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 기후와 바이러스의 연결고리 ①박쥐의 이동이 불러온 참사
[기후환경] 기후와 바이러스의 연결고리 ①박쥐의 이동이 불러온 참사
  • 박상미 기자
  • 승인 2023.05.16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생 동물로 인한 인명 피해, 환경오염의 댓가
WHO, 팬데믹 해제 선언 “대유행 위험은 여전”
숲을 잃은 박쥐, 인간 생활권 안으로 강제 이주

[한국뉴스투데이]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명저 ‘총, 균, 쇠’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차이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문명, 국가의 위상, 종족의 성장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노력이 아닌 놓여진 환경의 차이라는 의미다. 현대의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미래에 살게 될 환경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눈부신 문명 발달의 부작용으로 발생한 환경오염으로 바이러스 질병이 전 세계를 공격하며 인간의 생존권을 노리고 있다. 지구 생태계의 변화와 그로 인해 맞닥뜨리게 된 바이러스의 현주소를 짚어봤다.<편집자주>

▲로버트 베이어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바뀌면서 일부 박쥐가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이동했다”며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지역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사진/픽사베이)
▲로버트 베이어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바뀌면서 일부 박쥐가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이동했다”며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지역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사진/픽사베이)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침체됐던 3년이 드디어 과거의 역사가 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발령된 최고 등급 보건 비상사태인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해제를 선언했다.

암흑의 39개월 
테드로스 애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5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팬데믹의 종결을 발표했다. 대다수 국가가 일상으로 회복됐다는 판단에서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지난 1년여 백신과 집단감염으로 인한 면역력 강화로 팬데믹이 하향 안정세를 보여 왔고 사망자도 줄어들었으며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부담도 완화됐다"면서 "대부분 국가에서 코로나19 이전으로 일상이 회복됐다"고 설명했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3년 3개월 만이다. WHO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직후인 2020년 1월30일 세계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의미하는 펜데믹을 선언했다. 팬데믹 기간 3년3개월여 동안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한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700만명 정도이지만,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실제로는 최소한 2천만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존스홉킨스대학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코로나19 감염자는 총 6억7660만9955명이며 이중 688만1955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 백신은 133억3883만도스가 투약됐다. 

국내 피해도 상당했다. 국내에서는 5일 0시까지 코로나19 환자가 3125만1203명 발생해 이 중 3만451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위주 생활을 하는 동안 의료계의 부담은 가중됐고 산업, 문화, 교육 등 대부분의 일상이 침체기를 겪었다. 퇴보하지 않기 위해 현상 유지에 힘쓰면서 ‘극복’이라는 것이 꿈같이 느껴지던 2020년, 2021년도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국가별 사망자는 미국이 116만2403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브라질 70만1833명, 인도 53만1642명, 러시아 39만8463명, 멕시코 33만3913명, 영국 22만3396명 등의 순이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에 이어 인도네시아 16만1404명, 이란 14만6058명, 일본 7만4633명, 필리핀 6만6444명 등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은 초창기에는 감염자 및 사망자 통계를 정부 사이트를 통해 공개했지만 시진핑 정부가 제로코로나와 도시봉쇄 정책을 포기한 이후 대유행이 본격화되자 관련 통계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팬데믹은 해제됐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 마비의 위험은 여전하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그러나 아직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가 추가로 등장할 수 있고 또 다른 대유행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직 우리 곁에 머물고 있으면서 여전히 모양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이제 다른 질병처럼 코로나19도 비상 대응에서 벗어나 일상적 관리 대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숲을 잃은 박쥐들
‘인류의 전환기’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코로나19의 발생은 사실상 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과학계는 코로나19 발발과 관련하여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늘면서 치명적 감염병이 등장했다고 주장해왔다. 코로나19가 창궐한 2021년 환경생태 분야 국제학술지 ‘종합환경과학’에 따르면, 중국에서 시작된 이 감염병은 기후변화로 인해 박쥐의 서식지가 이동하면서 발생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과 미국 하와이대 연구진은 최근 100년간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중국 남부와 라오스, 미얀마 지역이 박쥐가 서식하기 좋은 식생으로 바뀌면서 이번 코로나19의 발원지가 됐을 가능성을 ‘종합환경과학’을 통해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들 지역의 최근 100년간 식생의 변화를 추적 조사했다. 온도와 강수량, 구름의 양, 일사량, 이산화탄소 농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식생의 변화를 지도로 만들었다. 중국 남부와 미얀마, 라오스 지역은 한세기 전만 해도 열대 관목수림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박쥐가 서식지로 애용하는 열대 사바나와 낙엽수림으로 바뀌었다. 중간 크기 이하의 관목이 즐비한 열대 관목보다는 관목보다 키가 큰 열대 기후의 산림이 박쥐의 먹이를 풍부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연구진은 1900년대 초반 박쥐 종의 전세계 분포와 현재 박쥐 종의 분포를 분석했다. 최근 100년간 40종의 박쥐가 중국 남부와 인접한 라오스, 미얀마 지역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박쥐가 보유한 코로나바이러스 종류도 약 100종 이상인 것으로 추정했다. 과학자들은 전세계에 분포한 박쥐 개체군이 약 3000종의 서로 다른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쥐 한 종으로 따지면 평균 2.7종의 코로나바이러스를 몸에 품고 있다.

