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커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기업 처벌 완화에 우려
【위클리포커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기업 처벌 완화에 우려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12.0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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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처벌에서 현장의 자발적 예방 지원으로 전환
위험성 평가 의무화 등 규제 신설 꺼리는 경영계
처벌 조항 축소 등 완화 기조에 노동계선 우려도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고용노동부가 처벌 위주의 정책에서 현장에서의 자발적인 예방 노력을 독려하는 내용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 가운데, 기업 처벌 기준 완화 여부를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는 상반된 우려를 내놨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

지난달 30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0.229‱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 감축 정체 문제가 대두되자 이번 감축 로드맵을 마련해온 바 있다. 이번 로드맵에는 ▲예방 체계 확립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집중 지원 ▲안전 의식 확산 ▲산업안전 거버넌스 재정비 등 4대 과제가 담겼다.  

지난해 한국의 사고사망만인율은 0.43‱로, 매년 800명 이상이 일터에서 사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과 건설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노동자 가운데 고령인·외국인 노동자 등 안전에 취약한 계층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과 건설업의 비중이 각각 15.2%, 15.4% 수준인 미국과 영국에 비하면 한국의 경우 33%로 2배에 달한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우리보다 먼저 중대재해 감축 정체기에 직면했던 선진국은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두고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촘촘한 정부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더 이상 사망사고를 줄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며, 적발이나 처벌보다 현장에서의 자발적인 예방 노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먼저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자기규율 예방체계는 노사가 정부 지침에 따라 각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마련하고, 평상시에는 위험성 평가를 통해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스스로 발굴해 제거하며, 사고 발생 시에는 예방 노력의 적정성에 따라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듯 위험성 평가를 활용하는 제도는 이미 지난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도입됐으나 9년간 현장에 정착되지 못했다. 이에 고용당국은 오는 2023년 내 300인 이상 기업을 시작으로, 오는 2025년에는 5인 이상 모든 기업에 위험성 평가 운영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위험성 평가는 ▲위험작업 선정 등 사전 준비 ▲사고 분석 등 위험 요인 파악 ▲위험성 빈도·강도 추정 ▲위험성 결정 ▲개선책 마련 및 이행 등의 단계로 진행된다. 고용노동부는 위험성평가를 충실히 수행한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자체 노력 사항을 수사 자료에 적시해 검찰·법원의 구형·양형 판단 시 고려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처벌에서 예방으로

로드맵에는 가장 쟁점이 돼 온 처벌 조항에 대한 개편도 담겼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내 안전보건기준규칙 전 조항을 필수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핵심규정과 그렇지 않은 예방규정으로 구분한다. 핵심규정은 어기면 처벌이 가능한 조항이지만, 예방규정은 사전 방지를 위한 가이드 제공 수준의 조항이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에는 노·사·정이 추천한 전문가들로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선 TF도 꾸려진다. 중대재해 내 처벌 요건을 명확화하고, 상습·반복·다수 사고에 대한 형사 처벌을 확행하며, 제재 방식 개선, 체계 정비 등 개선안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중대재해 취약 분야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중소기업에 진단-시설개선-컨설팅 등 패키지 지원 ▲노후한 소규모 제조업 리모델링 등 공정 개선 비용 지원 ▲2026년까지 안전보건 인력 2만명 이상 추가 양성 ▲안전관리 전담인력 추가 선임 시 재정 지원 ▲스마트 장비·시설 지원 ▲추락·끼임·부딪힘 3대 사고유형 현장 특별관리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의 중대재해는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소규모 기업에서 80.9%, 업종별로는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72.6%, 사고 유형별로는 추락‧끼임‧부딪힘 사고가 62.6%, 원‧하청별로는 하청 사업장에서 40%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픽사베이)
산업안전보건법 내 안전보건기준규칙은 처벌 가능한 조항과 준수 장려 성격 조항으로 구분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픽사베이)

경영계 “취지 공감하나 규제 신설 우려”

이러한 로드맵 발표에 경영계는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새로운 규제가 다수 포함됐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번 로드맵은 처벌·감독을 통한 타율적 규제의 한계를 언급하며 안전주체들의 책임에 기반한 자기규율과 예방 역량 향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방향 설정에 경영계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총은 “로드맵의 세부 과제를 살펴보면 자율은 명목뿐이고 오히려 처벌·감독 등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있어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해 실시하지 않는 업장에 대한 처벌이 신설된 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의무 설치 대상 확대 등이 오히려 사업장에 부담을 준다는 설명이다.

이어 경총은 “대표적인 타율적 규제이며 과도한 처벌 수준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구체적 개선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습·반복·다수 사망사고 형사처벌 확행 및 중대재해 발생 시 산재보험료 할증 등 사업주 처벌 및 제재 강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역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강한 처벌 규정을 그대로 둔 채 위험성 평가의 의무화를 통한 새로운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 규제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선 기업 처벌 완화 우려

반면 노동계는 기업 처벌을 완화하는 고용당국의 기조에 우려를 드러냈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감독과 처벌의 완화를 동반한 위험성 평가는 실패한 자율안전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위험작업 중지권, 노동자 참여 실질 보장,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처벌 규정과 예방 규정으로 분류한 점, 정기감독을 위험성 평가 감독으로 전환한 점 등을 지적했다. 기업 처벌을 완화하는 한편 노동자의 안전수칙 의무는 강화하는 등 경영계의 지속적인 요구를 반영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민주노총은 ▲오는 2024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데 반해 위험성 평가 의무화 시점은 2025년 이후로 제시된 점 ▲하청 노동자, 건설업, 중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 대책은 전무한 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추진 방안도 미흡한 점 등을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역시 “위험성 평가 등이 일부 강화된 측면이 있으나 작업중지 완화, 노동자 처벌 등 경영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안전보건규제 완화 내용이 곳곳에 박혀있고, 제5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재탕한 수준의 로드맵”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위험성평가 실시 기업의 자체 노력 사항을 중대재해 발생 시 검찰·법원에서 구형·양형 판단 시 고려하는 점을 지적하며 “의무사항인 위험성평가를 마치 대단한 노력을 한 것처럼 포장해 정부가 수사 봐주기로 솜방망이 처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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