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커스】스쿨존 교통사고 잇따르는데...정부 속도 제한 완화 기조
【위클리포커스】스쿨존 교통사고 잇따르는데...정부 속도 제한 완화 기조
  • 정한별 기자
  • 승인 2022.12.24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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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간격으로 스쿨존 내 어린이 사망 교통사고
일방통행로 전환 등 권고에도 예방 조치 미이행
법제처, “스쿨존 속도 규제 비합리적” 완화 권고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한 서울 언북초등학교에서 13일 학생들이 안전 책가방을 맨 채로 등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한 서울 언북초등학교에서 13일 학생들이 안전 책가방을 맨 채로 등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보름 간격으로 어린이 보호 구역(이하 스쿨존)에서의 어린이 사망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를 예방할 기회가 거듭 있었음에도 스쿨존 사고 예방 조치는 미흡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법제처는 외려 스쿨존 내 속도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해 논란이다.

미끄러진 버스에 12세 어린이 숨져

지난 17일 오전 9시 10분경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한 도로에서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던 12살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졌다. 사고 장소는 스쿨존에서 불과 15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해당 도로는 약한 경사가 있는 곳인데, 오전에 내린 눈으로 인해 미끄러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18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40대 버스 기사 A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버스 블랙박스와 인근 CCTV 등을 보내 과속 여부를 포함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해당 버스의 자동운행기록장치에 따르면 버스는 사고 당시 40km로 운행했다. 스쿨존 부근이었던 점, 눈이 2cm 미만으로 쌓여 20% 감속해야 했던 점을 고려해도 시속 50km 제한을 지켰기 때문에 과속은 아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반대편 횡단보도에서 뛰어오는 아이를 발견하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길이 얼어 있어 버스가 바로 멈추지 않고 미끄러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의 1차 조사 결과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 역시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인근 주민들은 사고 이전부터 눈이 오면 차량이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며 수시로 강남구 측에 제설작업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강남구 측은 통행량이 많거나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 제설작업을 우선 진행하고 있어, 해당 도로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현재 강남구청은 관내 도로들에 순차적으로 열선이나 자동염화살포장치를 설치하고도 있지만 해당 도로에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스쿨존서 만취 운전...9세 어린이 사망

지난 2일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인근 스쿨존에서도 한 30대 남성 B씨가 9살 초등학생 C군을 쳐 숨지게 한 사고가 있었다. 이날 오후 4시 57분경 B씨는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C군을 차로 치고, 이후 21m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 주창에 차를 세운 뒤 사고 발생 후 약 48초가 지났을 때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A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08% 이상이었다. 

112·119 신고는 사고 직후 현장을 목격한 주변 가게의 점주들이 했다. 다만 경찰은 B씨가 인근 꽃집 주인에게 신고해달라고 요청한 점, 주차 뒤 약 40초 만에 현장으로 돌아간 점, B씨가 C군을 차로 친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한 점 등으로 인해 도망칠 의사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뺑소니 혐의는 사고 후 복귀 시간, 이동 거리, 가해 운전자 태도, 구호 조처 여부 등을 고려해 판단된다. 

이에 경찰은 3일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위험운전 치사, 음주운전 혐의만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자 C군의 유족과 언북초 학부모 운영위원회는 B씨가 현장에서 즉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뺑소니 혐의가 제외됐다며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5000장 이상 모아 경찰에 제출했다. 어린이보호구역 치사의 형량은 최소 징역 3년이지만 뺑소니 혐의 적용 시 최소 징역 5년이다. 

결국 8일 강남경찰서는 “법률 검토 결과 스쿨존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땐 즉시 정차한 뒤 내려서 구호 조치를 해야 하고, 자동차 바퀴가 한 바퀴라도 더 굴러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면서 뺑소니 혐의를 추가해 구속 송치하겠다고 밝혔다. 9일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된 B씨는 ‘뺑소니 혐의를 인정하느냐’, ‘왜 직접 신고하지 않았느냐’ 등 취재진의 질의에 “죄송하다”고 짧게 답했다. 

