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논란] ③10만 간호사 뭉쳤다 “악법에 맞서 싸울 것”
[간호법 논란] ③10만 간호사 뭉쳤다 “악법에 맞서 싸울 것”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5.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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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 정치인 겨냥…간협,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대규모 집회
“간호법 거부권을 행사토록 한 정치인과 관료, 낙선 운동으로 심판”
대규모 준법투쟁 본격화, 관행적으로 대신한 의사 업무 하지 않기로

[한국뉴스투데이] 코로나19 상황으로 간호사들의 고된 업무 환경이 사회적으로 조명되며 동력을 얻었던 '간호법'을 둘러싼 의사협회와 간호사협회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까지 ‘국민의 건강’을 들고 일어섰지만, 갈등조정은 한없이 멀어만 보인다. 대리처방이나 수술 거부, 면허증까지 반납하며 규탄에 나선 의료계가 현장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는 시점이다. 간호사법을 둘러싼 갈등 내용과 쟁점, 입장차이와 해외 사례 등을 심도 깊게 짚어본다. <편집자주>

(사진/뉴시스)
전국의 간호사 및 간호대학생들이 국제 간호사의 날인 5월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국제 간호사의 날 기념집회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1인 1정당 가입 본격화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로 정치인과 관료를 심판하겠다는 간호사들의 행동이 심상치않다. 지난 19일 서울 강화문에서 진행된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의 '간호법 거부권 규탄 및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 규탄대회'에는 전국 시·도 간호사회와 각 지역 병원, 간호대 학생들까지 자리에 참석해 목소리를 냈다.

이날 규탄대회에서는 주로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간협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인 간호법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공약 파기를 비난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정과 상식에 근거한 정의로운 결정을 기대했는데, 여당과 정부는 ‘간호법이 위험한 법이자 분열만 일으키는 악법’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간호법 거부에 이르도록 했다”며 “국민의 힘과 보건복지부는 입법독주법, 의료체계 붕괴법, 신카스트 제도 등 어처구니없는 허위사실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법은) 미국이 100년 전에 제정하고, 일본에서도 75년 전 제정한 법률"이라며 "전 세계 90여개 국가에서 간호법을 제정했는데, 그 나라 의료체계가 붕괴되었느냐"라고 반문했다. 간협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협은 또 “투쟁 방안의 하나로 간호법 제정에 반대했던 정치권 인사들을 상대로 내년 총선에 사실상의 ‘낙선 운동’을 하겠다”며 총선기획단을 출범시켰다. 또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입법독주라는 가짜 프레임을 만들어 낸 자 등이 다시는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간협은 이를 위해 50만명 간호사와 12만명 간호대학 학생들은 모두 1인 1정당 가입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62만명 간호인은 간호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이 간협의 입장이다. 간협은 "합법적 정치후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김영경(가운데)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관 인근에서 정부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관련 1차 대응방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술 지연 등 의료 고백 우려

간협은 앞서 예고한대로 준법투쟁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준법투쟁을 선언한 대한간호협회는 요양병원을 제외한 의료기관 1,700여곳에 ‘간호사가 수행하면 불법이 되는 업무리스트’를 발송했다.

간협은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안) 타당성 검증’ 연구 결과를 토대로 반드시 의사가 직접 해야만 하는 업무를 정리하고 “간호사가 수행 시 불법이기에 의료현장에서 참고하기 바란다”고 안내했다.

