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1km의 차이

2022-05-27     정은경 방송작가
삽화/

‘저 다리를 건너고 싶다’
‘저 다리를 건너서 돌아오고 싶다’
달리기할 때 반환지점에서 늘 이런 생각을 한다. 

바로 눈앞에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보이지만 더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한다. 지금껏 나의 달리기 패턴이다. 

매번 같은 코스를 돌다 보니….
익숙한 풍경이면서도 때로는 지겨운 느낌도 든다. 
저 앞에 보이는 다리만 건너면 오던 길이 아니라 타원형의 코스를 돌 수 있는데,
새로운 코스를 갈 수도 있는데….
조금 더 가는 것이 두려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늘….

나는 매주 5km를 달린다. 
더 무리하지 않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뛸 때마다 5km의 막바지가 되면 
숨이 넘어갈 듯 힘들어 더 이상 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뛰다 보면 조금씩 편해진다는 데 이상하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정확히 2.5km에 다다르면 바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리곤, 도착해선 허리를 숙이고 숨을 ‘헉’, ‘헉’ 쉬어댄다. 

하지만. 오늘은 다리를 건너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화창한 날씨가,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이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달리기가 힘들다면 걸어서라도 다리를 건너, 타원의 코스를 돌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오늘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다리를 건너는 것!! 걸어도 상관없다. 

방법은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천천히 달리기. 
걷는 것보다는 조금 빠르게, 평소 뛰는 것보다는 조금 느리게….

속도를 줄이고 나니 한결 편하다. 
1km, 2km, 3km를 가도 숨이 차지 않고 괜찮다.
얼굴에 닿는 바람의 감촉은 평소 달릴 때와 다름없이 부드럽다. 
 
숨이 차지 않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눈 앞에 펼쳐지는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좀 과장을 하자면, 구름이 찬찬히 흘러가는 것도 보인다. 
길가의 새순이 돋아나 파릇파릇한 나무들도 거기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느낀다.
이제껏 달리기하면서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다. 

그동안은 뛰는 것이 힘들어 주변을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보인다. 보이기 시작한다. 주변의 풍경들이 내 눈에 들어온다. 

속도를 보니 평소 달리는 것보다 겨우 1km/h 정도 늦다. 
시속 8km에서 시속 7km로 속도를 줄이고 나니 전혀 딴 세상을 본다. 
늘 보기만 하고 가지 못했던 저 앞의 다리도 무난히 건넜다. 
아직 뛸 수 있는 힘도 충분하다. 
때문에 끝까지 걷지 않고, 뛰어서 무난히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 내가 뛴 거리는 5km가 조금 넘은 5.89km. 
   
그동안 나에게 누가 시속 8km로 뛰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힘들어하며 8km 속도로 뛰었을까?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덜 힘들면서, 더 많은 것들을 보며,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