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전쟁] ④ 러시아가 쏘아 올린 석탄 대란, 그 끝은?
[석탄 전쟁] ④ 러시아가 쏘아 올린 석탄 대란, 그 끝은?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5.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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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강국 러시아, 금수에도 불구 수출 ‘양호’ 이어가
전쟁으로 EU 중심 가동 중단 석탄 발전소 다시 운항
한국, 전쟁 이후 1년간 러시아산 14번째로 많이 수입
긍정적 변화 “전쟁으로 청정에너지 가속 전환점 되기도”

산업 혁명의 역군에서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한 석탄은 현대 사회, 환경 문제에서 계륵 같은 존재다. 동시에 전세계가 ‘탈석탄’을 외치고 있지만 중국과 인도, 한국 등은 석탄 발전을 확대하는 아이러니한 시대다. 석탄과의 전쟁, 그 이면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패를 쥐고 있는 석탄 강대국들 그리고 무엇보다 파괴되는 자연의 모습을 낱낱이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사진/픽사베이)
전쟁이 장기화되며 전세계 에너지 공급 판도 변화가 시작됐다. (사진/픽사베이)

러시아, 석탄 매장량 세계 2위, 생산량 세계 6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며, 전세계 에너지 공급에는 적색등이 켜졌다. 특히 러시아는석탄 매장량 세계 2위, 생산량 세계 6위의 ‘석탄 강국’이다. 전쟁이 불러온 석탄 대란의 주인공인 셈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러시아의 석탄 생산량은 사상 최대치인 4억 4280만 톤을 기록했다. 이후 2020년엔 코로나19로 약 9% 감소한 4억 260만 톤을 기록했으나, 2021년 다시 세계적인 경제 성장 및 및 수요 회복으로 코로나19 전 수준인 4억 4000만 톤을 회복했다. 수출 역시 사상 최대인 2억 2340만 톤을 기록했다.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석탄 생산량은 2억 7700만 톤으로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이같은 수치는 중국, 호주의 석탄 생산이 코로나로 인한 탄광 봉쇄와 자연재해 발생 등으로 감소했고 전쟁 이후 미국, 영국 등의 러시아 석탄 금수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수치다. 코트라는 수출은 감소하나 시베리아지역 강 수위 저하에 따른 수력 발전의 공백을 메우는 현지 석탄 수요 증가 등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내 대표적인 석탄 생산지로는 Kuznetsk(케메로보주), Gorlovsky(노보시비르스크 인근), Kansk-Achinsk(크라스노야르스크 인근) 석탄 분지 등이 있다. 코트라는 이 중 2021년 Kuznetsk 석탄 분지에서 러시아 전체 생산량의 55%인 2억 4310만 톤의 석탄(노천 1억 5600만, 지하 8710만 톤)이 생산됐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이들 주요 석탄 매장지의 잠재성을 최대한 개발하는 동시에 사하공화국의 점결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 북극 지역에 위치한 타이미르(Taimyr) 반도의 무연탄 및 점결탄 신규 매장지 개발 등 석탄 채굴 지역을 점차 동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검토, 추진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지구온난화 주범으로 지목돼 온 석탄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적 에너지 대란으로 재조명됐다. (사진/픽사베이)

개전 이후 석탄 수출량, 이전과 동일

무엇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00일 글로벌 에너지 공급 위기 장기화의 국내 경제·에너지 부문 영향과 대응전략’에 따르면 개전 이후 2022년 3∼5월 러시아의 석탄 수출량은 월평균 14만6000만톤을 유지하며 전쟁 이전 수준(해상수출량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개전 직전 3개월과 비교할 경우 오히려 15.0% 늘어난 것으로 EU의 러시아 석탄 금수조치가 본격화되지 않은 점과 전쟁 이후 중국·인도로의 수출물량이 급격히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석탄 금수국가의 대체수요 규모의 경우 EU·영국, 일본의 러시아산 석탄 수입량은 7700만톤(2020년 기준, IEA)으로 이는 세계 연료탄 수입량의 8%에 해당한다. 이들 국가는 호주, 인도네시아, 남아공, 미국 등을 통한 대체공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EU국가 기업들은 금수조치 발효(2022년 8월 10일 예정) 전 러시아산 석탄구매량을 늘리며 선제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지구온난화 주범으로 지목돼 온 석탄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적 에너지 대란으로 재조명됐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천연가스의 배에 달하는 석탄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퇴출당해야 할 대상으로 내몰렸으나, 세계 각국이 안정적인 에너지원 수급과 전력 공급을 위해 단기적으로 석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기후위기에 대응해 세계가 단계적으로 석탄 발전을 줄여나가겠다는 약속이 수포가 될 지도 모른다. (사진/픽사베이)

단계적 탈석탄 계획과 반대로 걷는 EU?

전세계적으로 석탄 발전이 늘어난 것에 관해 월스트리트 저널 역시 전쟁으로 인해 천연가스 물량이 줄고 러시아산 화석 연료에 의존하던 유럽연합(EU)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탈(脫)석탄 정책에서 탈피해 가동을 중단했던 석탄발전소를 다시 운영하는 방침을 검토했고 독일도 석탄 수입량을 늘렸다.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도 석탄 발전 재개를 준비했다.