간호사가 거부해야 할 업무지시로는 ▲대리처방과 대리기록 ▲대리수술, 수술 수가 입력, 수술부위 봉합, scrub이 아닌 1st, 2nd 수술 보조 ▲채혈, 조직 채취, 천자 ▲L-tube와 T-tube 교환, 기관삽관 ▲봉합(stapler), 관절강내주사, 초음파·심전도 검사 ▲항암제 조제를 꼽았다.
이런 간협의 입장은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들이 해선 안되지만, 관행적으로 의사 업무를 대신했던 행위를 더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특히 수술 보조·처방 등의 업무를 하고 있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까지 동참한다면 수술 지연 등의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만일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채혈의 경우 간호사가 준법투쟁으로 거절한다면, 당직의와 임상병리사들이 3교대 근무로 밤새 채혈이나 검체 채취를 해야할 수 있다. 간협은 또 의사의 불법적 업무지시는 거부하는 한편 불법진료 신고센터 설치와 현장실사단을 별도로 운영 관리한다는 입장이다.

간협은 18일 성명서를 통해 62만 간호인들에게 적극적인 준법투쟁 동참을 촉구했다. 성명서에 간협은 “간호법을 악법으로 몰아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이르게 한 정치인들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며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법 업무지시에 대해 강력히 거부해달라”고 요구했다.

(사진/뉴시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헤드오피스회의실에서 간호사 등 진료지원인력 현장 간담회를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간협, “복지부, 마녀사냥으로 갈등 조장”

간협이 준법투쟁을 본격화하자 정부는 현장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19일 오후 7차 긴급상황점검회의에서 “간호계의 대규모 단체행동으로 환자 진료에 지장이 초래돼서는 안 된다”며 “간호사들은 환자 곁을 지키며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전했다.

조 장관은 이어 "응급의료와 중환자치료, 수술, 분만, 투석 등은 필수유지업무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의료분야이므로 의료 공백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의료기관은 필요인력 투입과 면밀한 상황관리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간협은 복지부가 간호법을 마녀사냥과 말바꾸기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간협은 당초 복지부가 페이스북을 통해 ‘환자는 간호사 혼자서 돌볼 수 없다’, ‘고령화에 따른 돌봄 수요 변화에 맞추어 직역간 역할 분담과 협력이 필요하다’, ‘간호법안에 간호조무사 차별 조항이 있다’ 등의 글을 게시한 것과 관련해 “간호법에는 간호사 혼자 환자를 돌본다는 내용이 없고, 고령화에 따른 돌봄 수요 변화에 따라 간호인력을 보다 확보하고자 하는 법률이지 직역간 역할 분담과 협력을 방해하려는 법률이 아니며, 간호조무사를 차별하는 조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간협은 특히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간호법 반대단체들을 향해 간호법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국민 불안감을 조성하고, ‘총파업’ 운운하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국민을 겁박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진/뉴시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간호사 vs 간호조무사 갈등은?

간호법은 ‘간호사를 고용하는 병원이나 기관이 의무적으로 이들의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간호사가 부족한 의료기관에 정부가 재정적인 지원을 비롯해 간호사들이 장기근속을 할 수 있게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대통령에 의해 거부된 간호법 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조항이 있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조항 역시 ‘지역 사회’라는 문구다. 이 문구가 간호사가 의사 지도 없이 단독으로 개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

간호계는 의료기관 바깥의 '지역사회'로 간호사의 활동 가능 영역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의료행위는 병원 등 '의료기관' 안에서만 가능했지만,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요양기관, 복지시설, 가정 등에서도 만성 질환자를 대상으로 간호·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돼 의사 협회는 간호사의 개업이 가능해질 것이라 반대하지만, 간호계에서는 의료법에서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막고 있고, 간호법에서도 간호사의 업무를 '진료 보조'라고 명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의견도 많다. 그동안 간호조무사협회가 주장하는 내용은 “간호조무 관련 학원과 특성화고 졸업을 응시 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자격을 고졸로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또 “고졸출신, 학원출신 꼬리표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다. 응시 자격의 학력 제한은 독소조항이며 차별적이고 위헌적"이라고 비난했다.

의사들이 의료법으로 간호사들을 차별하듯이 간호사들이 간호법으로 간호조무사들을 다시 차별한다는 것이 간호조무사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간호계에서는 현행 의료법을 그대로 따온 것이고, 대졸 이상 학력자도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2jh06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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