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2022-02-28     김민희 배우

"나이 든다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 오를수록 더 지치고 힘들지만, 당신의 시야는 점점 더 넓어진다."   -잉마르 베리만-

한살 한살 나이를 먹고 살아가는 순간순간은 그 여정이 길고 고되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전광석화처럼 쏜살같이 흘러있곤 하다. 그 느낌은 때론 허탈하기도 하지만, 지나온 세월만큼 습득된 것들이 더 많은 것을 멀리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흘러가는 인생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도 있고 변하는 것도 있으며 변해야만 했던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들을 지혜롭게 구별할 수 있는 혜안이, 나이 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냥 나이가 드는 게 아니다. 그런 보상과 함께 많은 것들을 어깨 위에 짊어져야만 한다.

"나는 태어날까 말까를 나 스스로 궁리한 끝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어떤 부모, 어떤 환경을 갖고 태어날까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 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이미 결정되어 있음을, 그리고 결코 되 물릴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 중-

태어나서의 환경이 더이상 당연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순간, 만족과 불만에서 더 나아가 행복과 불행을 생각할 수 있다. 비교 대상이 곧 거울이 되어 내 처지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 그리고 나이를 먹는 것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 정해준 불변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환경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나이 들면서 그냥 늙어가는 것이 아닌 넓은 시야를 갖고 지혜로워 질 수도 있다.

다채롭기에 인생이고, 흘러가기에 인생이다. 태어날 때 주어진 것에서 절대적으로 변할 수 없는 것들은 차치하고, 다채롭게 흘러가는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

고여있는 물은 썩는다. 어디로 흐르든 흘러가야 그것은 살아있는 물이 된다.
살아있는 물 안에는 생명이 상생하며 공존한다. 흐르는 물살이 돌을 깎아 새로운 모양을 갖게 한다. 그 물길이 지나면서 어느 때는 급물살을 타기도 하고, 큰 강을 만나 천천히 흐르기도 한다. 

어떠한 인생을 살게 되더라도 세월이 흘러 어느 순간 내 마음을 들여다봤을 때, 그 안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멈추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줘도 괜찮을 듯하다.

충분히 사랑하며 산다는 건, 삶을 충만하게 한다. 어떠한 유속으로 살아가든 온전히 사랑한 사람의 인생은 더욱 빛이 날 것이다.

당신의 나이가 몇 살이든, 오늘은 당신에게 남은 인생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