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본 칸트’... 널, 스타로 만들어 줄게
‘피터 본 칸트’... 널, 스타로 만들어 줄게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2.17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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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사랑

다분히 연극적이다. <피터 본 칸트>는 배우 지망생 아미르에게 첫눈에 반한 성공한 영화감독 피터 본 칸트의 욕망과 집착을 그린 영화다. 독일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감독의 1972년 영화 <페트라 본 칸트의 쓰디쓴 눈물>을 오종 감독이 매우 세련되게 오마주했다.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피터 본 칸트: Peter von kant>(2022)는 파스빈더의 <페트라 본 칸트의 쓰디쓴 눈물>이 원작이다.

자신의 희곡을 영화로 만든 파스빈더 감독의 <페트라 본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은 남자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여성영화다. 희곡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기에 출연자도 공간도 단출하다. 대신 쉴새 없이 대사를 주고받는다. 원작의 연극적인 요소를 오종 감독은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차용했다. 개인의 권력 구조를 사랑의 관점에서 심도 있게 접근한 원작과 마찬가지로, 오종 또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하는 사이의 소유욕과 질투, 그리고 막무가내의 집착과 구속은 결국, 구속에서 벗어나려 자의 결별로 치달으며 절망의 끝까지 간다. 다만 원작과 다르게 주인공의 성별을 여자에서 남자로 바꾸었다. 여성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 지망생을, 남성 영화감독과 배우 지망생으로. 배경은 똑같이 1972년 쾰른이다.

1972년 쾰른의 어느 가을날. 영화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창가에 내려앉고 넓은 유리창의 2층 거실에 빨간색 커튼이 천천히 열리면서 시작된다. 연극 무대의 막이 서서히 걷히고 밝은 조명 아래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스크린으로 쏟아지는 가을빛이 파스텔톤으로 아름답다. 오래된 도시의 정교한 정물화를 보는 듯하다. 커다란 유리창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뉴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1945~1982). 그는 20대에 영화에 입문하여 3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15년간 40여 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스무 편 가까운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다. 10여 편의 연극 대본을 집필했고, 25편의 연극 작품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 라디오 드라마 연출가, 작사가 등으로도 활동하는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왕성하고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었으나, 1982610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오종 감독은 영화 오프닝 크레딧에 파스빈더의 얼굴 사진을 보여준다. 그에 대한 존경심일까? 아무튼, 이 영화는 파스빈더를 벗어날 수 없다. 양성애자였던 파스빈더처럼, 주인공 칸트(드니 메노셰)는 딸이 있는 양성애자로 나온다. 유명 영화감독 칸트는 어시스턴트 칼(스테판 크레퐁)과 함께 산다. 어느 날, 오랫동안 피터의 뮤즈였던 여배우 시도니(이자벨 아자니)가 찾아와 피터에게 청년 아미르(칼릴 벤 가르비아라)를 소개하고, 연인과 이별한 상실감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피터는 어린 아미르에게 첫눈에 반한다. 아미르에게 영화계의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성공한 감독과 무명 배우는 서로에게 이끌려 동거를 시작하게 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사랑에 금이 간다.

칸트의 모친 로즈마리 역으로 독일의 국민 배우 한나 쉬굴라가 출연하는데, 한나 쉬굴라는 젊은 시절 <페트라 본 칸트의 쓰디쓴 눈물>에서 카린으로 출연하여 통통 튀는 육감적인 아름다움으로 페트라의 애간장을 녹인 아미르같은 역할을 했다. 오종 감독은 새로운 배역으로 한나 쉬굴라를 출연시켜 흐트러진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에서는 늘 약자 편이지만 현실에서는 강자 편에 선 칸트. 위대한 감독이자 인간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지만, 그는 대항하지 못한다.

퀴어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걷어내면 영화는 더없이 아름답다. 1970년 대의 색감과 음악이 어우러진 우아한 미장센의 아름다움은 요즘 영화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아날로그식 미감이 장면 장면에 스며 있다. 무척 근사하다. 영화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연극이 끝나면 막이 내리는 것처럼, 영화가 끝나는 것을 암시하듯, 칸트는 거실의 커튼을 닫는다. 정적 속에 혼자 남은 칸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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