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사랑에 미쳐 죽을 수 있다면
‘단순한 열정’... 사랑에 미쳐 죽을 수 있다면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2.03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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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

수위가 높다.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맹목적인 열정에 빠진 여자. 영화 <단순한 열정>은 한 남자와 헤어진 후 그 감정을 적나라하게 쓴 소설 [단순한 열정]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깊은 공감에 긴 한숨이 나올 법한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엘렌 역의 '라에티샤 도슈',  ㈜영화사 진진 제공


'단순한 열정' 스틸컷, 엘렌 역의 '라에티샤 도슈', ㈜영화사 진진 제공

일단, 도덕적 판단은 유보하고 영화를 보라. 유부남과 이혼녀의 만남이라는 불륜을 걷어내고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에로스로만 봐야 불편하지 않다. 영화는 여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엘렌(라에티샤 도슈). 한 사람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육체적 욕망에 점점 빠져들면서 일상이 허물어지는 순간들을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사랑하는 아들 폴을 돌보는 일도 뒷전이 된 엘렌은 애인 알렉산드르(세르게이 폴루닌)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그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엘렌은 자신의 무모한 열정을 구차하게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열정의 근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구태여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어느 날은 충동적으로 알렉산드르가 사는 곳, 러시아 트베르스카야로 달려간다. 춥고 낯선 거리를 서성이는 엘렌은 마냥 행복하다. 설령 그를 만날 수 없어서 쓸쓸하지만, 그와 같은 곳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그 순간이 엘렌은 감당할 수 없이 기쁘다. , 이 정도로 빠져 본 일이 있는가.

때때로 마주치는 여자들을 보면서, 저 여자들도 나처럼 머릿속에 한 남자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한 엘렌. 사랑에 빠지면서 통속적인 유행가 가사는 왜 이리도 쏙쏙 가슴에 파고드는지, 언제 올지 모르는 그에 전화를 무턱대고 기다리면서도 그와 다시 만날 때 입을 옷을 사거나 위스키를 사며, 한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

아들과 떠난 피렌체 여행에서도 머릿속은 온통 알렉산드르 생각뿐. 마치 알렉산드르를 보는 것처럼, 넋을 잃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쳐다본다.

격정의 순간도 결국은 끝이 있기 마련. 알렉산드르와의 관계도 끝을 향하여 갔다. 그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 남자는 이미 엘렌의 마음속에 있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한 남자를 향한 숭고하고 치명적인 욕망의 끝에서 엘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스럽게 고통의 시간은 흘러가고, 알렉산드르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면서 일상은 그만큼 서서히 회복되었다. 알렉산드르와 함께했던 한 시절이 빈 배처럼 텅 비어버리게 될 때,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얼마나 사치한 것인지 깨닫게 된 엘렌.

'단순한 열정' 스틸컷, (왼쪽) 알렉산드르 역의 '세르게이 폴루닌', 엘렌 역의 '라에티샤 도슈',  ㈜영화사 진진 제공
'단순한 열정' 스틸컷, (왼쪽) 알렉산드르 역의 '세르게이 폴루닌', 엘렌 역의 '라에티샤 도슈', ㈜영화사 진진 제공

<단순한 열정: Passion Simple>(2020)의 원작 소설가인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대표 작가.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고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처럼, 감정에 충실한 문장들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많은 사랑을 받는다. 특히 <단순한 열정>은 자신에 경험을 철저히 객관화된 시선으로 개인의 열정이 아닌 보편적 열정의 측면으로 분석하고,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욕망에 대해 고백해 공감과 논란을 동시에 받았다.

연출을 맡은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은 <10일간의 원나잇 스탠드>, <로스트 맨> 등의 전작에서도 관능적인 사랑과 관계를 아름답게 그려내 제60회 칸영화제, 64회 로카르노영화제, 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았다. 그녀는 원작 소설의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자발적으로 사랑에 중독되는 여성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열병과도 같은 사랑에 빠져 자신의 열정과 욕망, 불안을 마주하는 엘렌 역을 맡은 라에티샤 도슈는 <몽루아>, <처음 만난 파리지엔>, <어쩌다 아스널>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2018 뤼미에르영화제 신인여우상 수상한 배우.

'단순한 열정' 스틸컷, 엘렌 역의 '라에티샤 도슈', ㈜영화사 진진 제공
'단순한 열정' 스틸컷, 엘렌 역의 '라에티샤 도슈', ㈜영화사 진진 제공

엘렌의 욕망과 열정의 대상인 알렉산드르 역을 맡은 세르게이 폴루닌은 <댄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는 가장 우아한 짐승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발레리노로 활동해 큰 주목을 받았고, 배우이자 댄서 작가로 다방면으로 역량을 펼치고 있다.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은 알렉산드르 역 캐스팅에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오래전에 잡지 표지에서 잘라낸 세르게이의 사진이 떠올랐고, 영화 속 육체적 탐닉의 대상으로 반드시 그가 해야만 했다라고 캐스팅 일화를 밝혔다.

특히 라에티샤 도슈와 세르게이 폴루닌은 높은 수위의 전라 노출과 배드씬에 도전해 원작 속 육체를 탐닉하는 관능적 문장을 완벽하게 몸으로 표현했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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