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 외로운 것은 아니다
혼자일 때 외로운 것은 아니다
  • 정은경 방송작가
  • 승인 2023.06.0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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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you ever felt lonely?
요즘 다니고 있는 영어강좌에서 나온 주제였다. 평일 오전에 수업을 듣다보니 수강생들이 연세 지긋한 어른들이 많았는데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서툴지만 꽤 길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들, 딸들이 외국에 있어서 어버이날에도 혼자 있었다는 둥, 혼자 있으면 늘 외로움을 느낀다는 둥, 아내와 말이 안 통하면 외로움을 느낀다는 둥. 영어로 답하는 것이라 꽤나 단답형으로 할 줄 알았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발음은 서툴고, 문법은 맞지 않더라도 장황하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마치 우리말로 수다를 떠는 것처럼.

놀라웠다. 이전에 주제를 미리 받은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받은 주제였는데, 수강생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순서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중에 누구 하나라도 외롭지 않다고 하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외로움을 이야기하면서도 의외로 다들 유쾌해보였다. 진짜 외로운 걸 감추기 위해 거짓으로 즐거웠던 걸까? 아님 실제로 그렇진 않지만 남들이 보기에 외롭게 보일만한 상황을 남말 하듯 말한 걸까?

내 차례가 오자 뭐라 말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앞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힌트를 얻으려고 했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행복과 비슷해서 순간 찾아왔다가 가버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늘 달고 다니는 것이 외로움이라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었을지도. 나에겐 그 어떤 주제보다 어려웠다. 

결국 나의 대답은 ‘감기에 걸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집에 혼자 있어서 외로웠다.’였다. 좀 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짧은 영어실력으로선 무리였다. 실제로 나에겐 그 상황이 전혀 외롭지 않았지만 단순히 겉으로 봤을 때 외로워 보일 것 같은 상황을 얘기했을 뿐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느낀다’라는 정의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으면서... 

Me time
물론, 혼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외로운 건 아니다. 반대로 여럿이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강사 역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지 이번에 me time이라는 단어를 알려줬다. 자발적으로 혼자 있으면서 힐링을 하는 것.  

어쩌면 나는 그때 me time을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 역시 혼자일 때 외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여럿이 있지만 잘 통하지 않을 때 홀로 떨어진 외딴 섬에 있다고 느끼곤 했다. 사람 많은 방송국에서, 처음 보는 게스트를 대할 때, 팀에서 나혼자만 새롭게 합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소위 '진'이 빠지곤 한다. 그때는 홀로 있는 집이 최고의 힐링장소가 된다.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향에 따라 외로움은 달라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외로움의 정도는 또 달라진다. 나와는 반대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기를 받고, 에너지를 얻는 사람도 있다. 대체로 혼자 있을 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어느 날은 힐링은커녕 외로움에 사무쳐 어쩌지 못할 때도 있다.  

외로움이라는 녀석은 때때로 찾아온다. 혼자 있을 때,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심지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이에게도 찾아온다. 어떤 상황이나 유형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나 기분에 따라 온다.

하지만 여럿이 같이 있을 때 외롭다고 하면 왠지 색안경을 끼고 본다. 내가 이상하거나 그 ‘여럿이’가 이상하거나. 혼자 있을 때 전혀 외롭지 않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감춘다고 여긴다. 나이 든 사람 역시 외롭다고 판단한다. 은퇴를 하고 예전에 비해 사회관계가 줄어들면 외로움의 조건이 하나 더 는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런 상황들이 외로움의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확률이 개개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은퇴를 한 노년 중엔 지금부터 ‘제대로 된 삶’을 즐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이 정말 lonely인지, me time인지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 아니라 마음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그 날의 영어시간으로 돌아가서, 겉으로 보면 자식들과 같이 있어야 할 어버이날 홀로 지내야만 했던 그녀는 정말 외로웠던 걸까? 그날 밝게 웃으며 얘기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어쩌면 굉장한 자유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은경 방송작가 pdirow@naver.com

정은경 방송작가

20여 년 동안 시사, 교양 분야의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 <생방송EBS FM스페셜> KBS <보고싶은얼굴, 그리운 목소리>, <월드투데이>, <라디오주치의> tbs <서울 속으로> 등 다수가 있고, 현재는 TBS <우리동네라디오>를 시민제작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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