림1까지 닿았다. 몇 시간 후 C4 폭발물이 작동됐고 4개의 파이프라인 중 3개가 작동을 멈췄다.

허시는 또 폭발 이후 미국 언론이 이를 미해결 미스터리로 취급한 것을 언급했다. 허시는 기사를 통해 “몇 달 후 러시아가 파이프라인 수리 비용을 조용히 추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뉴욕타임스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가설들이 복잡해졌다고만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눌랜드 국무부 차관이 노르트스트림2의 파괴에 대한 만족감을 1월 말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리고 아마도 바이든 정부는 노르트스트림2가 바다의 바닥으로 떨어진 고철 덩어리가 되어서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재 UN은 러시아와 미국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은 상태다. 2월 21일 러시아가 사고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했던 날 로즈마리 디칼로 유엔 정치부장은 “UN은 노르트스트림 폭발과 관련된 어떠한 주장도 검증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이해 당사국들도 자제하면서 과도한 추측도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위가 어떻든 현재 유럽의 가스 저장고가 차면서 러시아는 유럽에서 중국으로 판매루트를 선회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9년부터 '파워 오브 시베리아' 가스관을 통해 동시베리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해왔으며, 2025년까지 대중국 연간 수출량을 38bcm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중국의 천연가스 수요가 2030년까지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의 새 가스 공급계약 협상은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전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며 재생에너지가 늘고 있다는 사실도 러시아에 좋지 않은 소식인 것이 분명하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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