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 책임 회피 우려 증폭
소방노조 고발에 이상민 장관 피의자 신분 전환
행안부·서울시 압수수색도...특수본 출범 2주 만
[한국뉴스투데이]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의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가 재난 주무 부처인 서울시·행정안전부가 아닌 일선 실무진에게만 쏠려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공무원 2명이 잇달아 숨진 채 발견되면서 특수본은 서울시·행정안전부 압수수색에 착수하는 등 출범 2주 만에 윗선 책임 규명에 나섰다.
잇단 일선 공무원 사망
지난 11일 낮 12시 45분경 정모(55) 용산경찰서 전 정보계장(경감)이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 경감은 핼러윈 기간 당시 이태원의 인파 밀집에 따른 안전 사고 우려를 경고한 내부 정보 보고서를 참사 이후 삭제하도록 회유하고 지시한 혐의를 받아 왔다.
지난 6일 정 경감은 용산서 정보과장과 함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돼, 피의자 신분으로 특수본의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어 지난 9일에는 대기발령 조치를 받고 직위 해제된 상태였다.
해당 보고서는 용산경찰서 정보관 A씨가 지난달 26일 핼러윈 주간을 앞두고 작성한 것으로,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 안녕 위험 분석’이라는 제목에 3년 만의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인 만큼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본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서울경찰청 첩보관리시스템에 등록됐다가 시스템 관리규칙상 72시간이 지나 자동으로 삭제됐는데, 이를 작성한 정보관의 컴퓨터에서도 원본 한글 파일은 삭제돼 있었다. 특수본은 용산서 정보과 내부에서 해당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하자는 취지의 회유가 있었던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정 경감의 사망에 따라 정 경감의 혐의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하되 관련 수사는 지속할 방침이다. 용산서 전 정보과장을 비롯해 박성민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에 대한 수사는 지속된다. 박 부장은 일선 경찰서 정보과장들이 모인 메신저 대화방에서 감찰과 압수수색에 대비해 정보보고서를 규정대로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편 같은 11일 오후 4시 54분경 서울시 안전총괄실 안전지원과장 A씨 역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서울시는 안전총괄실은 주로 자연재해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로, 이태원 참사와 관련이 없으며 A씨는 수사 대상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A씨가 이태원 참사 후 지역 축제 안전 대책을 긴급 점검하고 참사 관련 심리 회복 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죽음과의 연관성이 없지 않다는 반박이 잇따랐다.
꼬리 자르기 우려
다만 정씨와 A씨 모두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사망의 구체적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수사가 일선 실무진들에게 집중되면서 윗선 문책은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14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고의 책임을 일선 경찰에 돌린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진상 규명은 상·하급 기관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윗선에 소극적인 특수본의 수사 경향이 꾸준히 지적돼온 만큼 우려는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출범한 특수본은 2주간 용산경찰서·용산구청·용산소방서·서울교통공사·이태원역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거듭 진행하면서도 책임 윗선 격인 서울시나 행정안전부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관하며 미뤄 온 바 있다.
이에 지난 14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국가공무원노동조합소방청지부(이하 소방노조)는 특수본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직무유기 및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고발했다. 소방노조는 다중운집으로 인한 재난에 대한 예방 및 대응 업무, 재난안전법상 부여된 재난안전통신망의 고도화 책무를 유기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소방노조는 참사 예견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예방하지 않아 사상자를 낸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이 앞서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이며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을 지휘·감독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해온 만큼, 이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뒤늦게 윗선 향하는 수사
이에 관련 법령을 살펴보겠다고 응답했던 특수본은 16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틀 전인 15일 특수본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 등 행안부 직원을 소환해 참고인 조사한 바 있다. 또 특수본은 17일 행안부, 서울시청,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등 3개 기관의 22곳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압수수색에서 행안부는 재난안전관리본부 서울상황센터, 세종시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안전관리정책관, 재난대응정책관 등 12곳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시는 안전총괄과, 재난안전상황실, 재난안전대책본부 등 8곳,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는 사무국과 전산실 등 2곳이 대상이 됐다.
다만 특수본은 이번 압수수색은 소방노조의 고발 건과는 별개라고 설명하며, 이 장관 고발 건에 관해서는 조만간 고발인 조사를 거쳐 추가 수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압수수색에도 이 장관의 집무실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어 특수본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법령에 따라 해당 사건을 공수처에도 통보했다. 공수처는 앞서 이 장관을 비롯해 윤희근 경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에 대한 고발 건을 시민단체로부터 접수 받았지만 우선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특수본의 통보 이후에도 공수처가 60일 내 수사에 착수하지 않으면 특수본이 사건 수사를 계속 맡게 된다.
한편, 특수본은 18일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을 피의자로 소환해 조사했고, 오는 21일에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조사하는 등 책임 규명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불법 증축 혐의로 입건된 해밀톤호텔 대표이사도 내주 소환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