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이 있는 풍경’을 추구하는 연출가 설유진을 만나다
‘관점이 있는 풍경’을 추구하는 연출가 설유진을 만나다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7.10.18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공연지원 선정작 ‘초인종’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예술을 이끌어갈 젊은 예술가를 육성하기 위한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YAF:Arco Young Art Frontier)'. 그 일환인 ’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중 공연예술분야 창작자 부문의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로 선정된 설유진 연출가의 연출작 <초인종>이 오는 10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CKL스테이지에서 재공연된다.

연극 초인종이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공연지원사업인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되며 오는 10월 22일부터 14회 재공연에 들어간다.

초연 당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내용을 간결한 무대 활용과 좋은 연기로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은 <초인종>은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공연지원사업인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되며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기획대관 지원으로 14회에 걸쳐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재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서울 동대문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 인재캠퍼스 내에 위치한 콘텐츠 시연장의 입주 기업으로 선정되어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초인종>의 설유진 연출가를 만났다.

◆아쉬웠던 초연을 뒤로한 새로운 시도

<초인종>은 표면적으로 성폭행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폭행을 방지하거나 근절하자는 메시지보다는 성폭행이라는 외부적인 사건에 대해 가족들이 외면하고 소통하지 못해 한 가정이 붕괴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첫 연출작인 초인종 초연 당시에는 겁도 많이 나고 진행의 미숙함도 있어서 연출적으로 포기한 부분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이번 재공연에서는 실험적인 시도나 하고 싶었던 부분을 최대한 더 해보려 했다” 초연 당시 관객과 평론가들의 좋은 반응을 받았지만 연출가로써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초연과 가장 달라진 점에 대해 설유진 연출가는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여성이라는 점을 꼽았다. 두 남자 배우가 참가했던 초연과 달리 이번 공연에는 ‘수아’, ‘물고기’, ‘아빠’, ‘생각’, ‘엄마’역할 등 출연 역할 모두 여자 배우가 소화했다.

(왼쪽부터)수아역의 황선화, 물고기역의 하영미, 아빠역의 김광덕, 생각역의 황순미, 엄마역의 박지아

“초인종은 이야기 스토리가 굉장히 단순하고 인물들도 전형적이다. 가부장적인 아빠, 사회적으로 권위있는 작가 등 자칫 전형적으로만 비출수 있는 인물들을 남자 배우에게 맡기지 않고 모두 여성이 맡아 좀 더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생경할 수는 있지만 역할이 말하고자 하는 언어와 태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새로운 시도에 대해 설명했다.

또 초연에서 친구, 수족관 아저씨, 작가 등 멀티 역할을 했던 ‘친구’역할이 ‘생각’이라는 역할로 바뀌었다.

‘생각’은 수아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고 상황을 해결하거나 결말로 이끌어 가는 절대적인 존재다. 가족이 외면하고 덮어버리려고 하는 문제를 생각이라는 존재가 친구라는 모습으로, 때로는 작가의 모습으로 나와 가족들을 과거로 밀어넣기도 하고 앞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설유진 연출가는 “극작술 중 하나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로 ‘생각’이라는 역할이 극 중 과거와 현재가 계속 교차하는데 적극적으로 리드를 할 수 있고 관객들도 생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며 이번 재공연에서 생각의 역할이 주는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생각’은 지금 이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극 중 과거와 현재가 계속 교차하는데 적극적으로 리드를 할 수 있고 마치 관객이 생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관객의 생각을 이끌고 객관적이기도 하고 조언도 하고 인물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밀어넣기도 하고 관객과 인물을 모두 생각할 수 있도록 밀어넣는 존재라 생각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녀가 '생각'이라는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초연 당시 <초인종>은 공연장의 공간을 잘 활용한 공연으로도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무대에서도 빈 무대위에 4m 길이의 테이블과 의자, 몇가지 오브제만 놓이고 공연장의 백스테이지와 기둥을 모두 활용할 예정이다.

“초연보다 더 비우는 무대로 바뀌었다. 저는 배우와 조명, 음악이 공연장의 공간을 채울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초연보다 더 모호한 느낌을 주고 싶어 불안정한 삼각형 구도로 잡고 엔딩 역시 서스펜스 느낌을 주기 위해 계속 고민 중이다”라며 무대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초인종...‘관점이 있는 풍경’을 그리고 싶다

설유진 연출가.
설유진 연출가.

연극 초인종은 유달리 동시진행하는 장면이 많다. 아빠는 여과기를 고치고 엄마는 화장을 하고 극 중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물고기는 무대가 마치 작은 어항일 뿐이라는 듯 공연 내내 돌아다닌다. 수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생각은 시도때도 없이 다른 모습으로 나와 관객들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설유진 연출자는 드가의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제각각인 사물들을 내가 어떤 것을 보느냐에 따라 느끼는 풍경이 달라진다”며 “연극 공연을 보면서도 관객들이 개개인의 관점을 가지고 봤으면 좋겠다. 주인공에 집중해 이야기를 무조건 따라오거나 이게 정답이야하고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자칫하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큰 선을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제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관점에 대해 최대한 열어두고 싶었다는 의도를 설명했다.

◆907, 전문성을 갖추다

907은 설유진 연출가가 2014년 작가로 등단하면서 창단했다. 처음에는 극단 907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극단이라는 표현을 과감하게 뺏다. 극이라는 한 분야에 갇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이야기를 포맷으로 자유롭게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겼다.

극작과 연출을 맡고 있는 설유진 대표와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은 작곡가 박지만, 배우 황선화 박지아 황순미 김광덕 강서희, 안무를 맡고 있는 무용수 하영미, 기획과 그래픽·사진을 맡고 있는 권영, 홍보를 맡은 설유정까지 907은 젊은 인재들이 모여 제각각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연극 초인종 연습장면

설유진 연출가는 “저는 포지션이 명확한 것을 좋아해서 기획자와 작곡가, 안무가 등 전문성을 갖추고 공연을 준비했다. 또 907 배우들은 국립극단의 시즌 단원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 배우의 힘을 믿는 연출가 중 한 사람으로 배우와 함께 애기하고 연습하면서 역할에 대해 분석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매우 즐겁다”며 907에 대한 사랑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설유진이 연출하고 싶은 세상

지난 8월 설유진 연출가는 카페를 빌려 <얼굴>이라는 30분짜리 무료공연을 했다. “연극은 영화와 달리 공간적으로 배우와 객석이 한공간에 있고 관객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여전히 객석과의 분리가 존재한다. 또 연극이 고급문화라는 인식이 있어 날 잡고 봐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얼굴>은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가볍게 공연을 보는 새로운 시도의 일환이었다”며 “관객들이 좀 더 쉽게 공연예술을 찾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빨리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많은 공연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할 것 같다.(웃음) 그리고 좋은 생각을 잘 전달되도록 연출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도 담담하게 밝혔다.

설유진 연출가는 다가오는 2018년 1월 서울문화재단의 뉴스테이지에서 이오진 작가의 <누구의 꽃밭>연출을 맡아 준비 중이다. “제가 쓴 작품을 다른 사람이 연출을 한 적은 있지만 다른 작가의 대본은 연출하는 것은 처음이라 제가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면서도 “작가의 세계에서 추론적 산책을 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설유진 연출가와 함께 산책을 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조수진 기자 hbssj@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