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 바로미터, 이탄지에 쏠리는 시선
기후환경 바로미터, 이탄지에 쏠리는 시선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4.28 14: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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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육지 면적과 맞먹는 이탄지, 전 세계에 분포
인도네시아, 콩고, 국가적 위기이 이탄지 개발 논란
“최대 이탄지에서 5,000년 전 탄소 배출 증거” 경고

[한국뉴스투데이] 탄소 저장지 이탄지(Peatlands)가 생태계의 뜨거운 감자다. 이름도 생소한 이탄지는 탄이 퇴적하여 이루어진 땅을 뜻한다. 이탄지는 얕은 호수나 늪 또는 해안 습지 따위에서 갈대나 방동사니 따위의 유체가 조금 분해된 상태로 퇴적됨으로써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지역이 수면 위로 솟아 형성된 습한 토지에 이끼가 두툼한 층을 이루면서 퇴적되는 단계를 거치면 이탄지가 완성된다. 토탄이 퇴적되어 쌓이는 속도는 천 년에 1미터 정도로 알려졌다. 

(사진/픽사베이)
'지구의 폐' 이탄지에 대한 개발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진/픽사베이)

기후 변화 완화에 필수적 존재
이탄지는 열대 지방에서 북극 지방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발견된다. 보통 시원하고 습한 조건이 이탄 축적에 이상적인 조건이다. 북반구에 특히 풍부한데, 특히 러시아·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독일·아일랜드·스코틀랜드 등 북유럽에 많이 분포돼있다.

하지만 캐나다와 미국에서도 자주 보인다. 남반구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에서 뉴질랜드 및 남아메리카의 남단에 걸쳐서 분포한다. 한국에는 황해도 남부의 연백평야, 경기의 평택·김포 등에 국지적으로 있다. 

이탄지는 지구 표면의 약 3%를 덮고 있으며, 이는 인도의 육지 면적과 거의 같다. 하지만 이탄지가 저장하는 세계 토양 탄소의 약 30%로 추정되는 상당한 양이다. 이탄지대는 물리적 및 화학적 특성에 따라 크게 저위이탄과 고위이탄으로 분류한다. 

지구의 폐라고 불리는 이탄지가 배수되거나 교란되면 이 저장된 탄소가 이산화탄소로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 기후 변화에 기여한다. 따라서 온전한 이탄지대는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이탄지는 희귀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많은 종을 포함하여 다양한 동식물을 지원하는 독특한 생태계다. 철새의 서식지를 제공하고 물새의 중요한 번식지로 사용된다. 

이탄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물의 흐름을 조절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역할이다. 이탄지는 빗물을 흡수하고 천천히 방출하는 스펀지 역할을 해 하류의 홍수를 줄이는 데 도움된다. 또한 물을 여과해 강과 호수로 유입되기 전에 오염 물질과 영양분을 제거한다.

(사진/픽사베이)
북유럽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탄지는 탄이 퇴적하여 이루어진 땅을 뜻한다. (사진/픽사베이)

인도네시아, 이탄지 논으로 개발 
이러한 이탄지가 최근 토지 이용 변화, 기후 변화 및 기타 인간 활동으로 인해 증가하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농업, 임업 및 광업 목적을 위한 이탄지의 전환은 보존에 대한 주요 위협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인도네시아가 보르네오섬 중부 칼리만탄에 서울 면적 2.7배 크기의 쌀 경작지를 개발한다고 발표해 논란이 됐다. 해당 지역 토지가 일반 토양보다 탄소저장량이 10배 이상 높은 이탄지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중부 칼리만탄 풀랑 피사우(Pulang Pisau) 군에 있는 16만5천 헥타르를 쌀 경작지로 개발해 국가 식량 사업을 확대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는 서울 면적(약 6만 헥타르)의 약 2.75배에 해당한다. 이어 인니 정부는 "헥타르당 2t의 쌀 생산을 목표로 하며, 1조500억 루피아(911억원)를 투입해 관개시설을 만드는 등 공공기업부와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니의 이러한 결정은 식량 확보를 위한 과제 중 하나로 해석됐다. 하지만 인구 2억7천만명의 20개 이상 지방이 계란, 마늘, 설탕 등 식품이 부족한 상황이라 '식량 확보'가 조코위 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오랜 기간 환경운동가·국제기구들이 인도네시아의 이탄지 복원사업에 힘을 쏟고 있어 당시 큰 논란을 가져왔다. 한국 산림청 역시 수마트라섬 잠비주의 이탄지 복원사업을 벌여왔다. 

201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21세기 최악의 재앙 중 하나인 열대림 화재가 일어났다. 당시 서울시 42개 넓이(2만6,000㎢)의 열대림이 불타 약 10억톤의 탄소를 배출했다. 연무로 인한 호흡기 질환자는 주변국 포함 50만명, 경제적 피해 규모는 18조원으로 추산됐다.