박쥐는 다양한 바이러스를 몸에 보유하고 있지만 염증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핵심 숙주로 지목된다. 감염병 학자들은 특정 지역에 갑자기 박쥐 종이 늘어나면 사람이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의 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로버트 베이어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바뀌면서 일부 박쥐가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이동했다”며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지역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베이어 연구원은 또 “최근 박쥐 종이 늘어난 것으로 보이는 중국 남부 지역은 코로나19의 중간 숙주로 지목된 천산갑의 주요 서식지와 일치한다"며 “코로나19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 감염병이자 2002년 창궐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도 중국 남부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게브레예수스 WHO 총장은 그러나 아직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가 추가로 등장할 수 있고 또 다른 대유행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뉴시스)
▲게브레예수스 WHO 총장은 그러나 아직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가 추가로 등장할 수 있고 또 다른 대유행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뉴시스)

지구 생태계 돌봐야 할 때
박쥐의 이동에서 확인했듯이 생태계 변화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에서 박쥐 개체수가 유례없이 늘은 예와 같이, 어떤 장소에 살지 않던 새로운 생명체가 등장하는 것은 바이러스의 이동과 감염병의 창궐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 우한 박쥐의 위협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이동한 것에 더해 서식지가 인간에게 정복되면서 숲이 아닌 인간 생활권으로 박쥐가 편입된 결과였다.

동물의 서식지 변화는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 외에도 인간과의 충돌로 인한 피해를 야기한다. 지난 3월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된 워싱턴 대학교 생태계 감시 센터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후 위기가 인간과 야생동물 간 갈등을 키우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새 터전을 찾아 이동하면서 인간과 인명피해와 같은 물리적 충돌, 전염병 감염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전 세계 6개 대륙, 5개 대양에서 발생한 인간과 야생동물의 갈등 사례 49건을 분석했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갈등은 육상, 해양, 담수 등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자연환경에서 일어났다. 또한 포유류, 파충류, 조류, 어류 등 동물의 종과도 무관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갈등 결과 인간의 사망과 부상이 전체의 43%, 동물의 죽음과 부상이 45%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요한 것은 갈등 사례 중 80% 이상이 기온과 강우량 변화와 같은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주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9년 탄자니아가 극심한 가뭄을 겪었을 당시 먹을 것이 떨어진 코끼리 떼가 농장을 습격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오랜 가뭄으로 굶주린 코끼리가 마을에 내려와 농작물을 먹고 수도관을 파괴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이 코끼리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코끼리 떼가 언덕 아래로 추락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생 동물로 인한 인명 피해도 상당하다. 히말라야 설산 지대에 서식하는 눈표범은 지구온난화로 먹이를 구하지 못하자 사람이 사는 마을에 등장해 인명 피해를 입혔고, 호주, 인도네시아 등에 서식하는 동부 갈색 뱀의 경우 높아진 기온으로 공격적인 행동 습성이 더욱 강해져 인간을 문 사건도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바다 수온이 상승하자 혹등고래가 대규모 이동 시기를 바꿔 선박과 충돌하는 사고 역시 매년 늘고 있다. 

연구팀은 향후 기후 변화가 심화되면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대규모 이주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 말하며 그만큼 이들의 갈등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런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간과 야생동물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정 사건을 연구하며 사건의 패턴을 파악해 갈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회복 로드맵 
우리 방역당국은 팬데믹 해제와 관련하여 지난 8일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 화상회의를 열고 코로나19 위기단계 하향과 방역조치 전환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 따라 엔데믹으로 가기 위한 일상회복 로드맵을 3단계에 걸쳐 시행하기로 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1단계에서는 법정 감염병 위기경보가 최고단계인 ‘심각’에서 ‘경계’로 낮아진다.

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낮아지면 코로나19 확진자 격리 기간도 현행 7일에서 5일로 단축된다. 범정부 차원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해체되고 보건소 임시선별검사소가 문을 닫는다. 휴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발표했던 국내 확진자 통계도 주간 단위로 바뀐다. 다만 확진자 생활지원비·유급휴가 지원은 그대로 유지된다.

당국의 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섞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의료계는 보건복지부가 확진자 검사, 치료, 보험 체계, 비대면 진료 등 의료체계를 정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오명돈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는 “WHO 선언과 별개로 미국은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매뉴얼화한 플레이북을 마련해왔는데, 한국은 WHO가 종료 선언을 하고나서야 대응에 나섰다”면서 “WHO만 기다릴 게 아니라 다음 팬데믹이 당장 내일이라도 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미리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상미 기자 mii_media@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