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논란] ①거부권 후폭풍 일파만파, 준법투쟁 본격화
[간호법 논란] ①거부권 후폭풍 일파만파, 준법투쟁 본격화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5.18 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호법 제정안 공약에도 제정안 거부권 행사한 尹
오열, 실신까지… 간호협회 파업, 불법 의료행위 거부
2023 총선 블랙리스트 등 단체행동 돌입한 간호계

코로나19 상황으로 간호사들의 고된 업무 환경이 사회적으로 조명되며 동력을 얻었던 '간호법'을 둘러싼 의사협회와 간호사협회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까지 ‘국민의 건강’을 들고 일어섰지만, 갈등조정은 한없이 멀어만 보인다. 대리처방이나 수술 거부, 면허증까지 반납하며 규탄에 나선 의료계가 현장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는 시점이다. 간호사법을 둘러싼 갈등 내용과 쟁점, 입장차이와 해외 사례 등을 심도 깊게 짚어본다. <편집자주>

(사진/뉴시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물 건너간 간호법 제정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어제(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집권 2년 차 첫 국무회의를 열고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권을 재가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머리발언을 통해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에 대한 우려 및 이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 불안감 초래 ▲간호조무사, 의사 등 유관 직업군과 간호사 간 갈등을 포함한 사회적 갈등의 미해결 등을 꼽았다.

간호법은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업무 규정을 별도 법률로 분리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으면 정부 이송 뒤 15일 안에 이의서를 첨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로 거부권을 재가했다.

이로써 간호법은 다시 국회에서 표결에 부쳐지게 됐다. 하지만 법안 재의결 시 필요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및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요건 충족은 어려운 상황이다. 간호법 제정안을 반대하며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요구한 여당 국민의힘이 국회 300석 중 3분의 1인 100석을 상회하는 115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헤드오피스회의실에서 간호사 등 진료지원인력 현장 간담회를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믿던 도끼에 발등’ 공약 파기?

윤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의료계 갈등에 따른 현장 혼란, 이에 따른 국민 불안감 가중, 야당 일방 통과라는 절차적 하자 등을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거부권 재가는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미 보건복지부와 국민의힘 등 당정은 지난 14일 고위당정협의회를 통해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바 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공언을 한 바 있어 '공약 파기' 지적까지 일고 있다.

이 날 윤 대통령의 재가는 생중게됐다. 실시간으로 간호법 거부권 행사 소식이 전해지자 대한간호협회 등 관계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경남간호사회 회장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오열하다 실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날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등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 기자회견을 가졌다. 간호협회장과 간부들은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단죄하겠다"고 선언하며 "결코 남용되어서는 안될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민주정치를 어리석은 자들의 선동에 의한 중우정치로 전락시켰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이어 오늘 오전 대한간호협회는 간호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말도 안 되는 허위 사실을 분별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이에 대한간호협회는 1차 간호사 단체행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간호협회가 밝힌 단체행동의 일환에는 그동안 인력 부족 등 병원의 사정을 이유로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의료법상 간호사 업무가 아닌 의료행위를 대신해왔는데, 이를 불법 의료 행위로 규정짓고 법에 정해진 간호사의 업무만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간호협회는 당장 이날부터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해온 대리처방, 대리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L-tube와 T-tube 교환, 기관 삽관, 봉합, 수술 수가 입력 등 불법 의료행위를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김영경(가운데)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관 인근에서 정부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관련 1차 대응방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뿔난 간호계, “정치적 책임 묻겠다"

간호협회의 이런 단체행동은 사실상 예견된 수순이었다. 간호협회는 앞서 단체행동 방식에 대한 의견 조사를 진행했다. 간호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협회에 등록한 전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인원 10만5191명(14일 자정 기준) 중 10만3743명(98.6%)이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이번 조사에서는 적극적 단체행동 여부와 함께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 참여와 간호사가 원하는 정당에 가입하는 1인 1정당 가입하기 '클린정치 캠페인' 참여에 대한 의견도 조사했는데, 그 결과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의견은 64.1%(6만7408명)였다. 또 1인 1정당 가입하기 '클린정치 캠페인'에는 79.6%(8만3772명)가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간호단체가 정치적 심판을 예고하면서 사태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특히 간호협회는 간호법 재추진과 함께 총선기획단을 만들어 간호법을 파괴한 정치인과 정부 여당에 투표로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다.

간협은 "공정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불의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2023년 총선기획단 활동을 통해 단죄하고 파면하는 투쟁을 전개하겠다"며 "간호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전했다. 반면, 두 차례 부분파업과 단식으로 맞섰던 의료연대는 거부권에 따라 17일로 예정된 총파업을 유보했다.

(사진/뉴시스)
전국의 간호사 및 간호대학생들이 국제 간호사의 날인 5월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국제 간호사의 날 기념집회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명분 없는 싸움, 피해는?

간호법 개정안의 큰 골자는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를 기존 의료법에서 분리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간호사의 처우를 향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의료 영역에서 간호를 별도로 구분하는 시도가 의사,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간호법 1조의 '모든 국민이 의료 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는 문구가 가장 큰 쟁점이다. 이 경우 간호사가 의사 없이도 의료 서비스를 위한 '개업'이 가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 때문. 사실상 직역간 서로 침해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놓고 이해관계를 다투는 셈이다. 지난 1년간 갈등이 여·야간 대립을 통해 확산돼 왔다. 이런 의료계 직역간 자존심 싸움과 여야간 힘겨루기가 계속되면서 명분 없는 싸움이 격화돼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