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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도 같은 내밀한 고백, 그리고 여운이 주는 위로
  • 성지윤 칼럼리스트
  • 승인 2018.02.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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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상당히 전투적으로 작품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미지의 세계였던 조형예술의 세계. 미술과 사진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그로인한 탐닉은 수많은 작품을 보러 다니도록 발걸음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민병헌 작가는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 작업으로 유명하다.

어떤 것이 유명한 작품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냥 여기저기 다니며 작품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순간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작품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니 작품을 더욱 투명하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던 때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보러 다니던 중에서도 유독 기억나는 작품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삼청동 모 갤러리에서 들어서서 작품을 만나는데 새하얀 빛 같은 어떤 느낌이 차분하게 나를 맞이했다.

단지 사방이 화이트 큐브인 갤러리 내부이기에 맞이하게 되는 느낌만은 아닌 듯 했다. 그것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니 형체를 잘 알아볼 수 없는 하얗고 뿌연 작품들이 갤러리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냥 흰색에 가까운 밝은 톤의 회색 도화지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가까이에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 희뿌연 연기 같은 사각 프레임 속 희미하게 보이는 것들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가까이 다가가 본 그 작품안의 세계는 실로 대단했다. 아련하고도 아득한 느낌. 이것은 정지된 그 안의 세계가 주는 첫 느낌이었고 흰 눈이 쌓인 산과 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배여 나왔다.

조금 더 머물러 작품을 바라보면 형체들이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내고 그 여린 형체들은 내 마음을 빼앗아 애잔한 마음을 불러 일으켰고 먼 곳을 응시하게 했다. 바로 민병헌 사진작가의 작품들이었다.

▲흰 눈이 쌓인 산과 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배여 나온다.

민병헌 작가는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 작업만을 하는 사진가인데 사진을 따로 전공하지 않았지만 1987년 ‘별거 아닌 풍경’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다수의 전시를 통해 한국 뿐 아니라 특히 해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진작가다.

흐리거나 안개가 끼거나 눈이 오는 날에만 사진을 찍음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진 ‘맑은 날 사진을 찍어야 잘 나온다’는 일반적 사진기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민병헌 회색'이라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세계 사진예술계에 통용될 정도로 서정적인 분위기의 회색조는 그만의 독자적인 작업세계로 이미 많은 팬들을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적 미감이 살아 있는 하나의 수묵화 같은 민 작가의 작품들은 구도자의 침묵과도 같이 신비하고 또한 관념적이다.

이러한 구도자의 침묵과도 같은 다분히 명상적이면서도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곡이 있다.

예전에 한동안 미니멀리즘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던 때에 알게 된 음악가중 한명인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거울속의 거울 (Spiegel im Spiegel)은 제목만큼이나 신비스럽다.

영화 ‘Gravity’의 예고편 ‘trailer’와 이 외에도 ‘어바웃 타임’ 등 많은 영화에 등장한 이곡은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3화음의 아르페지오가 한 음씩 이동하며 연주되는 음의 두드림으로 인해 하얀 눈에 새겨진 가녀린 소녀의 발자국 같고 여리게 반짝거리는 은빛 종소리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단순한 화음, 간단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구성되고 조금씩 음의 변화를 주면서 반복, 진행되는 음악이다. 그러므로 정지되어 있는 듯 정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아르보 패르트는 미니멀리즘 음악가 중에서도 ‘영적 미니멀리즘’이라 불리는 곡들을 작곡하는데 그의 곡들은 듣는 이에게 초월적이며 신비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섬세하면서도 영롱한 색채감을 느끼게 한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인 그는 14세부터 작곡을 시작해 탈리닌 음악원에서 작곡법을 배웠고 에스토니아 방송국의 음악부에서 TV와 영화음악을 담당하는 작곡가 겸 감독으로 재직했다.

음악원시절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 바르톡 같은 러시아와 헝가리 작곡가들 외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등을 공부했고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작곡했다.

소련에 대한 염증과 음악적 한계를 느낀 아르보 패르트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적 신비와 과거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에 빠져 깊은 탐구를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 어법을 창조하면서 단순하고도 절제된 음악세계를 펼쳐나가게 된다.

일정기간의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아르보는 ‘종(tintinnabuli)'이라는 음악적 개념을 들고 다시 세상과 만난다.

"나는 단 하나의 음으로도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의 음, 또는 하나의 조용한 박자, 또는 하나의 소리 없는 순간들이 나를 만족시켰다. 나는 아주 제한된 소재-하나의 소리, 2개의 소리 -로 작곡했다. 아주 기본적인 소재-3화음, 하나의 명백한 화음 -로 곡을 만들었다. 3화음으로 만든 3개의 음은 마치 종소리와 같았고 그래서 나는 이를 '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음악개념을 통해 그의 음악들은 간결한 패턴과 음의 진행으로 영적인 느낌을 주며 현대 클래식 음악계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널리 알려지게 된다.

▲아르보패르트(Arvo Pärt)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앨범

그의 음악들. 특히 거울속의 거울을 듣고 있으면 음과 음 사이에서 느껴지는 여백이 순백의 세상 속으로 최면을 유도하는 듯하고 전체적 음악 분위기는 침묵과도 같이 깊고 내밀하다.

사진작가 민병헌이 사진이 오히려 잘 나오지 않는 기법을 통해 자신만의 회색조 색감을 창조해내고 그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가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의 탐구를 통해 더욱 전위적인 영적 미니멀리즘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

이 두 예술가가 구도자와도 같이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

그것은 미디어의 발달과 정보 과잉 그리고 sns의 활성화로 경쟁이 많아지고 그 속에서 상처받고 타인들로 인해 자아가 흔들려 스스로 주인으로써 살아가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제 곧 떠나가는 겨울을 바라보며. 고요한 그들의 세계 속에 침잠하여 침묵 속에 퍼지는 각 작품이 전해주는 여운에 마음의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성지윤 칼럼리스트  claramusic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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