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만스...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파벨만스...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3.25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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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스티븐 스필버그(1946)의 부친은 2020, 모친은 그보다 앞서 2016년에 사망했다. 부모가 세상을 뜨고 나서야, 아들은 모친에게 했던 굳은 맹세를 배반한다. 배반당한 약속. 기억 저편 어둠에 묻어 두었던 아들의 비밀은 빛의 세계로 나온다.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반짝이며 마침내 비밀의 상자가 열렸다. 청소년기에 스필버그 삶과 영화의 중심엔 그의 모친이 있었다. 어쩌면 그는 영화적 가공 없이 모친에 대한 기억과 사랑과 상처를 촘촘히 정직하게 회상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무려 16년간 준비해서 탄생한 영화가 <파벨만스>.

'파벨만스' 스틸컷, (왼쪽) 어린 '새미' 역의 마테오 조리안, 엄마 '미치' 역의 미셸 윌리암스, CJ ENM 제공
'파벨만스' 스틸컷, (왼쪽) 어린 '새미' 역의 마테오 조리안, 엄마 '미치' 역의 미셸 윌리암스, CJ ENM 제공

추억은 때때로 어느 한순간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자아낸다. 설령 아팠던 기억조차 세월은 상처를 그리움으로 펼쳐 보는 힘을 준다.

스필버그는 그리움을 ''이라는 공간으로 추억하며 영화로 복기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의 기억들. 기억의 설계도로 지은 영화의 집이 <파벨만스: THE FABELMANS>.

스필버그에게 유년의 집은 모든 것이 행복했고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소년의 집은 혼란스러웠고, 청년의 집은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감독은 유년 시절 집안에 흐르던 모친의 피아노 연주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던 부친의 열정과 여동생들의 생기발랄함과 온 가족이 둘러앉은 유대인 풍습의 식탁과 맛있는 음식의 냄새마저 영화로 담았다.

감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영원을 향하여 무한히 열려있는 예술의 시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파벨만스가족의 연대기를 완성한다.

<죠스>(1975), <E.T.>(1982), <인디아나 존스>(1985), <쥬라기 공원>(1993),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3), <A.I.>(2001) <우주전쟁>(2005), <레디 플레이어 원>(2017) ,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영화로 관객을 만나고 칭송받은 감독은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의 근원인 가족의 성씨인 '파벨만'으로 돌아왔다.

'파벨만스' 스틸컷, (왼쪽) 아버지 '버트'역의 폴 다노, 어린 '새미'역의 마테오 조리안, 엄마 '미치'역의 미셸 윌리엄스, CJ ENM 제공

부모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극장에 간 여섯 살 소년 새미(마테오 조리안). 아이가 처음 본 영화는 <지상 최대의 쇼>(1952)였다. <지상 최대의 쇼><삼손과 데릴라>(1949), <십계>(1956)로 유명한 세실 B. 드밀(1881~1959) 감독이 연출한 영화. 새미는 큰 스크린 속에 영사된 기차의 충돌 장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새미는 부친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기차로 사고 장면을 반복해서 재연해본다. 이런 모습을 본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아빠 버트(폴 다노)8mm 카메라를 건네며 그 순간을 촬영해서 남기자고 제안한다. 운명의 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부터 새미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파벨만스' 스틸컷, '새미'역의 가브리엘 라벨, CJ ENM 제공
'파벨만스' 스틸컷, '새미'역의 가브리엘 라벨, CJ ENM 제공

이후 10대의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서부극인 단편 <더 라스트 건>(1959)을 만든다. 15세 때에는 40분짜리 전쟁영화 <탈출구가 없다>(1961)를 만들어 10대 영화제(Teen Film Festival)에서 우승한다. 훗날 <미지와의 조우>의 토대가 된 UFO 소재의 SF 영화 <파이어라이트>(1964)를 만들어 동네 극장에서 정식으로 상영하여 수익을 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미 십대 시절에 애리조나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유대인이라는 조롱으로 학폭에 시달리던 학창시절에도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있었다.

<파벨만스>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감독 자신의 성장기와 가족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 영화다. 모든 것에는 상처가 있기 마련. 그 상처의 틈을 통하여 빛이 들어오고, 새미의 상처와 아픔은 마법처럼 형형색색의 영화로 만개한다. 눈부신 봄의 향기처럼 반짝인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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