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그건, 바로 너(당신) 때문이야
‘라인’... 그건, 바로 너(당신) 때문이야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1.27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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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분신

이미 늦었다. 격렬한 몸싸움은 끝났고 결과는 참담했다. 모친에게 폭력을 행한 딸에게 판사는 석 달간 100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 경계선 안과 밖으로 갈라선 모녀. 화해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애증의 골이 깊어서일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모녀... 그건 바로 너(당신) 때문이므로.

'라인' 스틸컷, (왼쪽)엄마 역의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첫딸 역의 '스테파니 블렁슈',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라인' 스틸컷, (왼쪽)엄마 역의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첫딸 역의 '스테파니 블렁슈',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나는 어머니와 관계된 것이라면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다". 이탈리아 소설가 엘레나 페란트는 [성가신 사랑](1999)에서 어머니와 딸의 미묘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어머니와 관계된 것이라면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던 딸은 그러나, 자신의 사진 속에서 죽은 모친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바로 엄마였던 것. 흉보면서 닮는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종종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딸들은 엄마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가혹한 것은 사랑할 모친이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참담한 슬픔인가.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반목하는 관계, 어쩌면 이 땅의 딸들은 끝끝내 갚지 못할 사랑의 빚을 안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회한이 사무치면 엄마의 엄마로 다시 엄마를 만나고 싶을까.

'라인' 스틸컷, 첫딸 역의 '스테파니 블렁슈',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라인' 스틸컷, 첫딸 역의 '스테파니 블렁슈',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 <라인>(La ligne, 영제: The Line)은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합작영화다. 가족을 주제로 한 <>(2008), <시스터>(2011)에서 섬세한 연출로 주목받은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의 신작.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크리스티나’(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20세에 첫딸 마르가레트를 임신하면서 솔리스트의 길을 포기한다. 피아노 강습으로 세 딸을 키운 그녀는 포기한 전문 연주자의 길이 늘 아쉽다.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첫딸이 음악가로 성공하면 좋으련만,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딸이 영 못마땅하다. 딸 역시 제 멋대로인 엄마가 마냥 곱지만은 않다모녀에 애증의 깊은 골에는 갈등과 원망의 세월이 담겨있다어찌 크리스티나마르가레트뿐이겠나? 원래 인간이 다 그렇다. 나에겐 전혀 잘못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모두 너 때문이라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앙숙처럼 살 때도 있다. 특히 혈연관계는 더 지독하다.

<라인>너는 나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크리스티나와 딸 마르가레트의 가치관의 충돌을 주제로 모녀 관계와 자매 관계, 이성 관계, 나아가 인간과 신의 관계까지, 세대 간에 가치관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가족 간의 갈등 중에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그렇게 겨울은 깊어가고 법원의 금지 명령 석 달도 끝난다. 금이 간 모녀 사이에도 소생하는 새봄은 올까?

감독은 인간 갈등을 언어로 설득하기보다는 음악으로 보여 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밀한 심연의 갈등과 애증은 점차 음악으로 회복되고 치유된다.

천식을 앓으면서도 구원을 간구하며 찬양을 연습하는 어린 막내딸 마리옹’(엘리 스파그놀로)의 모습은 여느 아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희생과 헌신의 구도자처럼 매사가 진중하다. 모친도 큰 언니도 이해하지 못하는 깊은 신앙심이다. 인간 소망의 기쁨은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소녀의 간절한 기도는 잔잔한 여운으로 스며든다.

'라인' 스틸컷, (왼쪽) 엄마 역의 '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막내딸 역의 '엘리 스파그놀로',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라인' 스틸컷, (왼쪽) 엄마 역의 '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막내딸 역의 '엘리 스파그놀로',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엄마 크리스티나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뮤즈로 불리는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이탈리아)가 맡았다. 그녀는 2022<포에버 영>으로 감독 데뷔한 배우 겸 감독.

엄마와 싸우고 접근 금지를 당한 첫째 딸 마르가레트를 연기한 배우 겸 극작가 스테파니 블렁슈(스위스)는 시나리오 작업에도 동참했다. 스테파니 블렁슈는 이 영화 이전에 나는 깃털처럼 가벼운 사람이라는 일인극을 집필하고 주인공을 직접 연기한 재원. 이미 3개의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한 그녀는 영화 속에서도 기타 연주를 하는 가수로 등장한다.

엄마와 언니의 갈등 속에서 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은 12세 소녀 마리옹역의 엘리 스파그놀로은 이 영화가 첫 작품이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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