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법원, 故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 징역 7년으로 감형

자살 암시 문자를 보복 협박으로 인정 않은 1심 판단 유지 극단적 선택 결과 가해자에게만 책임 물을 수 없다며 감형 유족·인권단체·정치계 반발...검찰 상고에 재판 대법원으로

2022-06-15     정한별 기자
지난해

[한국뉴스투데이] 고등군사법원이 공군 내 성추행 및 2차 가해 등에 시달리다 숨진 故이예람 중사 가해자의 2심에서 가해자만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다며 2년을 감형해, 유족과 시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군사법원, 2심서 성폭력 가해자에 2년 감형

14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특별가중처벌법상 보복·협박 등의 혐의를 받는 공군 장 모 중사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보다 2년 적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1심에서 재판부는 장 중사가 성추행 후 자살 암시 메시지를 보낸 것을 두고 ‘사과 행동’이었다고 주장한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여 징역 9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에 해당 문자 메시지를 보복·협박 혐의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징역 15년을 구형했던 군검찰은 항소했고, 2심에서도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가 외려 2년을 감형하며 징역 7년을 구형하자 군검찰은 재차 상고해 재판은 대법원으로 넘겨졌다.

이날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살 암시를 포함한 사과문자를 보낸 것을 구체적인 해악 고지로 볼 수 없는 점, 이후 피해자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 행위를 했다는 정황이 발견되지 않는 점을 볼 때 구체적으로 피고인이 어떤 위해를 가했다는 것을 알 수 없으므로 해악 고지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상급자들에게 피고인의 범행을 보고했음에도 은폐·합의를 종용받았고, 군내에서 마땅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는 등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고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는 등 정신적 고통이 이어졌다”며 “이런 사태가 군내에서 악순환되는 상황 또한 피해자 극단적 선택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극단적 선택의 결과를 오로지 피고인 책임으로만 물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감형의 원인을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범죄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면서 잘못을 교정하고 사회에 재통합할 수 있게 하는 형벌 기능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다소 무거워 부당하다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재판부의 판단에 유족은 자리에서 일어나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 씨는 “뭔 소리야, 이래선 안 되는 거야, 재판장!”이라며 절규했고, 어머니는 충격에 따른 과호흡으로 쓰러져 법정 밖으로 실려 나갔다.

이 씨는 법정을 나와서도 “군사법원에서 이런 꼴을 당할지는 몰랐다. 최후의 이런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고 울분을 토하며 “우리 국민의 아들딸들이 군사법원에 의해서 죽어갔던 거다. 이래서 군사법원을 없애고 민간법원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 측의 강석민 변호사 역시 군사법원이 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강 변호사는 “대법원은 양형을 판단하지 않고 보복 협박 유무죄만 판단할 것이므로 양형을 이렇게(감형) 한 것은 고춧가루를 뿌린 것”이라며 “보복 협박이 인정되면 파기환송이 서울고법으로 갈 건데 법리적 문제가 쉽지 않아 유족이 엄청난 난관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군 구조적 문제로 감형한 만큼 구조 바꿔야

앞서 지난해 3월 2일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이 중사는 선임인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상관에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그러나 군 측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 내용을 조사하는 등 즉각 조치하지 않았고, 이 중사는 가해자와 상관들의 회유·압박 등에 시달리다 타 부대로 전출한 지 나흘만인 지난해 5월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아울러 이후 군인권센터를 통해 이 중사의 사망 이후 공군이 사망보고서에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삭제하고 단순 사망으로 보고하도록 지시한 정황,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가해자 불구속 수사를 직접 지휘한 정황 등이 폭로되기도 했다. 

이에 지난 7일 이 중사의 사망 383일 만에 특별검사팀이 출범해, 당시 성폭력의 진상에 더불어 2차 가해, 부실 수사, 은폐 시도 등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형 소식이 알려지자 군인권센터는 “고등군사법원은 폐지를 앞두고 대부분의 사건을 민간으로 이송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사 사건은) 굳이 고등군사법원에서 판결하겠다고 붙들고 있더니 결국 가해자 봐주기로 항소심을 마무리했다”며 “이 중사 사건으로 말미암아 조직이 사라지니 고인과 유가족에게 보복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군인권센터는 “고등군사법원이 이 중사 죽음의 책임이 군의 구조적 사건 은폐·축소에 있다고 밝히며 가해자의 형량을 감해주었으니, 이제 특검의 책임이 막중하다. 구조적 사건 은폐·축소에 연루된 이들을 낱낱이 찾아내 모두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오늘 유족의 가슴에 다시 한번 대못을 박았다”며 “우리 국민이 공군 성폭력 사건에 특검 도입을 명령한 이유, 우리 국회가 군사법원 폐지 논의를 시작한 이유를 군사법원만 모른다. 더 많은 피해자가 삶을 포기하기 전에 바꿔야 한다. 우리 국회는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포함한 군 사법제도 개혁에 다시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8월 이 중사 사건을 계기로 군 수사기관의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군대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 법원에서 수사·재판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군사법원법의 개정안이 통과된 바 있다. 아울러 해당 개정안에는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해 항소심은 모두 민간 고등법원으로 인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오는 7월 고등군사법원은 폐지돼, 장 중사에 대한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열리며 대법원이 2심 판결을 뒤집는 경우 파기환송심은 민간 고등법원에서 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