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와 함께한 굴곡의 현대사 잠들다
노태우와 함께한 굴곡의 현대사 잠들다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1.10.27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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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로 전두환 다음 2인자로 등장
전두환 정권 당시 전두환에 가려진 생활
 
북방 외교는 높이 평가 받고 있어
5.18에 대한 속죄의 마음은 남아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전두환씨와 함께 12.12 쿠데타는 물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한 인물이지만 전씨와는 사뭇 다른 평가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이제 잠들면서 5.18에 대한 진실은 이제 전씨 혼자 안게 됐다. 전씨가 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그나마 세간의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자신의 과업에 대해 용서하는 유언도 남기면서 굴곡진 현대사도 함께 잠들게 됐다. <편집자주> 

사진은 1889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한 행사에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은 1889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한 행사에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하나회 멤버 중 한명인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두환씨의 그늘에 가려 늘 2인자였다. 2인자의 삶을 살게 된 배경에는 12.12 쿠데타가 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속 9사단 29연대를 중앙청에 배치하면서 사실상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하고 2인자의 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시절 늘 전씨의 그늘에 가려져 전씨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초조함이 있었다.

6.29 선언

전씨는 자신의 후계자로 노신영을 앉히려고 하자 이에 반발했고, 결국 민주정의당 대표가 되면서 사실상 전권을 장악,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87년 체제를 다지면서 현재까지 그 체제는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이 사망도 했으니 그에 따른 87년 체제를 이제 극복해야 한다면서 개헌 논의가 앞으로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보통사람’ 구호를 내걸어 13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박정희 정권 이후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북방 정책이다. 소련과도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그동안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다자간 외교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1991년 9월 남북한이 만장일치로 유엔에 가입하는 성과를 이룬다. 또한 남북 화해와 불가침을 선언한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기틀을 다졌다.

이 바탕이 된 것은 88 서울올림픽이다. 서울올림픽이 기존 올림픽과 다른 점은 이념과 인종을 초월한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올림픽에 소련은 물론 동구권 국가들도 참가를 하면서 그에 따라 북방 외교를 할 수 있었고, 이것이 다자간 외교로 기틀을 다지게 된 것이다.

사진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UN헌장 의무수락 선언서에 서명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UN헌장 의무수락 선언서에 서명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민자당 출현

노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성과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와 함께 3당 합당을 했다는 점이다. 이는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정이양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태우의 권력이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권 이양이 됐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에 자연스럽게 정권 교체가 되게 만드는 토양이 된 셈이다.

또한 임기 중 5공 청문회를 열었고, 전씨를 백담사로 유배를 보냈다는 점에서 자신은 5공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퇴임 이후 수많은 역경을 겪어야 했다. 4000억원대 불법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났고, 12.12 쿠데타,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으로 전씨와 함께 구속된다.

징역 17년 형의 법의 심판을 받고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 사면 조치로 석방된다. 하지만 죽는 그날까지 12.12와 5.18에 대한 실체에 대해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54)씨가 지난해 6월 광주 남구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사무총장에게 사죄의 뜻을 밝혔다. (사진/뉴시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54)씨가 지난해 6월 광주 남구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사무총장에게 사죄의 뜻을 밝혔다. (사진/뉴시스)

전두환과 다르게 용서 구한 인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씨에 비해 노 전 대통령이 후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12.12와 5.18에 대해 생전에 용서를 구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은 계속해서 광주를 찾아 아버지의 뜻이라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죽는 그날에도 유언으로 자신의 과업을 용서해달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생애는 비록 굴곡진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였지만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는 점에서 전씨와는 대비 된다.

그리고 그의 삶은 이제 영원히 영면에 들었고 또 하나의 굴곡진 현대사도 막을 내렸다.

이주현 기자 leejh@koreanews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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