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0.12.02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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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도 코끝 찡한, 한 남자와 이웃들의 이야기

최고의 이웃

그러니까 이게 패드인가 뭔가라는 거지?”
스웨덴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데뷔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첫 장은 59세의 꼬장꼬장한 노인인 오베가 애플 스토어에 들어가 직원을 다그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요즘 시대에 59세의 남자는 할아버지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책에서는 어쩐지 무척이나 늙은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시대, 젊은이들은 뒷면에 사과가 그려진 네모난 상자에 얼굴을 박고 다니며 자잘한 규칙이란 규칙은 죄다 무시하고 국산 차가 아닌 외제 차를 몰고 다닌다. 심지어 최근에 나타난 이상한 고양이는 매일같이 오베의 마당에 들어와 그의 심기를 거스르곤 한다. 오베는 이와 딱 반대의 삶을 살고 있으며, 이들을 절대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함께 섞이고 싶지도 않다. 그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의 뒤를 쫓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무채색이었던 세상 속에 명랑한 웃음을 선사해 준 사람. 오베의 유일한 색. 그의 아내가 사라진 집은 너무나 쓸쓸하기만 하다. 이런 오베가 하는 일은 매일 아침 순찰을 돌고, 온갖 이웃과 싸우고, 하루빨리 세상을 떠나 아내에게 갈 방법을 매일매일 모색하는 것이다. 무서운 이웃, 피해야 할 이웃. 그런 이웃의 틀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바로 오베였으나, 옆집에 두 아이가 딸린 젊은 가족이 이사 오며 그의 삶은 크게 바뀐다. 막무가내 이웃의 끝없이 이어지는 막무가내식 부탁에 휘말린 오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을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으며 돌처럼 굳어있던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가게 된다.

함께 살아가요

오베라는 남자는 외로운 사람이다. 온갖 욕설과 사나운 인상, 분노와 호통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 스스로를 차가운 집 안에 가뒀다. 실제로 그는 분노에 가득 차 있다. 다만 아내와 친구가 그의 곁에 있을 때는 분노도 정제되어 흘러갔으나 모든 게 없어진 지금은 길을 잃고 제멋대로 날뛸 뿐이다. 그에게 아내는 빛이며 인생이었다. 그는 한겨울에도 아내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언 꽃은 파내고 새로운 분홍색 꽃을 심었다. 그리고 울었다. 거구의 사내는, 작디작은 여인의 샴페인 같은 웃음소리가 그리웠다. 보고 싶어. 기어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떨어져 내린 한 마디의 속삭임. 강인했던 그의 육신이 버팀목을 잃고 거꾸라지고 있을 때 나타난 새로운 이웃은 아내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잡아 주었다. 부드럽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압적이고 사랑스러운 손길로. 매일같이 가장 좋은 양복을 입고 아내에게 갈 방법을 모색하던 오베는,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살아났다. 막무가내 이웃 주민들의 온갖 방해는 그에게 새 인생을 주었다. 다시 한번 일어설 용기를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앞으로 나아가기. 오베라는 남자는 결국 아이패드를 사는 데 성공했을까. 까칠하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할아버지의 유쾌한 균열 속에 함께 뛰어들고 싶다면, 어서 빨리 책장을 넘겨보길 바란다.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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