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사 "설비투자비 증가·전기료 인상 불가피"
레미콘·건설업계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
정부, 라면 이어 시멘트 가격 인하 압박 ‘고민’
[한국뉴스투데이] 전기료 인상과 함께 시멘트, 철근 등 건설 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원자재 가격 오르면 자연스럽게 공사비가 인상되는 만큼, 업계 갈등이 깊어진다.
t당 12만원 수준
국내 시멘트 물량의 35%를 차지하고 있는 쌍용C&E와 성신양회는 오는 오는 7월부터 톤당 시멘트 값을 14% 인상키로 했다. 업계에 따르면 쌍용C&E는 현재 톤당 10만4800원인 시멘트 값을 11만9600원으로 14.1% 인상할 계획이다. 성신양회는 10만5000원에서 12만원으로 14.3% 인상키로 했다.
쌍용C&E의 2021년 상반기 시멘트 가격은 톤당 7만5000원이었다. 이후 2021년 7만8800원으로 인상 후 2022년 4월 9만 800원, 2022년 11월에는 10만 4800원으로 인상했다. 성신양회 역시 2021년 상반기 톤당 7만5000원이었던 시멘트 가격을 2021년 7만8800원, 2022년 2월 9만2500원, 2022년 11월에는 10만5000원까지 올렸다.
두 회사는 원가 인상과 신사업 투자, 금리 변동과 환율 그리고 무엇보다 전기료가 오르며 원가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 인상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나머지 업체들도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레미콘과 건설업계는 시멘트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유연탄 가격이 하락한 만큼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해 갈등이 야기된다. 레미콘과 건설업계는 이미 지난해 한차례 공정거래위원회 제소와 조업 중단 등 강경한 대치를 통해 시멘트업계를 규탄한 바 있다.
시멘트는 레미콘 업체들 통해 전국 각지에 있는 건설 현장에 공급하는 구조다. 시멘트 가격이 오르면 레미콘 가격도 따라 오를 수 밖에 없다. 이는 곧 건설현장의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 경우 대형 건설사는 철근이나 시멘트 등의 주요 자재를 연간으로 계약해 당장 큰 타격은 적다. 하지만, 공사 수주 건에 따라 레미콘을 받는 중견·중소형 건설사는 시멘트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
간담회도 개최했지만
갈등이 깊어 지자 국토교통부가 시멘트업체와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등을 한 자리에 모았다. 지난 16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시멘트 유통기지 현장을 방문해 시멘트 재고 등 수급상황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원희룡 장관은 시멘트·레미콘·건설업계가 참석한 간담회를 개최해 쌍용C&E, 성신양회 등 최근 시멘트 업체들이 발표한 가격인상 계획에 대해 업계 의견 및 애로사항 등을 청취했다. 레미콘 업계와 건설업계는 “지난해 시멘트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데 이어 올해도 추가로 가격이 인상될 경우, 공사비에 대한 갈등으로 건설현장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원 장관 역시 “지난해 t당 8만원에서 10만원으로 한 번에 가격을 크게 올렸으니 당분간 숨고르기를 하겠거니 했는데 올해 또다시 12만원 선까지 올리면 국민들로서는 팔짝 뛰고 뒤로 넘어질 노릇일 수밖에 없다”며 과도한 가격인상에 우려를 내비쳤다.
하지만 시멘트 업계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자리에서 이현준 한국시멘트협회장은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에 맞춰 질소산화물방출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투자비용만 3조원에 달한다”면서 “질소산화물방출 저감을 위한 SCR설비투자를 한 이후에도 상당한 운영비용이 발생하는데, 시멘트 업계가 자체적으로 감당하고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시멘트 시장 규모는 5조원 미만으로 국내 1위 건설업체 매출의 절반도 되지 않는데 환경단체들은 질소산화물 발생량을 100bpm까지 낮추라고 한다”며 “유연탄 가격이 하락했으니 시멘트 가격을 낮추라고 할 것이 아니라 현재 시멘트 업계가 부담하고 있는 다른 비용들도 고려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등 첨예, 우회적 압박 예고
이에 대해 배조웅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이번 가격 인상까지 계산하면 (2년간) 시멘트 값이 52%가량 오르는 것"이라며 "시멘트 제조에 사용되는 유연탄 가격이 t당 460달러에서 133달러로 4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는데 시멘트 값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또 올린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시멘트 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우리는 인상된 가격대로 시멘트를 받아올 수밖에 없고, 건설업계는 인상된 가격대로 결제를 해주지 않을테니 결국 둘 사이에서 레미콘업체만 모든 손실을 떠안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시권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역시 “현재와 같은 시멘트 가격 상승은 건설업계에게는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 대비 53% 하락했고, 전기값은 올해 1분기에 10%정도 올랐기 때문에 시멘트 가격을 올릴 게 아니라 적어도 18% 낮추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는 간담회를 통해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경우 시멘트업계가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항만하역장비 시설 이용권한을 분산시키는 방안을 건의하는 등 시멘트업계를 우회적으로 압박할 계획까지 내비쳤다.
항만하역장비 시설 이용권한 분산이란 유연탄 등 시멘트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가 해외 수입을 통해 들여올 때 항만에 설치된 하역장비 독점사용권을 시멘트업계 외에 건설사 등 다른 수입업체들도 나눠 가지는 것을 말한다.
정부, 원가 공개 압박 가해
이 날 간담회에 앞서 지난 9일에도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조달청 등 4개 정부 기관과 시멘트협회, 레미콘공업협회, 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건설협회,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양측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정부도 칼을 뽑을 모양새다.
원 장관은 "기초적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며 시멘트 업체들을 겨냥해 원가 공개 압박을 가했다. 아울러 “각 업계는 갈등상황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시멘트 가격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임해주기를 바란다”며, “국토교통부는 업계 간에 원만한 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산업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방송을 통해 지난해 말 크게 오른 라면값에 대해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기업들이 밀 가격을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특히 추 부총리와 원 장관이 최근 들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완화 등에서 보조를 맞춘 만큼 시멘트 가격 역시 조만간 정부 차원의 인하 관련 움직임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개입과 노력 끝에 만약 양측이 협상에 성공하더라도 시멘트 업체가 레미콘·건설사에 가격인상을 일방 통보하는 현재 체제를 유지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