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개정안 유지 vs 폐지 '진통'
낙태죄 개정안 유지 vs 폐지 '진통'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0.10.08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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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 불합치 판정 받아
정부 낙태죄 임신 주수 개정 규정 개정

여성계, 임신 주수 개정은 사실상 낙태죄 존치
낙태 반대파, 임신 주수 개정은 낙태 허용 반발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한 불합치 결론을 내린 후 정부가 낙태죄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진통을 겪고 있다. 임신 기간에 따라 허용 여부와 범위를 추가했는데 여성 단체가 헌재 결정 취지와 다르다고 반발한 것. 낙태죄 전면 폐지는 여성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다. 낙태를 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개정안에 대해 여성계가 반발하면서 진통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편집자주>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지난 9월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임신 중단에 허락은 필요 없다,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뉴시스)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지난 9월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임신 중단에 허락은 필요 없다,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행법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정부는 임신기간에 따라 허용여부와 범위 등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즉, 정부는 입법예고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에서 임신한 여성이 동의할 경우 14주 이내 낙태를 무조건 허용할 것을 밝혔다. 이는 보건의학상 태아가 덜 발한데다 안전한 수술이 가능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15주부터 24주까지의 낙태 조건은 성범죄 등 현행법의 허용 범위 외에 ‘사회·경제적 이유’가 추가됐다. 즉, 소득이 불안정하거나 상대 남성이 육아 책임을 거부하는 상황 등이 해당된다.

사실상 24주까지 낙태 허용

법조계에서는 상담과 숙려기간 뒤에도 낙태를 결정했다면 임신을 유지할 수 없는 곤경한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임신 24주까지 낙태가 허용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는 40일간의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안에 입법을 마칠 계획이다. 헌법에서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는 것이 아닌 수정으로 받아들여서 수정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여성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임신 주수에 따른 처벌 조항이 유지된 것이 헌재 취지 결정에 거스른다는 이유이다. 여성계는 실질적 처벌만 부활시킨 참담한 입법이면서 위헌적이고 시대착오적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낙태를 죄악시 시켜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결국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을 위배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 여성계의 생각이다.

문설희 모두를위한낙태폐지공동행동 위원장은 “주수를 기준으로 한 허용, 상담 숙려기간, 의사 거부권 기준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처벌 기준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는 숙려기간을 폐지하거나 원하는 경우에만 상담을 받는 등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 여성계의 주장이다.

또한 임신 주수를 정확히 판단하기 힘든데 임신 주수를 넣는다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리다.

낙태죄 허용도 만만찮아

하지만 낙태를 반대하는 세력은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것은 심각하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전혜성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운영이사는 “24주면 아기는 엄마가 분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다. 이런 아기를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한다는 것은 명백한 살인행위다”면서 낙태죄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여성 대학교수들도 개정안은 태아의 살인을 정당화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낙태죄를 반대하는 여성계와 낙태를 반대하는 세력이 충돌하면서 정부의 개정안 처리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낙태는 우리나라 법조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제 중 하나였다. 낙태를 허용하느냐 허용하지 않느냐를 두고 여성계와 일부 단체 간의 충돌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낙태 문제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다. 낙태를 했다고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이냐는 것이 핵심 문제이다.

여성계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꾸준하게 제기해왔고, 결국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다만 헌법불합치 판정이 낙태죄 개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면 폐기를 의미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면서 그에 따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공론화 3번 밖에 없어

국회에서도 원죄가 있다. 그것은 공론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헌재의 결정 이후 국회에서 토론회는 3차례 있었던 것이 전부이다.

헌재의 결정이 나온 만큼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공론화 과정을 치열하게 거쳐야 하는데 너무도 조용했다는 점이다.

낙태죄 폐지 여부는 오래된 숙제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국회가 외면했다는 것은 사실상 국회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국회의원들도 낙태죄 공론화 작업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낙태죄를 두고 여성계와 일부 단체의 대결은 논쟁을 넘어 ‘전쟁’으로 이어질 정도로 치열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낙태죄 폐지 찬성 혹은 낙태죄 유지 찬성 등의 의견을 피력하기라도 한다면 성토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섣불리 꺼내들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러다보니 국회에서 토론회가 3번밖에 없는 등 공론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하면서 그에 따른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주현 기자 leejh@koreanews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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