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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로 간 아이들... 차마 보내지 못한 편지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오

리 서로 헤어져도 울지를 말자 가시길을 가도 슬퍼를 말자 기다려라 기다려 기다려다오 광복의 그날 오면 다시 만나리(영화 중 이송이 부른 노래 가사).

사진 제공= 커넥트픽쳐스

바야흐로 11월이다. 모든 것이 깊어간다. 숨이 턱에 차올랐던 지난여름의 폭염도 옛 일처럼 아득하다. 한여름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려있던 조각구름도, 무성한 잎사귀에 쉬어가던 파랑새도 이제는 찾아 볼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하여 나무들도 제 몸에 붙어있던 잎사귀들을 매몰차게 털어낸다. 수액을 공급 받지 못한 나뭇잎은 붉은 피를 토하듯 단풍으로 물든다. 아름다운 단풍. 그러나 단풍잎 한 잎에는 마지막 절규처럼 타는 목마름이 있었으리.

지난 부산영화제 때 태풍으로 발이 묶여서 못 봤던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드디어 봤다. 길 위로 마른 잎들이 떨어지듯, 메마른 슬픔이 툭툭 떨어졌다. 경험하지 못한 6ᆞ25전쟁의 상처가 전이된 것처럼 온 몸으로 아픔이 돋아났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폴란드 시골 마을 ‘프와코비체’의 간이역. 그 간이역 어디쯤에 세월이 정지된 채 멈춰 선다. 플랫폼에는 아이들의 불안한 눈동자가 환영 꽃다발처럼 흔들린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이 65번 바뀐 그곳은 이제 비밀을 간직한 숲으로 변해 있다. 한 마을 전체가 다 북한 아이들 양육원이었던 ‘프와코비체’. 그 비밀의 숲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사진 제공= 커넥트픽쳐스

6ᆞ25전쟁고아들을 동유럽 공산국가로 보내다

6ᆞ25전쟁 중에 김일성은 감당할 수 없는 수천 명의 전쟁고아들을 러시아, 헝가리,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로 보내어 위탁 교육시킨다. 북한군은 전선을 이동하면서 버려진 고아들을 데리고 이동했는데, 그 중에는 남한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남북한 전쟁고아 약 10만 명. 1951년 러시아로 보냈던 전쟁고아들이 건강이 악화된 체 1953년 폴란드로 비밀리에 이송된다. 1500명의 고아들과 10명의 교사들이 1959년 북한으로 송환되기 전까지 폴란드 시골 마을 ‘프와코비체’에 격리되어 살았다.

추상미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폴란드로 간 북한 전쟁고아들의 실화 소설과 폴란드 국영방송의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영화를 준비한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지금은 폐허가 된 ‘프와코비체’의 양육원을 방문하여 당시의 양육원 원장을 비롯한 교사, 의사, 미용사 등을 만나 그때의 상황을 뒤돌아보는 다큐멘터리영화다. 600명의 직원이 1500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시켰다고 한다. 성인 한 사람이 3명의 아이들을 돌봤다니 부모와 자녀처럼 친밀한 관계였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그들을‘파파’, ‘마마’로 불렀다고 한다.

그 여정을 2014년 남한으로 온 탈북 청년 ‘이송’과 동행한다.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겠지만 전쟁고아와 탈북 청년의 문제는 분단의 아픔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커넥트픽쳐스

“같은 민족이라도 같은 민족이 아니구나...” 이송이 남한 사회에서 겪은 속내를 담담히 드러냈다. 감자 두 알을 양손에 쥐고 하나는 남한 친구에게 주고 싶었던 북한소녀가 정작 남한 사회에서 겪었을 충격과 배신감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의 꼭꼭 닫친 마음이 폴란드 여정을 통해 치유되고 회복되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맛난 음식을 먹을 때, 좋은 물건을 볼 때, 시시덕거리며 즐거워 할 때, 문득문득 북한에 두고 온 남동생이 생각나서 결코 즐거워 할 수 없는 그 고통의 무게를 누군들 짐작할 수 있을까?

송이와 송이처럼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수많은 탈북 청소년들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전쟁고아를 자신의 아이들처럼 보듬었던 프와코비체 양육원의 교사들의 순전한 사랑은 그래서 고귀하고 빛난다.

사진 제공= 커넥트픽쳐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슬프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하여 북한에서 온 아이들 편지에 차마 답장을 하지 못한 프와코비체 양육원의 ‘유제프 보로비에츠(91세)원장. 그가 눈물을 흘리며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꼭 전해주세요”라고 당부한 그의 마지막 말이 깊어가는 가을 하늘에 점점이 머문다. 길 위로 마른 잎들이 툭툭 떨어진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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