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 고다르를 추억하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 고다르를 추억하며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2.10.16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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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다르인가? 고다르니깐!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BIFF)14일 막을 내렸다. 열흘간에 차오르던 축제의 흥분된 순간들은, 이제 영화의 전당 길가에 볼품없이 나뒹구는 가로수 낙엽처럼 점점이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축제는 끝났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화 속 어딘가를 서성거린다. 한쪽 발은 아직 영화 속에 깊이 잠겨 있다.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 스틸컷, 장 뤽 고다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 스틸컷, 장 뤽 고다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번 영화제에서는 죽음과 연관된 영화를 몇 편 보게 됐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을 골라 본 것뿐이었는데, 의외로 죽음을 전면에 배치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러시아의 거장 알렉산더 소쿠로프(1951) 신작 <페어리테일: Fairytale>(2022), 멕시코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1963)감독의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BARDO, False Chronicle of a Handful of Truths>(2022), 이란 출신 미트라 파라하니(1975) 감독의 다큐멘터리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 See You Friday, Robinson>(2022) 등은 이번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에서 죽음과 직, 간접으로 연결된 영화들이었다.

소코로프는 70대 초반, 이냐리투는 50대 후반, 파라하니는 40대 후반의 나이다. 설령 세대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나 죽음에 대한 온도 차가 있을지 몰라도 죽음을 대하는 감독들의 접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욕망을 갈구하나 유한한 존재 아닌가.

'페어리테일'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페어리테일'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페어리테일>은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등의 20세기를 유린한 괴물들이 절대자의 심판을 기다리며 림보(imbus, 古聖所)를 유유히 떠돈다. 영화는 독재자들의 아카이브 영상을 디지털로 작업한 후 살아있는 배우처럼 연출했다. 후시녹음으로 제작한 영화다. 과대망상의 폭군들 간의 대화는 정말 괴기스럽고 음습하며 자욱한 안개와 어두운 이미지의 화면은 마치 지옥의 묵시록을 보는 듯 섬찟하다. <페리어테일>은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망상을 꿈꾸던 독재자들은 죽었지만 그들의 악마적 사상은 여전히 세상을 부패시키고 있다.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는 이냐리투의 감독의 서사다. 물론 자전적인 사실을 담은 극영화다. ‘바르도는 죽음과 윤회 사이에 보내는 49일간의 중간계를 뜻하는 티베트 불교 용어다. 바르도가 암시하듯,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신에 죽음을 예측하고 맞이하는 익살맞은 영화다. 자신의 죽음을 환상적인 영화적 이미지로 연출하여 보여 줄 생각을 한 이냐리투 감독의 창의적 풍자가 무겁거나 칙칙하지 않고 환하고 판타스틱하다.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은 장 뤽 고다르(1930~2022)와 이란의 작가이자 감독인 에브라힘 골레스탄(1915~) 간의 예술적 교류를 카메라에 담은 다큐다. 영화는 20148월부터 시작됐다. 스위스 롤(Rolle)에 사는 84세의 고다르와 영국 서식스의 저택에 거주하는 100세가 넘은 골레스탄은 29주간 매주 금요일마다 둘 사이에 문학작품의 글귀, 그림, 영화의 장면, 직접 찍은 동 영상 등을 주고받는다. 교류하는 주제는 문학적이고 철학적이지만, 고다르가 보내는 수수께끼 같은 문자나 익살스런 셀카 때문에 대화는 자주 가볍고 장난스럽게 흐른다. 이 다큐에서 보면 고다르는 이미 병환 중이었고 자발적 죽음을 위하여 주거지를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이주한 상태였다. 고다르와 골레스탄은 영화가 촬영될 때는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영화가 완성되어 프랑스에서 상영될 때 비로소 서로 얼굴을 봤다고 한다. 2022년 베를린영화제 엔카운터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이다.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 스틸컷, (좌로부터) 에브라힘 골레스탄, 장 뤽 고다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 스틸컷, (좌로부터) 에브라힘 골레스탄, 장 뤽 고다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제 중반에 미트라 파라하니 감독이 부산을 방문했다. 영화 상영 후 2차례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고다르를 추억하는 관객들의 질문 공세와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에서, “영화를 믿느냐는 골레스탄의 질문에 고다르는 단호하게 모른다고 답한다. 믿는다고 하면 ? 냐고 묻을 테니깐하며 엷게 웃는다. 마치 어린아이처럼유작인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에서 고다르는 예술에 대해, 특히 영화에 대해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하여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안다. 모든 죽음은 헛됨을...” 시를 읊조리는 고다르의 나지막한 음성은 마치 죽음의 목소리로 울린다.

지난여름 강수연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어려운 시기에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그녀는 이제 부산에 없다. 호기롭게 개, 폐막 선언하던 힘찬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문득 생각난다. 한때의 영광도 무참히 잊혀진 얼굴로 사라지는 세태가 조금은 아쉽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을 추억하는 가을날이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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