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필립 톨레다노의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Book】 필립 톨레다노의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 김현지 기자
  • 승인 2020.12.16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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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하루하루의 기록
필립 톨레다노,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필립 톨레다노,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시간을 얼리는 법
이 책은 아들이 써 내려간 아버지와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 이 책의 저자인 필립 톨레다노의 아버지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자꾸만 어머니의 행방을 묻는다.

어머니, 돌아가셨잖아요. 입술 끝에 매달린 단어 하나하나가 무겁게 땅으로 떨어진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고를 듣는 매 순간마다 심장이 멎는다.

아버지가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들은 결심한다. 어머니는 파리에 가셨다고 둘러대기로. 이 둘은 이제 파리에 간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함께 테이블에 앉아 달걀 요리를 먹고, 사진을 찍고, 유쾌한 장난을 주고받는다.

아들이 찍은 아버지의 사진 속엔 너무나 슬프고 그립고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감정이 어려있다. 그리고 사랑. 사진 속 아버지의 눈 속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그 아버지를 담은 사진에는 아들의 사랑이 들어 있다.

젊은 시절 키 크고 잘생긴 배우였던 아버지는 이제 너무나 약해져 버렸지만 새카만 눈썹과 형형한 눈동자 속에는 유쾌하고 패기 넘치던 그 시절 청년의 눈빛이 그대로 살아있다.

아들이 사진과 함께 이따금 풀어놓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과거의 기억은 마치 생강 과자의 맛처럼 달큰하고 아릿하다. 시간의 소중함과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야속함, 두 가지의 감정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속을 돌아다닌다.

손으로 꼭 쥐어도 줄줄 새어버리는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그와 아버지의 시간은 붙잡으려 해도 자꾸만 어딘가로 새어나가 버린다. 그래서 아들은 자꾸 사진을 찍는 걸지도 모른다. 셔터를 눌러 순간을 잡아두고 싶어서. 사진 속에서, 글 속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그 순간을 아들과 함께하고 있다.

시간도 지울 수 없는 것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이에겐 어렵고 버거운 존재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겐 포근한 안식처이자 든든한 기둥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느새 작아진 아버지의 등 뒤에 서서 빛바랜 세월을 눈물로 곱씹는 이도 있을 것이다.

좁아진 아버지의 등만큼이나 뒤로 지는 그림자의 폭도 좁아졌다. 아버지의 등 뒤에 숨으면 어느 누구도 날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아버지의 어깨가 많이, 많이 낮아졌다.

이 책의 저자인 필립의 아버지도 그랬다. 봄 여름 가을, 세 개의 계절을 모두 지나 겨울의 끝에 다다른 사람. 머리 위에는 서리가 허옇게 끼었고, 머릿속에도, 서리가 앉아버렸다. 작고 메마른 몸 곳곳에 깊고 얕게 고랑이 파여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아들이 찍은 아버지의 사진의 색은 전혀 밝지 않다.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런 보정 없이 찍은 사진처럼 담담하고, 약간은 어둡다. 독자는 아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그가 써놓은 짧은 글을 읽으며 그의 시선을 공유한다.

그의 시선이 닿는 끝은 언제나 아버지.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 작가는 늙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때로는 슬프고, 울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아버지의 사진을 계속해서 찍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것.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 이것이 그가 택한 방식이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너무나 짧으며 미래는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다. 앞으로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우리가 확실하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직 현재뿐이라. 시간이 지나며 함께했던 기억이 조금씩 옅어지더라도 사진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아주아주 애틋하고 선명하게.

김현지 기자 surica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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