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유, 정말 웃기기만 한가요?
팜유, 정말 웃기기만 한가요?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3.29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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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많이 먹는 사람의 대명사가 된 ‘팜유’, 이면의 얼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열대 우림 태우고 팜유 최다 생산
팜유 제조, 사용 기업의 책무 강화 노력 절실, 경고하는 단체들

[한국뉴스투데이] 지난 주말, MBC <나 혼자 산다>에는 팜유 패밀리로 불리는 전현무, 박나래, 이장우가 건강검진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제 1회 팜유 피지컬 심포지엄’이란 이름으로 불린 이들의 건강검진은 누구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세 명의 출연자가 건강을 체크하는 내용이었다. 

(사진/기후솔루션/픽사베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후솔루션 회원들이 산림파괴·인권침해 부르는 '팜유' 사용 중단·정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기후솔루션)

생산과 소비의 문제, 팜유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방송된 <나 혼자 산다> 시청률은 10%(수도권 기준)로 예능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2049 시청률은 5.6%(수도권 기준)로 금요일 전체 프로그램 중 1위를 차지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 ‘팜유’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은 우연이다. 라면을 먹고 잔 것처럼 퉁퉁 부은 얼굴의 출연자를 놀리며 시작됐는데, 박나래가 “얼굴의 기름은 팜유”라고 재치 있게 농담을 던지며 자연스레 유명세를 탔다. 이후 먹을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팜유라인’으로 명칭했고 비슷한 캐릭터를 나눠 가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웃고 떠드는 팜유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팜유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비누, 샴푸, 라면, 과자, 식용유 등)에 포함되어 있다. 팜유는 팜나무 열매에서 나오는 식물성 기름으로 쉽게 산패되는 액상 식물성 기름과 달리 산화안정성이 높고 생산량도 10배 이상 많아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팜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환경적 문제는 상당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3월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후솔루션 회원들이 산림파괴·인권침해 부르는 '팜유' 사용 중단·정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의 피켓에는 ‘팜유, 웃을일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기후솔루션과 공익법센터 어필은 우리 사회에 걸쳐 팜유라는 화두를 던지고 공론장에서의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 팜유가 지구를 뜨겁게 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들은 이날 보고서 ‘미션실패: 친환경 팜유 인증으로 가릴 수 없는 산림파괴’를 발간해 국내의 팜유 공급망과 팜유 사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열거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었다. 또 팜유 생산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생태계 파괴, 인권침해를 막는 데 필요한 정책을 제안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보존과 가공이 용이해 식품, 화장품, 세제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팜유는 최근 바이오디젤과 바이오중유 등 바이오연료의 원료로 크게 각광받는다. 그렇게 늘어나는 팜유 사용은 주요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다양한 문제를 초래했다. 팜유 재배용 대규모 플랜테이션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보다 넓은 면적의 산림이 파괴됐고, 이는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과 생물다양성 손실로 이어졌다. 일방적인 토지강탈은 토착민의 생계와 문화도 함께 빼앗았다.

(사진/기후솔루션/픽사베이)
BBC코리아는  한국계 코린도그룹이 팜농장 개간을 위해 아시아 최대 열대우림에 고의로 불을 낸 정황이 포렌식 데이터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사진/픽사베이)

농장 4분의 3 밀고 만든 팜유 밭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팜유의 85%를 생산한다. 하지만 이 두 나라의 농장의 4분의 3이 열대우림을 없애고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지난 2020년 BBC코리아는  한국계 코린도그룹이 팜농장 개간을 위해 아시아 최대 열대우림에 고의로 불을 낸 정황이 포렌식 데이터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당시 환경운동연합 등 많은 환경 단체는 성명을 통해 코린도 기업을 비난했다. 한경운동연합은 “코린도는 그들의 복잡한 정체성을 떠나서라도 기후위기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지구 공동체 일원으로서 환경과 인권을 존중하는 시대 정신에 입각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부응해야 한다. 지구의 허파인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토착민을 탄압한다는 오명을 씻고 새로운 경영철학을 필두로 한 쇄신을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농장 개간을 위해 숲을 태우면서 원시림에서 살던 오랑우탄 등 야생동물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산불과 삼림 파괴로 인한 탄소배출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WWF(세계자연기금)에 따르면 2015년 인도네시아에서 260만 헥타르 상당의 토지를 불태워 개간한 결과 두 달 넘게 매일 1130만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

팜유의 환경적, 사회적 대가가 알려지자 유럽연합(EU)은 팜유 기반 바이오연료 사용 중단에 합의했다. 기업의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공급망 실사와 산림벌채 상품 규제법도 도입했다.

