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존중하는 방법

2021-11-26     정은경 방송작가

 

혼자 밥을 먹을 때 대충 차려서 먹지 말라고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군가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주는 이가 없으니
스스로라도 격식을 차려, 마치 누가 정성 들여 차려 준 것처럼 챙겨서 먹어야 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보관 용기째 먹지 말고, 예쁜 그릇에 정성 들여 차려서 먹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대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혼자 살고 있는 내 친구도 다른 건 몰라도 밥은 꼭 그릇에 덜어 먹는다.
밥은 혼자 사는 이들이 많이 하는 방법일 텐데… 
한 번에 많이 한 뒤, 플라스틱 통에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먹을 때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는다. 
다 데워지면 그 플라스틱 그릇 통째로 먹어도 될 것을…
그 친구는 굳이 다시 밥그릇에 옮겨 담는다. 
반찬 역시 비록 맛있는 걸 해 먹거나 멋들어지게 장식까지 하지 않지만 
집에서 보내온 밑반찬들을 하나하나 꺼내 그릇에 담아서 혼자만의 만찬을 즐긴다. 
이것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이자,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란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뒤처리는?
혼자 사는 이들이라면 설거지도 스스로 해야 할 텐데… 
우렁각시가 있으면 모를까, 설거지 역시 내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그릇을 많이 쓰지 않았다면 간단히 한두 개만 씻으면 되는 것을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설거지를 해야 하는 처지가 돼 버린다. 
우아하게 밥을 먹던 나는 설거지를 하는 순간 졸지에 부엌데기로 전락해버리고,
신데렐라의 예쁜 드레스가 누더기가 되는 것처럼 환상은 사라져버린다. 

삽화/

신데렐라 이야기가 나와서 잠깐 그 흔한 얘기를 해 보면….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목적으로 
로고가 어디서나 눈에 띌 수 있는,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명품 옷이나 명품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 
비록 집에선 목이 축 늘어진 티 쪼가리나 무릎이 툭 튀어나온 낡은 츄리닝을 입을지라도….
밖을 나설 때는 마치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명품으로 치장한다. 
 
부자가 아니고, 누군가 공짜로 준 게 아니라면….
분명 그 명품을 사기 위해서 다른 걸 아끼고, 아껴서 마련한 것 일 텐데….
과시할 목적으로, 혹은 나를 위로하는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는 대가로….
그 무슨 이유가 됐든 명품 따위로 자신을 드러내야만 할까?
 
그 누구든 명품에 비할 수 없는 귀한 존재이자, 스스로가 명품이다. 
그 귀함을 고작 명품 따위로 가릴 필요는 없다. 
형식적으로 꾸민다고 해서 그 귀함이 더 돋보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귀함이 빛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대하는 마음이 아닐까?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반찬을 예쁜 그릇에 담느냐, 아니냐로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판단하지 말자. 
이미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니….
굳이 보이는 것에 집착하거나 형식적인 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나는 오늘, 
플라스틱 통에 담긴 밥을 먹고, 김치는 덜지 않고, 
금방 쉴 것 같은 나물류만 접시 하나에 몽땅 담아 만찬을 즐긴다. 
이렇게 해서 난 스스로를 부엌데기로 만들지 않았고, 오늘 한 번 더 나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