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 ③”중요한 것은 더 꺾이기 전에 실천하는 것” 
[이상기후] ③”중요한 것은 더 꺾이기 전에 실천하는 것”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4.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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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꽃이 빨리 핀 것으로 끝나면 안 돼” 경고 
연례없는 벚꽃 없는 벚꽃 축제, 2월 개화 곧 현실로? 
식목일 3월 21일로 앞당겨? “그마저 늦을 지도 몰라”
과수 저온 피해, 벌 번식 불가능해 ‘꽃가루 은행’ 이용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한파, 폭설, 가뭄,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의 출현이 잦아지며 전세계가 이상기후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 많은 국내외 기관들이 지구 기후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적도 동태평양 엘리뇨·라니뇨 감시구역의 해수면 온도를 감시하고, 나아가 북극진동, 제트기류, 계절몬순 등 우리나라 기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분석하고 있지만, 다가 올 이상기후는 예측하기 힘들다. 최근 기상청에서 발표한 ‘2022 이상기후 보고서’를 중심으로 국내 이상기후 사례, 전세계에 경각심을 울리는 이상기후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지난 12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이월드 튤립가든을 찾은 시민들이 활짝 핀 튤립 길을 거닐며 봄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2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이월드 튤립가든을 찾은 시민들이 활짝 핀 튤립 길을 거닐며 봄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역대 두 번째 바른 개화 
봄철 벚꽃이 이상기온 영향으로 예년보다 빠른 속도로 모습을 드러내며 일반적인 개화 시기에 맞춰 벚꽃축제를 준비했던 서울 자치구들은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맞아야 했다.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제 17회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는 지난 4월 4일부터 9일까지 펼쳐졌지만 축제 첫날인 4일, 이미 땅에는 벚꽃 잎이 떨어져 있었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 일대에 4월 4일~5일 벚꽃이 만개한 것과 비교하면 일주일 가량 앞당겨진 시점이다. 


서울에서 공식 개화한 날은 기상청 발표 기준 3월 25일이었다. 지난해 개화일이었던 4월 4일 보다는 10일, 평년 기준인 4월 8일 보다는 무려 14일이나 일찍 꽃망울을 터트렸다. 이는 1922년부터 서울 벚꽃 개화 시기를 관측한 이래 두 번째로 빠른 속도다. 역대 가장 빠른 서울의 벚꽃 개화 시기는 2년 전인 2021년 3월 24일이었다. 벚꽃 개화 시기가 앞당겨진 건 올봄의 전국적 이상 고온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이후 봄꽃축제를 재기한 많은 지자체들은 곤혹스러운 입장이었다. 대전 동구는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축제’라는 슬로건을 걸고 ‘벚꽃 없는 벚꽃축제’홍보에 나서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개화 시기가 앞당겨진 것을 두고 기상청은 한반도가 이동성 고기압 영향으로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고, 맑은 날씨에 일사량이 더해져 기온이 평년보다 최고 7~9도 높은 상태가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벚꽃뿐만 아니라 다른 봄꽃들의 개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4월에 피는 배꽃과 복숭아꽃도 각각 올해 최대 16, 17일 일찍 개화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개화일의 북상 속도다. 기상청에 따르면 100년 전, 1920년대만 해도 서울과 부산의 벚꽃 개화 시기 차이는 평균 15.5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10년(2013~2022년) 평균을 보면 6일 정도가 줄어들었다. 역대 가장 빠른 벚꽃이 핀 2021년에는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올해 봄 꽃이 예상 개화시기보다 앞서 개화했다. (사진/ 픽사베이)
올해 봄 꽃이 예상 개화시기보다 앞서 개화했다. (사진/ 픽사베이)

개나리와 진달래, 동시에? 
개화를 앞당기는 원인은 높은 기온과 긴 일조 시간이다. 올해 3월 평균 기온은 9.4도로 지난해 평균 기온인 7.7도보다 높다. 평년보다 3.9도 높다. 평균 최고 기온 역시 지난해 12.7도였지만 올해 15.6도를 기록했다. 2월 평균기온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평년보다 1.7도 높았고, 일조시간은 28.9시간 많았다. 서울기상관측소에 지정된 왕벚나무를 기준으로 한다. 

이와 같은 속도라면 21세기 후반에는 2월에 피는 벚꽃을 볼 지도 모른다. 2022년 3월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미래의 봄꽃 개화일은 현재(1991~2020년) 대비 21세기 전(2021~2040년)/중(2041~2060년)/후반기(2081~2100년)에 각각 5~7일/5~13일/10~27일 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최근 들어 봄철 이상고온현상으로 봄꽃 개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뚜렷한 것과 관련해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개화일은 기온 증가폭이 큰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21세기 후반기에 23~27일 당겨질 것으로 예상했다. 또 온실가스를 현저히 감축하는 저탄소 시나리오에서는 10~12일 당겨져 고탄소 시나리오에 비해 개화시기 변화가 적게 나타났다.

