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퇴사자의 성희롱 피해 폭로 행위 명예훼손 무죄 판단
대법원, 퇴사자의 성희롱 피해 폭로 행위 명예훼손 무죄 판단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01.24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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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며 상사의 성희롱 내용 등 사내 메일로 전체 발송
1·2심 비방 목적 있어 명예훼손 인정...벌금 30만원 선고
대법원 “성희롱 피해는 사적 영역 아냐” 공익 목적 인정

[한국뉴스투데이] 사내 성희롱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례를 회사에 공유한 행위는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대법원 3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A씨는 지난 2016년 4월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힌 후 상사인 B씨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회사 소속 전국 208개 매장의 대표 이메일과 본사 직원 80여명의 회사 개인 이메일로 발송했다.

‘성희롱 피해 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라는 제목의 해당 이메일에는 “상사가 테이블 밑으로 손을 잡으며 성추행이 이뤄졌고 문자로 추가 희롱이 있었다”며 “절차상 성희롱 고충상담·처리 담당자여서 불이익이 될까 싶어 말하지 못했다. 같은 일을 당한 직원은 고용노동부나 여성부에 신고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상사가 보낸 문자메시지의 내용과 남녀고용평등법 중 직장 내 성희롱 금지 관련 규정 등도 첨부됐다. 이후 A씨는 서울지방노동청에 회사를 상대로 진정을 내기도 했지만 혐의없음으로 처리됐다.

이 사건으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가 전보 조치된 상사는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에 1심은 A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의 행위가) 유부남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더라도 관심을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사건 당시 B씨는 성희롱 고충 담당자가 아니어서 A씨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1년 5개월 뒤 자신이 불이익한 인사발령을 받자 그제야 해당 행위를 문제삼았다”며 “사건이 마치 최근에 일어났고, 성희롱 피해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처럼 사내 구성원들을 오해하게 해 B씨의 불이익을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2심 역시 비방의 목적이 있다는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의 이메일에 공익적 동기가 있다며 1·2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점, 유사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동기를 밝힌 점, 실제로 성희롱 피해 예방 관련 규정 등을 첨부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주된 목적이 공익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현재 직장 내 성희롱 고충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B씨가 과거 성추행 및 성희롱적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에 핵심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문제는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순수한 사적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지난 후 이메일을 발송한 점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 등을 볼 때 성희롱 피해를 곧바로 알릴 경우 직장 내에서의 부정적인 반응 등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며 "신고하지 않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고 해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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