20일 서울 강남구 세곡동 스쿨존 인근 교통사고 현장에 추모 물품이 놓여있다.
20일 서울 강남구 세곡동 스쿨존 인근 교통사고 현장에 추모 물품이 놓여있다. (사진/뉴시스)

사고 예방 기회 있었지만

사고 현장은 도로 폭이 약 4~5m로 좁고 가파른 곳이었고, 인도와 차도가 보도로 구분돼있지 않은 보차 혼용도로였다. 과속 단속 카메라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3년 전인 2019년 11월 서울시교육청은 도로교통공단과 함께 서울시교육청 관할 교통안전시설을 점검했는데, 이때 대상이 된 초등학교 20곳에 언북초교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보고서는 이미 “언북초교 후문은 동서 방면으로 차량이 많이 통행하고 급경사로 이뤄져 보차(보행자와 차) 사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차량 감속을 위해 높게 포장하는 고원식 교차로나 노면을 울퉁불퉁하게 돌로 포장하는 사괴석 포장을 도입하고,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운영하는 등 사고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같은 내용을 지난 2020년 1월 강남경찰서에 통보했고, 경찰은 강남구청에 일방통행 적용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같은 해 3월 강남구청은 주민 50명 중 48명이 일방통행 전환에 반대했다고 알렸다. 어린이 사고 위험 등 논의 취지 설명 없이 답변을 희망하는 주민만 의견을 제출하게 한 조사였다. 이에 강남경찰서는 주민 반대를 근거로 일방통행로 변경이나 보도 설치 등 보고서 주문 내용을 일체 이행하지 않았다. 규정 상 스쿨존 내 교통안전시설은 교통안전심의위원회의 의결이나 구청의 주민 의견수렴 결과와 별개로 경찰서장의 지시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지난 2월에도 언북초교는 ‘2022 서울시 어린이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 대상으로 선정됐다. 해당 대책은 보행자 친화적인 도로 교통 환경 조성을 목표로, 폭 8m 이하 도로는 단순한 디자인과 요철이 있는 방식으로 보행로를 포장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언북초교에는 설치가 추진되지 않았다. 

사고 이후 구청, 경찰, 교육청은 대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강남구는 해당 도로를 일방통행로로 지정하겠다고 밝혔고, 경찰은 사고 현장 인근에 ▲단속용 무인 카메라 설치 ▲정지 후 서행 통과를 뜻하는 적색 점멸등 설치 ▲횡단보도 추가 설치 ▲과속방지턱 높이 상향 등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도로교통안전공단, 한국교토안전공단 등에 의뢰해 관내 모든 초등학교 근처 스쿨존 내 안전 점검을 시행할 방침이다. 돌출된 정문 위치 때문에 보도가 끊겨 위험하다는 지적에 따라 교육청은 교문을 학교 안쪽으로 옮기는 공사에도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법제처, 스쿨존 속도 제한 완화 권고

이러한 가운데 지난 14일 법제처 이른바 ‘민식이법’의 일괄적인 속도 제한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결론짓고 스쿨존 규제 완화를 권고했다. 시간이나 요일에 상관없이 상시 적용되는 속도 제한 규정을 완화하고, 스쿨존의 범위를 더 명확하게 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내용이다. 

이는 심야 시간대나 주말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다른 시간대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실태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또 법제처는 연도별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자문협의회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관리 및 시설물 설치까지 논의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확대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민식이법’은 지난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발생한 김민식 군(당시 9세)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마련된 법안이다. 스쿨존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스쿨존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이뤄져 있다. 

앞서 국무조정실 산하 한국법제연구원은 민식이법에 대한 사후 입법영향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신설된 뒤 지난해 3월부터 시행 중인 행정기본법 후속 조치로, 행정부 차원의 사후 평가는 이번이 첫 실시다. 이번 사후평가에는 국민 1000명 대상 대국민 인식조사도 포함됐다. 다만 스쿨존에서의 어린이 사망사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운전자의 편의를 고려한 조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개정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정한별 기자 hanbyeol.o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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