세계자연기금(WWF)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마켓에 진열된 제품 중 절반이 팜유를 포함하고 있다. KOTRA 보고서에 의하면 팜유 생산량의 80%는 마가린, 튀김용유, 버터 대체용 등 식용유지로 사용되며 나머지 20%는 화장품, 화학, 제약, 바이오디젤 등 비식용 소비재의 원료로 사용된다. 기업들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앞다퉈 환경을 파괴하며 팜유를 짜내고 있다.

국제사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 가능한 팜유 산업 협의체(Roundtable on Sustainable Palm Oil, RSPO)’라는 네트워크를 설립해 국제적 합의 기준을 만들고 열대 우림을 해치지 않고 팜나부 재배 면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침을 세우고 있다.

현재 8가지 원칙을 정하고 팜유 생산기업뿐만 아니라 팜유를 사용하는 제조기업 등 이를 준수하는 기업에 해당 인증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전세계 277개 기업의 지속가능성 점수 평균이 24점 만점에 13.2점에 그치는 등 기업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상황. WWF는 보고서를 통해 지속 가능한 팜유 시장을 위한 기업들의 책무 강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기후솔루션/픽사베이)
팜유로 만드는 바이오연료는 화석연료보다 3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무분별한 양적 확대 정책으로 인해 친환경 에너지로 잘못 분류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의미 없는 기업의 자발적 인증제

기후 솔루션 역시 팜유를 생산하거나 이용하는 한국 기업들의 책무 책임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기후솔루션은 “한국은 ‘팜유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보고서를 통해 “팜유 확대를 용인하는 정부 정책과 ‘친환경 연료’로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시도하는 기업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부는 2012년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인 공급의무화제도(RPS) 및 연료 혼합의무화제도(RFS)를 도입하며 팜유 수입을 증가시켰다. RPS는 발전공기업의 바이오중유 화력발전을, RFS는 경유차에 주유되는 바이오디젤을 장려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적 지원이 공식화되자 바이오연료용으로 쓰이는 인도네시아산 팜유는 제도 도입 이래 10배 증가했다. 업계가 들여오는 팜유는 산림파괴·인권침해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와 산림청은 오히려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며 물의를 일으킨 포스코인터내셔널, LX인터내셔널, 대상주식회사, 제이씨케미칼에 2020년까지 총 800억원 이상의 융자를 제공해왔다.”고 주장했다.

기후솔루션은 또 “업계는 널리 알려진 팜유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거나, ‘자발적 인증제’를 통해 친환경을 주장하고 있다”며 “식품·생활용품·바이오연료 주요 기업에 질의한 결과, 인권·환경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팜유를 수입하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12년부터 축구장 3만 7000개 면적의 숲을 파괴해 국제적인 비판을 받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뒤늦게 ‘RSPO’ 팜유 인증을 획득해 이제는 지속가능한 팜유를 생산한다고 홍보한다. RSPO는 제도 도입 전의 산림파괴를 용인하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사례처럼 ‘선(先)파괴 후(後) 인증’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업계가 주도하는 인증제는 문제가 여전한 기업에도 인증을 부여하고 있어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기후솔루션 송한새 연구원은 “팜유로 만드는 바이오연료는 화석연료보다 3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무분별한 양적 확대 정책으로 인해 친환경 에너지로 잘못 분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연구원은 “특히 정부가 작년 10월 발표한 바이오연료 확대 계획은 문제가 되는 원료를 제외하고 청정에너지를 지원하는 지속가능성 인정기준이 빠져 있다”며 “’산림파괴 지원국’이라는 오명이 국제사회에 굳혀지기 전 기후위기를 재촉하는 ‘가짜 재생에너지’와 결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정신영 변호사는 “RSPO 인증을 받기 위해 기업이 고용하는 감사기관은 감사대상인 기업에 재정적으로 의존하게 되어 수많은 인권, 환경 문제에 눈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간혹 기준 위반 사항이 발견된 경우에도 RSPO 사무국이 회원 자격을 정지하는 경우가 드물고, 정지된 경우에도 신속하게 자격을 회복시키는 것을 볼 때 RSPO 인증이 지속가능한 팜유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 변호사는 “기업은 인증제에 의존하면 안 되며, 자사의 공급망 전반에서 책임을 지고 실사를 이행하게 하는 인권환경실사법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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