이후부터 한국을 포함한 미국, 일본, 호주, 노르웨이는 이탄지복원청과 함께 국제적인 복원 작업에 나서고 있었다. 한국은 2016년부터 ‘이탄지 복원 및 산불 방지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사업은 산림청 산하 한-인니 산림센터에서 그 사업을 수행했고, 2년간 미화 3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가 다시 한번 이탄지를 논으로 개발하며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 

(사진/픽사베이)
생명다양성과 홍수, 가뭄을 조절하는 이탄지. (사진/픽사베이)

콩고민주공화국, 석유 시추권 경매
이탄지 개발은 이 뿐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이탄지가 포함된 콩고민주공화국이 이 지역에 석유 시추권 경매를 시작하기로 했다. 빈곤과 식량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결정이었지만, 이 지대가 훼손될 경우 수십억 톤에 달하는 탄소가 배출될 수 있어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뉴욕타임스(NYT), BBC 등에 따르면 민주콩고 약 30개 구역에 대한 석유 시추권을 경매에 부쳤다. 당초 예정된 16개 구역에서 더 늘린 범위다. 여기에는 이탄지대와 고릴라 서식지 등이 포함됐다. 콩고 대통령 펠릭스 치세케디는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민들 중 하나인 국민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석유 산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탄지 개발을 공식화했다. 

디디에 부딤부 탄화수소 장관 역시 매체 인터뷰를 통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에게는 ‘자연의 부’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경매 수익으로 학교와 병원, 고속도로 등을 건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기후학자들은 즉각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우려하고 나섰다. 사이먼 루이스 리즈대 지리학부 교수는 NYT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열대 이탄지대가 포함되는데, 이곳에는 전 세계가 약 3년 동안 내뿜는 양의 탄소가 저장돼 있다”며 석유 시추 등 개발로 인해 해당 지역이 훼손되면 “약 58억t의 탄소가 방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발표된 지표들도 콩고의 이탄지 개발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증명한다.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따르면, 콩고 분지의 이탄지대는 가장 많은 양의 탄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 지역은 기후 변화 대응에서 필수적인 방호벽으로,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15% 더 넓은 면적이다. 이는 현재 중앙아프리카 서식지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약 16만7,600 평방 킬로미터다. 

(사진/픽사베이)
인도네시아로 보르네오 섬, 수마트라 섬, 뉴기니 섬에 열대 이탄지는 산불과 토지 개간으로 광범위한 이탄지를 잃었다. (사진/픽사베이)

리즈대학 역시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에 따르면 분지의 이탄지에만 약 290억 톤의 탄소가 함유되어 있다. 이 양은 전세계가 약 3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과 맞먹는다. 

콩고의 이탄지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탄소 저장을 위한 지역으로 밝혀진 것은 지난 2017년이다. 당시 영국-콩고 연구팀은 이탄 표본을 찾기 위해 멀리 떨어져 있는 콩고의 열대 습지 숲을 3년 동안 탐험했다. 연구자들은 실험실에서 분석된 이탄과 위성 자료를 결합하여 콩고 분지의 이탄지대에 전 세계 총 3년 치의 화석 연료 배출량에 해당하는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고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2017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인도네시아로 보르네오 섬, 수마트라 섬, 뉴기니 섬에 열대 이탄지는 주로 산불로 그리고 최근 수십 년 동안 토지 개간으로 약 94,000km2의 이탄지를 잃었다”며 “콩고 분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상대적으로 방해를 덜 받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농경지, 특히 팜유를 위한 배수로 건설로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진/픽사베이)
이탄지가 오래되면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진/픽사베이)

이탄지가 이산화탄소 배출할 수도?
그런가하면 탄소 저장공간인 이탄지가 오래되면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돼 우려를 사기도 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서 국제 공동연구진은 이미 콩고의 이탄지는 탄소 시한폭탄이었던 적이 있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콩고 이탄지에서 시추한 이탄 샘플 분석을 통해 이탄이 형성되기 시작한 1만7,500년 전부터 현재까지 콩고 분지의 식생과 강우량에 대한 데이터를 복원한 결과, 7,500년 전~2,000년 전 이탄이 추가로 축적되지 않은 시기를 발견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5,000년 전 콩고는 극심하게 건조한 기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심할 때엔 연간 강수량이 800㎜ 가량 감소했다. 이탄지의 수면은 낮아졌고, 오래된 이탄층이 공기 중에 노출되어 분해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결과적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콩고 지역에 가뭄이 발생하면, 이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다. 최대 300억t의 탄소 저장창고인 이탄지가 온난화로 인해 되려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결국 다시 지구 온난화가 가속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시나리오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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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e 2023-10-25 19:51:05
유익한 기사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