또한, 봄꽃 종류에 따라서는 개나리/진달래/벚꽃의 개화시기가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21세기 후반기에 각각 23일/27일/25일로 당겨질 전망이다. 진달래의 경우, 개나리보다 늦게 개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21세기 후반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동시 개화하거나, 진달래가 더 빨리 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과거 1950~2010년대(약 60년간) 봄꽃 개화일은 3~9일 당겨진 것에 비해 향후 약 60년 이후(21세기 후반기)는 23~27일로, 개화시기 변화속도가 과거보다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은 봄꽃 개화시기가 당겨지는 것은 우리나라 봄의 시작일이 빨라지고 입춘, 경칩과 같은 봄 절기의 기온이 상승하는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보고서는 “봄꽃 개화시기의 변동은 지역축제에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비슷한 사례로 지난해 국회에서 기후 변화에 대응해 현재 4월 5일인 식목일을 3월 21일로 앞당기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철쭉과 과수 꽃들이 만개한 것과 관련해 2월에 산란해 5월에 활동하는 벌을 통한 번식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 픽사베이)
철쭉과 과수 꽃들이 만개한 것과 관련해 2월에 산란해 5월에 활동하는 벌을 통한 번식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 픽사베이)

“강원도에서만 과일 재배 가능해질 것”
개화가 빨라지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올해 개화가 전에 없이 이른 것과 관련해 여러 피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경기 안성과 이천 지역에는 배·복숭아 등 과수 저온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3월27일과 이달 8·9일 새벽과 아침 기온이 영하 2∼5℃까지 떨어지면서 배와 복숭아꽃에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곳에는 과수 꽃 피는 시기가 예년보다 7∼10일 앞당겨지는 바람에 기습적인 꽃샘추위가 반복돼 피해규모가 커지고 있다.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인근 옥수수·감자 농가도 심각한 언피해를 호소했다. 곳곳에 피해가 커지자 여러 관공서는 피해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농촌진흥청은 배·사과와 같은 과수의 개화기가 빨라짐에 따라 ‘과수화상병’ 방제를 서두를 것을 당부했다. 과수화상병의 세균은 미리 제거하지 않은 줄기나 굵은 가지가 움푹 파이거나 갈라진 궤양에 겨울을 보낸다. 봄철에 활동을 개시하는데, 개화기에 꽃, 잎, 새로 나온 줄기 등이 검게 타는 듯한 증상을 발현한다. 

또한 철쭉과 과수 꽃들이 만개한 것과 관련해 2월에 산란해 5월에 활동하는 벌을 통한 번식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여러 지자체에서는 인공수분을 위한 ‘꽃가루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꽃가루은행은 농가에서 채취해 온 꽃을 화분정선과 개약을 거쳐 발아율 검사후 최적의 증량제 희석배수를 결정하여 인공수분의 효과를 돕는 방식이다. 

꽃이 개화했지만 최근 비가 내린 이후 최저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며 식물의 냉해도 염려되는 상황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몇 해 전부터 이어지는 이상저온·고온 현상이 사계절 내내 식물에게 많은 피해가 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농업진흥청이 2020년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사과와 배, 복숭아의 재배 가능지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2070~90년대에 이르러 강원도 일부 산간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70~90년대에 사과, 배, 복숭아 등은 강원도 일부 산간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2070~90년대에 사과, 배, 복숭아 등은 강원도 일부 산간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생태계 관계성이 깨진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꽃이 빨리 폈다'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수천년 전부터 이어온 꽃과 곤충, 식물, 나아가 동물의 관계성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꽃과 곤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다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줘야 한다. 

문제는 땅 속 온도는 땅 위 온도보다 느리게 올라가는데, 땅 속에서 겨울을 버티고 있던 곤충은 땅 위에서 일찍 개화한 꽃에 비해 온도 변화를 느리게 감지한다. 이에 따라 곤충은 꽃이 다 피고 진 뒤에나 지상으로 올라와 활동을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꽃과 곤충의 활동 시기에 교집합이 사라질 경우, 결국 종 보전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즉 봄꽃의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은 지구의 기능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봄꽃의 늦어지는 개화 시기에 우리는 당장 ‘꺾여도 하는 축제’보다 ‘더 꺾이기 전에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알리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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