미국 역시 폭염을 경험한 뒤 석탄 발전량을 늘리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탄을 소비하는 중국도 전력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석탄 생산과 발전을 확대하는 추세다. 인도도 에너지 수요 증가에 석탄 의존도를 높이는 중이다. 석탄 소비 증가와 맞물려 채굴량도 많아지는 흐름이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지난해 석탄 채굴량이 10% 증가했고, 2022년 10% 정도 더 늘어날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세계가 단계적으로 석탄 발전을 줄여나가겠다는 약속이 수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2030년대까지 석탄 발전을 감축하고, 선진국이 내는 기후변화 적응기금을 증액하기로 했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석탄 사용량 증가가 기후변화 지침 이행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염려하는 것.

(사진/픽사베이)
유럽연합, 일본, 한국은 가능한 한 빨리 러시아로부터 남아 있는 모든 화석연료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진/픽사베이)

한국, 러시아 석탄 3번째로 많이 수입해

그런가하면 최근 핀란드의 기후, 에너지 연구기관인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의 ‘1년 후, 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년간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56억5586만 유로를 수입해 세계에서 14번째로 많이 수입한 국가로 나타났다.

보고서에는 한국이 러시아로부터 석탄은 세계에서 3번째, 천연가스는 세계 7번째로 많이 수입했다.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수입한 한국 기업은 한국중부발전과 한국남동발전, 한국동서발전, 포스코, 현대제철 등이다.

보고서에서는 러시아의 2023년 1월~2월 화석연료 수출 수익이 지난해 3월(2022년 최고치)보다 50% 감소했고, 유럽연합(EU)으로의 수출 수익은 거의 90%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여전히 화석연료 수출로 하루 약 5억6천만 유로(약 780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또한 전쟁 이후 1년 동안 화석연료 수출로 2983억 유로(약 413조 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를 작성한 라우리 뮐리비르타 선임분석가는 “2022년 EU는 러시아로부터의 화석연료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빠르게 줄였고, 석유와 가스 공급을 무기화하려는 푸틴의 시도는 대대적으로 실패했다”고 말하면서도, “유럽연합, 일본, 한국은 가능한 한 빨리 러시아로부터 남아 있는 모든 화석연료 수입을 중단하는 동시에 청정에너지로 전환해 수입 화석연료에 대한 전반적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픽사베이)
중동부 유럽에서는 전쟁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원전 건설에 나서는 분위기다. (사진/픽사베이)

중동부유럽, 친환경 에너지원 건설 나서

이런 전세계적인 여론에 힘입어 실제로 전쟁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원전 건설에 나서는 국가도 많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석탄 화력 발전 의존도가 높았으며, 석탄의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수입해온 폴란드는 전쟁 이후 러시아 제재 차원에서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금지했으며, 대체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채택했다.

2022년 11월 신규 원전 건설 협력 대상으로 선택된 웨스팅하우스는 폴란드 북부 원전 건설에 참여하며, AP 1000 원자로 3기가 사용될 예정이다. 폴란드는 또 한국수력원자력과 폴란드 최대 민간 에너지사 제 파크(ZE PAK, Zespół Elektrowni Pątnów-Adamów-Konin), 폴란드 국영 에너지그룹(PGE, Polska Grupa Energetyczna S.A.)이 참여하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합의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러시아와 핵기술, 핵연료 부문에서 협력을 끝내고 있다. 체코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Zaporizhiya) 핵시설을 공격한 것에 대응해 러시아의 핵 연구 공동 연구소(JINR, Joint Institute for Nuclear Research) 회원 자격을 2022년을 끝으로 탈퇴했다. 또 2024년부터 테멜린(Temelin) 원자력 발전소를 위한 핵연료를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의 프라토메(Framatome)로부터 공급받을 예정이다.

슬로바키아의 국영 전력 회사인 슬로벤스케 일렉트라른(Slovenske Elektrarne) 역시 최근 러시아로부터 핵연료 구매를 중단할 것이라 밝혔다. 슬로바키아는 모호브체(Mochovce) 원자력 발전소에 필요한 핵연료 공급을 위한 국제 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불가리아 코즐로두이(Kozloduy) 원자력 발전소는 미국의 원자력 기업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의 스웨덴 지부와 5호 원자로에 필요한 1,000메가와트(MW) 규모의 핵연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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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 세계 전력 생산의 39%를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차지했다는 긍정적인 지표도 있다. (사진/픽사베이)

“전쟁, 오히려 청정에너지 전환 앞당길지도”

국제에너지기구(IAEA)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히려 청정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최근 환경 비영리 연구소이자 싱크탱크인 리서치 회사 '엠버'가 발표한 새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풍력과 태양열을 포함한 재생 에너지에 의해 생산되는 전 세계 전력의 비율이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해 전 세계 전력 생산의 39%를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차지했다”고 전하며 “풍력과 태양광의 성장만으로도 전체 신규 전력 수요의 80%를 책임질 정도로 충분했고, 모든 재생 에너지는 92%를 충족했다”고 밝혔다. 세계 전력 수요의 93%를 차지하는 78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는 지난해 풍력과 태양광 사용 급증이 석탄화력발전의 상승량을 크게 앞질렀고, 천연가스 소비는 지난해 높은 가격이 형성되며 사용량이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엠버의 수석 전기 분석가이자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마우고르자타 와트로스-모티카는 “우리는 청정 전력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며 “석탄 발전의 단계적 감소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가스 발전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라고 전했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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