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연이은 사고와 재해, 그 원인은 안전 불감증?
대한민국의 연이은 사고와 재해, 그 원인은 안전 불감증?
  • 이성관
  • 승인 2014.10.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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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원인 정확히 규명하지 못하면 참사는 계속된다.
[한국뉴스투데이 이성관 기자] 2014년 4월 16일, 승객 476명을 태우고 출항한 세월호는 현재 186일이 지난 10월 18일 현재도 항구에 도착하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승무원과 해경의 말에 공포를 누르며 구조를 기다리던 304명의 탑승객들은 모두 다시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 사건을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4.16 사태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월호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대표성을 내포한 명칭이지만 4.16 사태로 부르는 이면에는 정부의 구조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내포되어 있다. 세월호 탑승객 중 스스로 빠져나온 172명을 제외한 승객 모두가 구조되지 못했다. 이 과정은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었으며, 온 국민은 그 잔인한 화면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그 이후로 188일이 지난 지금 수많은 언론 매체에서 안전 불감증이란 말로 사고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날의 승객과 선원은 얼마나 안전에 둔감하였는가? 조사결과 승객들은 가용할 수 있는 구명조끼를 대부분 착용하였고, 에어포켓을 사용하였으며, 구조원의 지시에 따라 차분하게 대비했다. 심지어 승무원들은 사고가 나자마자 해경의 구조선을 타고 제일 먼저 배를 떠나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배에 탑승한 인원 중 안전에 둔감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한 것은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구조과정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외에도 올해 일어난 대형 인명사고는 수차례 일어났다. 그때마다 언론에서는 여전히 “안전 불감증이 만연하다”는 주제를 가진 기사를 쓴다. 가장 최근인 17일, 16명의 생명을 앗아간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에도 안전 불감증에 관한 기사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도 없이 안전 불감증을 말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그것은 오히려 희생자에게 탓을 돌리기에 편리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 아닐까?

올해 대형 인명피해가 있었던 사고를 정리해 보았다.
대형 사상자 발생사건
사실 이밖에도 피해자가 적거나 사망자가 없을 뿐 작지 않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 사고 원인을 살펴보면 안전 불감증이라고 여길만한 사고는 얼마나 될까? 사고가 난 것과 사람들이 얼마나 죽거나 다치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한다. 사고 후 대처에 따라 사상자 수는 현저히 줄어든다. 일예로 얼마 전 홍도에서 있던 여객선 사고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에는 보도를 의심하거나 정부와 해경이 컨트롤타워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실제로도 승객들을 구한 것은 주변에 있는 어선이었다. 국민들은 승객들의 죽음이 그들의 안전 불감증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사후 구조과정의 문제에만 국환 되지 않는다. 앞서 열거한 사고 중, 뚜렷하게 안전 불감증의 결과라고 결론 내릴 만한 사건은 경주에서 일어난 일명 ‘마우나 사건’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보면, 그 안에 지역사회의 관행과 부실, 그리고 유착관계가 있다. 경주의 건축 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안전 불감증 환자라서 부실한 건물을 짓게 허가해 주었을까? 사건 당시 안전 불감증 이야기를 하면서 폭설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부실한 체육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한 주최 측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이 온다고 체육관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무속인 정도일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부실한 체육관에 폭설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밀어 넣은 -안전 불감증에 걸린- 주최 측도 아니고, 폭설에 무너지는 건물을 건설하도록 허가해 준 공무원의 안전 불감증도 아니다. 거기에는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이 문제가 원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은 어째서 뿌리 깊은 안전 불감증을 언제나 최우선 원인으로 진단하는가? 이 질문의 답은 ‘책임’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을 조금만 파고들면 드러나게 되는 것이 관행과 시스템이고 이것은 곧 사회 구조이다. 이 사회구조의 틀을 바꾸지 않고서는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민도 공무원도 정부도 알고 있다. 그 증거로 세월호 사건 이후에 정부는 안전한 사회를 표방하고 있고, 국민들은 안전에 대한 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책임 물을 곳이 없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안전을 부르짖고 있는 상황에서 사고의 원인은 개인의 일탈적인 안전 불감증 밖에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구조 개선이라는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그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기 위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가 바로 안전 불감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전 불감증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언론은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정부의 ‘책임전가 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에 원인으로 또다시 등장한 안전 불감증. 사건이 있기 전 현장 사진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환풍구에 올라가지 않으려고 최대한 밀착해 있다. 공연이 진행 되면서 환풍구 쪽을 밟고 올라서면 공연이 더 잘 보이기 때문에 점차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 왔을 것이다. 만약에 그 자리에 사람들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찰측의 변명은 인력부족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집회 현장 전체를 둘러싼 경찰 병력과 유병언의 금수원을 수색을 위해 나타난 5000여명, 제주 강정마을에 상시 경찰 벽을 만드는 500여명, 밀양 송전탑 현장에서 분뇨를 뒤집어쓰고도 후퇴하지 않은 용맹한 경찰들은 다 어디서 왔으며 그들은 누구의 생명을 지켜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사건 또한 구조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언제까지 개인의 안전 불감증만 탓하며 근본적인 원인규명과 사후 대책 마련에 소홀할 것인가? 정말로 안전 불감증 환자를 굳이 찾으라면 안전 불감증을 원인으로 내세우는 정부와 언론들일 것이다. 안전 불감증을 운운하며 '재수없게 그 자리에 있었다' 라는 식의 결론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다음 사건을 예고하 듯 위험하다. 하루라도 빨리 세월호 특별법을 비롯하여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연이은 사고를 멈추게 할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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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관 busylife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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