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기쁨을 훔쳐간 야구장 암표
기다리는 기쁨을 훔쳐간 야구장 암표
  • 김민선
  • 승인 2012.05.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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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암표거래 성행, 처벌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는 ”가치”

# 야구점퍼에 야구모자를 챙겨 쓴 정모씨와 친구2명은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1시간 일찍 야구장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현장매진에 표를 사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운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암표를 구입한다. 일반석기준 표 값은 1인당 만원, 하지만 암표상은 3만원을 불렀고, 이들은 3명의 총액인 9만원을 지불한 끝에 겨우 야구장에 들어선다.

# 따뜻한 날씨에 모처럼 대가족나들이를 계획한 주부 박씨, 손수 만든 도시락을 싸서 10명의 식구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수많은 인파들에 미리 예매를 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줄을 기다렸으나, 역시나 표는 모두 매진이다. 이 때 다가온 암표상은 한 사람은 공짜로 해주겠다며 10장 값인 30만원만 받겠다 회유한다. 박씨는 오랜만에 나들이를 망치고 싶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암표를 구입한다.

한국프로야구 700만 관중시대 , 2012년 4월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시민들이 표를 구입하는 장면은 이러하다. 암표거래는 이제 야구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표를 구입하는 일반적인 통로가 되어 버렸다. 암표상들은 사전에 인터넷예매를 하거나  야구장에 일찍 도착하여 대량의 표를 구입하여, 티켓이 금방 매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나서 정상가에 구매한 표에 대폭금리를 취하여 무려 3배에 달하는 값에 다시 되판다. 물건구입과정을  대신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은 판매의 중간단계 사업자들이 정당하게 돈을 버는 방식이다. 분명 그들의 시간과 노력이 물건을 미리 구입하는 과정에 수반된 것이므로.

이렇듯 일정정도의 중간수수료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나, 터무니 없이 많은 값을 최종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문제가 되며, 더군다나 그것이 불법으로 유통되는 것은 당연히 처벌대상이다. 그렇기에 '암표'가 야구장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은 알면서 당하는 사기이며, 불법으로 돈을 버는 암표상들의 행태는 분명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비싼 값에 표를 구입했다는 억울함 보다 사람들의 기쁨을 앗아갔다는 것이 더 그들에게 화가 나는 이유이다.

특정종목의 스포츠가 주는 경기방식에서부터 내용, 승부 그로 인한 희열과 선수에 대한 호감 등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통해 얻는 기쁨이다. 하지만 스포츠경기가 시작하기 전, 그것을 기다리는 행위 또한 스포츠로 맛보는 기쁨중의 하나가 된다. 경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하며, 들떠서 얘기를 나누고 목도 축이는 기다림의 과정, 이것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은 직접 경기장에 오는 것이다.

헌데 암표상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했다는 억울함과 분노로 기다리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가고있다. 야구장에 성행하는 암표상들을 단속하고 처벌해야 하는 까닭은 돈보다 더 큰 '기다림이 주는 기쁨'이란 가치를 가로챈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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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 happy6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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