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원청 대기업 책임 강조
통계 허점 등 중대재해법 한계 많지만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 시민 변화 체감
[한국뉴스투데이] 지난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에는 산재 사망의 책임이 기업 측에 있음을 강조해온 노동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단순한 조치만으로도 예방 가능한 사고로 인해 노동자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도 책임을 피하는 기업의 행태에 대한 지적도 거듭 이어져왔다. 이러한 ‘기업살인’을 매달 기록함으로써 기업이 노동자 사망의 책임 주체임을 조명해온 노동건강연대의 전수경 활동가를 만났다. <편집자 주>
노동자 사망은 기업 살인이다
노동건강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매일노동뉴스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 대책관련 공동캠페인단(이하 캠페인단)은 지난 2006년부터 매년 4월 ‘최악의 살인기업’ 시상식을 진행한다. 전년도 산재사고로 숨진 노동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기업들이 선정 대상이 된다. 지난 4월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전년도 6명의 노동자 사망 사고를 낸 현대건설이 1위를 차지했다.
노동건강연대는 지난 2001년 창립된 단체로 현 중대재해처벌법의 초기 이름인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을 주도했다. 매년 4월에 이뤄지는 시상식 외에도 매달 ‘이달의 기업살인’을 집계해 발표한다. 아울러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관련한 상담·교육·연구·입법제안 등이 주요 사업이다.
노동건강연대를 포함한 시민들의 긴 제정 운동 끝에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이를 중대재해로 보고,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미이행을 처벌할 수 있도록 정한 법안이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당초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의 취지를 짚었다. “당시 제정 운동의 핵심 취지 중 하나는 기업이 경영 행위로서 산재에 대해 투자해야 하고,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그것을 기업 경영의 실패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중대재해처벌법은 한계도 물론 갖고 있지만, 법 시행 이후로 노동자의 사망을 경영자의 책임으로 보는 시각이 확실히 생겼어요. 가령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해서 대표가 공개적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일도 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으니까요. 산재 사망 자체에 대한 논의도 많아졌고요. 그런 측면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의 취지를 반영했다고 생각합니다.”
구멍 뚫린 노동자 사망 통계
노동건강연대가 정부에 요구했던 의제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의 사망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노동자의 사망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돼온 사회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적 문제로 취급해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노동자가 사망하는 경우 이를 속보로 발표하곤 있지만, 전수경 활동가는 이마저도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기업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그 내용을 고용노동부에 보고하게 되어 있고, 그 정보를 모아 안전보건공단이 공표해요. 그런데 그 속보에는 기업 이름이 써있지 않아요. 노동자의 사망은 공익적인 정보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기업인지는 밝히지 않는 거죠. 그래서 기업 이름이 정확히 공표돼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기업들은 명예훼손 문제를 들먹이면서 거부하고 있고 정부도 거기에 손발을 맞춰주고 있다고 보여요.”
고용노동부가 발표하고 있는 산재 사망 관련 통계 역시 허점이 많다.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화물차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고 개인사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죠. 그러면 화물차 노동자가 운전 중 고속도로에서 사망해도 교통 사고로만 집계되고 산재 사망으로는 집계되지 않으니까요.”
“고용노동부의 산재 통계는 산재 보험 급여 자격이 된다고 인정받은 경우만을 다루고 있으니, 산재 보험이 포괄하지 않는 군인·경찰·교사 등 공무원들의 산재도 노동부 통계에서는 다 빠져 있어요. 이주 노동자들도 체류 자격 문제 등으로 제외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니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는 정확하다고 보기도 어렵고, 노동부가 자기 업무 소관 안에서 보이는 것을 다루는 데 한정돼 있는 수준입니다.”
이에 일하다가 숨진 노동자들의 사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집계 방식을 확대하라는 요구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토론회 등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늘 요구하는 내용이에요. 그러니 정부가 모르지 않겠지만 반영되진 않고 있죠. 지금도 사망이 많은데 더 사망자 수가 더 많아지는 것이 꺼려지는 걸 수도 있겠고, 정부로서는 통상 국민적 관심이 없으면 행정상 인력이나 예산을 투자하지 않으려고 하니 그렇게 지연돼 온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바꾼 것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처벌 가능성을 꺼리는 경영계를 중심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돼왔다. 특히 법 시행 이후로도 사망자 수가 줄지 않았으니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전수경 활동가는 아직 그 실효성을 논하기 이른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말 그대로 처벌에 관한 법이고,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사고가 안 나야 하죠. 그런데 사고를 막으려면 기업이 경영에서 산재를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잖아요. 그런 과정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니 그런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시행 10개월 만에 그 실효성을 판단하는 것은 그저 법을 꺼리는 입장에서의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전수경 활동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시민들의 인식 변화는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중대재해 사고 보도가 있고 나면 사무실로 연락이나 후원이 많이 와요. 고등학생들이 학교 동아리에서 수익 사업을 했는데 사회 단체에 기부하고 싶다며 적은 돈인데도 동아리 이름으로 기부하는 일도 있었고요. SNS를 통해서도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정말 커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죠. 오히려 정부가 시민들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노동건강연대가 다달이 ‘이달의 기업살인’을 집계하고 공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기업살인을 꾸준히 발표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이 기록에 의미를 두고 관심을 가진다는 걸 많이 느껴요.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거나 중요한 자료로 인용되기도 하고요. 그러니 사망이 바로 줄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기록이 하고 있는 역할이 보이니까요. 사망이 줄어들지 않는 문제의 책임은 기업과 정부의 것인 만큼, 저희는 기록의 역할을 다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