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외치던 '김지하 시인'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외치던 '김지하 시인'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2.05.09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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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문학으로 유명세
유신정권에 저항했지만 말년에는 박근혜 지지
 
출소 이후 생명사상 전파, 사이비 종교 심취
죽음의 굿판 등 보수로 돌아서면서 충격 안겨

김지하 시인이 81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어갔다. 유신독재 정권에 저항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말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변절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김지하 시인의 영면이 단순한 영면이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사의 한 획이 잠을 자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자주>

김지하 시인이 지난 8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사진/뉴시스)
김지하 시인이 지난 8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전라남도 목포시 출신인 김지하 시인은 본명이 김영일이다. ‘지하’라는 필명을 사용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김지하’, ‘김지하’라고 불러 김지하 시인으로 불리게 됐다.

김지하 시인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1970년 저항시 ‘오적(五賊)’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독재에 항거하다가 정권 눈밖에 나면서 필화를 입었고 반공법 위반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석방됐다. 1971년 가수 김민기씨와 함께 야학 활동을 시작했고, 2년 후 김민기는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에서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작곡하게 된다.

민청학력 사건 연루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그해 전남 흥도 영화촬영장에서 체포된 후 최종적으로 사형까지 언도 받았고 1980년 석방됐다.이 시기인 1975년 ‘타는 목마름으로’를 발표했다. 적극적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에 김수환 추기경이 너무 열혈적이라면서 많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김지하 시인의 이런 독재 투쟁 모습에 노벨평화상, 노벨문학상 수상자 추천 명단에 오르기도 했고,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1975년 수상),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정지용 문학상, 만해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김지하 시인은 오적을 비롯해서 타는 목마름으로 등을 통해 감옥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문자로 아름답게 형상화시켰다는 평가를 통해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옥중 생활에서는 미친 듯이 책을 탐닉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선불교, 동학, 생태학 등의 책을 읽었고, 인간과 삶의 진화의 본질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수감생활 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기 시작하면서 생명사상이 움트기 시작했고, 그것이 김지하 시인의 인생 후반부를 관통했다.

장모 박경리 도움으로

출감 이후 장모인 박경리 선생의 도움으로 원주에 기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김지하 시인이 생명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종교단체에서는 그가 사이비 종교에 심취했다는 비판을 내리게 됐다. 여러 종교를 혼합한 생명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대해 못 마땅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보수적인 성향으로 바뀌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91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시위 중 전경의 구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이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게 됐다.

김지하 시인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을 게재하며 진보 진영에서는 김지하 시인의 변절로 충격이 컸다. 이에 운동권 인사들이나 진보 성향 문인들은 김지하 시인과의 사적 만남조차 거부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말년에 박근혜 지지로

당시 정권이나 보수우익세력으로서는 김지하 시인의 칼럼은 운동권을 공격하기 좋은 수단이 됐다. 이 칼럼 이후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 신부는 배후세력설을 주장했고, 공안 당국은 전민련 간부 김기설 자살 사건을 두고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일으켰다. 강기훈은 끝내 재심을 통해 최종적으로 무죄 확정됐다.

2001년 5월에는 ‘실천문학’ 여름호를 통해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 칼럼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후 2012년 11월 26일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당시 대선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혀서 진보 진영에 또 다시 충격을 안겨주게 됐다. 민청학력 사건 재심으로 보상금을 수령했는데 인터뷰에서는 돈을 목적으로 재심을 신청했다고 발언해서 또 다시 충격을 보여줬다.

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안철수 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 대한 비난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리고 5월 8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별세했다.

이주현 기자 leejh@koreanews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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