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버나움 : Capernaum>.... 분노의 얼굴을 보았다
영화<가버나움 : Capernaum>.... 분노의 얼굴을 보았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19.02.0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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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가난의 대물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마태복음11장23절)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를 보는 내내 몹시 불편했다. 불편한 심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레바논내전, 극한빈곤, 난민, 불법체류, 종교분쟁, 인종분쟁, 등등. 무거운 낱말들이 머리에 윙윙거렸다. 먼 나라 남의 일로 흘려듣던 사건들이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됐다. 감독은 영화라는 무기로 “꼼짝 마!! 당신들은 <가버나움>의 포로야!!”라고 말하듯 빈곤과 난민문제를 2시간 동안 처절하게 보여준다. 영리한 감독. 인간의 가장 연약한 감성인 죄책감으로 관객들을 무참히 쓰러뜨린다. 아프다. 몹시.

<가버나움>을 연출한 나딘 라바키(1974) 감독은 레바논 출신. “어떤 이유로든 무시당하는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한 소년의 싸움을 영화로 보여 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대한민국에서는 성공한 것 같다. 근래 다양성영화로는 흔치 않은 개봉 성적이다.

“설령 영화가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감독은 그녀의 믿음대로 영화 이후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하고 난민들을 지속적으로 돕고 있다. 레바논은 현재 난민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 주인공 역을 맡은 ‘자인 알 라피아’는 레바논 베이루트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이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생계를 위하여 10세부터 슈퍼마켓 배달 등 여러 일을 한 소년. 영화 속 ‘자인’처럼 단 한 번도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로 영화에 캐스팅됐다. 영화 이후 지난 2018년 8월 유엔난만기구의 도움을 받아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기쁜 소식이다.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주)

현재 레바논에는 약 1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거주한다. 유엔 난민기구(UNHCR)에 등록되지 않은 난민은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런 연유로 어린 아이들조차 길거리로 내몰려 생계를 담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정규교육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가혹한 현실이다.

영화제목 가버나움(Capernaum)의 의미 

영화제목 '가버나움'의 의미는 도대체 뭐지? 감독은 왜 ‘가버나움’이란 지명을 영화 제목으로 선택했을까? '가버나움'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해변을 끼고 있는 마을 이름이다. 히브리어로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나훔’은 위로자를 일컫는다.  성경 이사야서에는 '가버나움'을 일컬어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고 예언되어 있다. 그 예언 대로 예수는  '가버나움'에서 공생애 기간 중 가장 많은 기적을 행했고 예수의 거의 모든 사역은 갈릴리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베드로를 비롯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등 첫 제자들을 부른 곳도 바로 가버나움 지역이었다. 그러나 ‘가버나움’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는 그들에게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했다(마태복음11장24절, 누가복음10장16절). 감독은 성경의 예언대로 ‘가버나움’을 흑암과 혼돈의 메타포로 차용한 듯하다.

 알 라피아'

출생증명서가 없어서 병원 문턱에서 거절당하는 사람들. 학교도 입학할 수 없는 아이들. 하물며 케첩병에도 제조 년, 월, 일이 표기 되는데 인간이란 증명이 없는 사람들. 비단 레바논 빈민, 난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깝게는 제3국에서 출생한 무국적 탈북청소년들의 문제이기도하다. 그들은 국적이 없기에 교육을 비롯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런 상태로 국내에 들어 온 중도입국탈북자들에 대한 문제는 아직 법으로 보호 받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을 북한인권 단체인 세이브NK에서 다큐멘터리 <경계에선 아이들>(2018)로 제작하여, 제3국에서 출생한 탈북청소년들의 문제를 국내외적으로 환기시킨 바 있다. 출생증명서가 없는 탈북청소년들. 그 아이들 역시 또 다른 '자인’이 아닐까?

 '자인 알 라피아'. 무수한 자인의 눈동자들이 새벽 별처럼 서늘하게 심장에 돋아난다. 웃는 듯 우는 ‘자인’의 눈동자 뒤로 숨겨진 분노의 그늘이 무겁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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