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진작가 양준식… White Vessel 시리즈로 다이소와 전통백자를 연결하다
【인터뷰】 사진작가 양준식… White Vessel 시리즈로 다이소와 전통백자를 연결하다
  • 성지윤 기자
  • 승인 2021.09.01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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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기법을 통해 관객의 실소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자연스레 침투
구본창 작가의 백자 작업을 차용해 다이소 오브제로 재탄생된 ‘White Vessel’ 시리즈

[한국뉴스투데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7, 경기도 안성의 보나카바 스페이스 플러스 갤러리에서 보름간 6명의 청년작가 전시회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이라는 테마로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창작미가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기획과 독창성을 지닌 완성도 있는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화이트 큐브 안에서 6명의 작가의 작품은 제각각의 공간을 점유하고 자신들만의 언어로 관람자에게 말을 건넸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있다. 낯설었던 풍경이 일상이 되고 익숙했던 모습이 낯설어진 현재 상황은 오히려 청년작가들에게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기가 됐다. 본지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나연, 고정욱, 양준식 3명의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세계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희미한 형태로 은은하고도 고고한 자태. 한 여인네가 머리를 단정하게 쪽지고 앉아 조심스레 물레를 돌리는 모습과도 같이 온유하고도 질박한 형태의 작품들이 전시장 한 면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너무나 은근하고 조용해서 눈에 안뜰 법도 한데 그 태가 너무 고와 오히려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고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 작품은 바로 양준식 작가의 <White Vessel> 시리즈다. 보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업은 사실은 다이소라는 스토어에서 파는 저렴한 도기를 촬영한 것이다.

즉 값싼 제품을 귀한 백자로 속이는 장난을 친 작업이다. 백자로 인식했던 것이 사실은 다이소 제품으로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당황하거나 어처구니없어하는 등 실소를 내뱉는다.

이는 작가의 의도가 관객에게 닿는 순간으로 양준식 작가는 부조리를 통한 웃음을 유발하고자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작업을 했다. 작품에 우스운 지점을 설치하고 관객의 실소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관객에게 자연스레 침투시킨다.

작가 양준식이 관객의 마음에 황당함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설치한 장치인 부조리는 진지한 일을 실없게, 실없는 일을 심각하게 말할 때나 모순적인 상황으로 익숙한 맥락이 뒤틀어질 때 작동한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딱딱한 개념들이기 때문에 그 권위를 해체하고 단단한 개념을 물렁물렁하게 만들고자 농담을 사용했다. 그가 취하는 농담의 태도가 특정 개념을 탐구하고 관람객들이 해당 개념에 대해 재고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에 적절한 전략인 것이다.

너희를 백자처럼 표현해 줄게라는 생각으로 작업 진행

양준식의 <White Vessel> 시리즈는, 구본창 작가의 <백자>(영문명 <White Vessel>) 시리즈를 차용한 작업이다. 수많은 복잡한 절차와 긴 기다림을 거친 후 완성된 구본창 작가의 <백자> 작품은 언어로 규명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을 자아낸다.

작품의 이미지가 지닌 묘한 계조와 형태, 조선백자가 지닌 단아한 아름다움과 시간성은 관객에게 아우라를 느끼게 만든다. 양준식 작가는 이러한 <백자> 시리즈에 매료됐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스스로가 매혹된 대상이 사진의 이미지인지 조선백자인지 작품이 가진 내러티브인지 혼란스러웠다. 그의 <White Vessel> 시리즈는 이 지점을 토대로 시작됐다.

양준식 작가는 사진 매체가 가진 힘에 대한 의문과 함께 어떤 식으로 아우라를 발현하는 것일까를 고민하던 때에 구본창 작가의 <백자>를 봤고,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그러던 중, 다이소에 놓인 그릇들을 보면서 만약 이들을 통해 구본창 작가와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작업은 출발했다.

구상에서 실행까지는 약 1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지만, 막상 실제로 찍은 기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매체 탐구를 위해 시작된 작업인 <White Vessel> 시리즈의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

사진 매체에 관한 공부와 생각이 어려웠다. 그리고 구본창 작가의 백자 작업에서 주어지는 아름답고도 은근하게 반하게 하는 느낌을 다이소 오브제들로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와 고민이 뒤따랐다.

이토록 철저한 탐구로 펼쳐낸 작품을 통해 관람자를 자신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양준식 작가는 원래 경제학 전공자였다. 어릴 적 막연하게나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대학 전공은 경제학을 선택했다.

▲다이소 제품으로 표현된 백자. 그리고 아우라
▲다이소 제품으로 표현된 백자. 그리고 아우라

부조리를 통한 웃음 유발하고자,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작업

친구가 빌려준 DSLR 카메라로 여기저기 찍고 다니면서 설레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꼈다. 사진작가에 대해 꿈을 꿨던 직접적인 계기다.

현재 사진학 석사 과정 중이기도 한 양준식 작가는 함께 수업을 듣던 대학원 동기가 전시를 기획하면서 참여를 권유했다전시에 함께하는 분들도 좋았고, 전시장을 찾아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어 뜻깊게 마칠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텍스트 적이라고 생각해왔다사진 이미지를 표현할 때 머릿속에서 논리 구성을 마친 후 이를 기반으로 작업을 했는데 이것에 분명 어떤 애매한 부분이 있음을 감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 작업 방법에 변화를 주겠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방법론을 직관적인 것으로 바꿔서 논리 우선적이기보다 감각 우선적인 작품을 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작업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 논리와 감각이 함께 균형을 맞춰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시도를 계획중이기도 하다.

성지윤 기자 lonlor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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