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kg의 초고도 비만자. 심장이 망가졌다. 필요한 혈액을 신체에 공급하지 못하는 울혈성 심부전 환자로 이미 죽음이 문 앞에 와 있다. 그러나 치료를 거부한다. 죽음이 코앞에 와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애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웨일>은 한 남자가 지상에서 허락된 마지막 일주일을 어떻게 씨를 뿌리고 어떻게 싹을 키우는지, 숨가쁜 여정을 둔탁하고 거친 고래의 숨결로 들려준다. 그 숨소리가 때론 노래로 때론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더 웨일: The Whale>은 사무엘 D. 헌터의 연극 <더 웨일>이 원작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답답하리만큼 거의 모든 장면이 실내에서 이뤄진다. 바깥 풍경이라곤 지난날 딸과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바닷가 장면, 피자 배달부가 놓고 가는 비좁은 베란다, 간혹 창문으로 모이를 먹는 새를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물에 갇힌 고래처럼 주인공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실내에 갇혀서 산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다못해 보조 도구 없이는 혼자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비참한 일상이다.
영화는 단순한 서사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단순하지 않다. 죽음 앞에 선 남자는 마지막 시간을 오직 딸을 위해서만 할애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 참 치열하다. 이미 망가져 버린 딸과의 관계 회복은 녹녹하지 않다. 흰고래 ‘모비 딕’을 죽을 때까지 추격하는 포경선의 선장처럼, 고래에 갇힌 성경 속 요나처럼, 찰리는 딸 엘리(세이디 싱크)와의 화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곳곳이 터지고 곪아서 아프고 쓰라리지만, 곪고 터진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기다리며 기다린다. 마침내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용서와 사랑으로 반짝이는 그 순간, 천상의 빛이 부녀를 감싸 안는다. 환한 빛의 향연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문장을 메타포로 은유한다.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마치 ‘모비 딕’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문학적이다. 영화 속 찰리는 모비 딕의 흰고래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텅 빈 바다를 표류하는 소설 속 이스마엘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으로 깊은 심연에 갇혀있는 찰리. 먹먹하고 막막한 심경은 걷잡을 수 없는 폭식으로 이어진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자학적이지만,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겐 더 없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스승이다.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보상받고 싶어서일까? 유독 정직한 글쓰기를 강조한다. 거짓과 허세를 걷어낸 진실한 작문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일 터. 한없이 반항적인 딸에게조차 휘트먼의 시처럼, ‘내가 믿는 바를 그대 또한 믿게 되리라’고 단언한다.
이 영화는 단연 브렌든 프레이저 연기가 빛난다.
그는 크리틱 초이스 어워즈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찰리처럼 비만으로 고통받거나 어두운 바다에 홀로 있다고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두 발로 일어서서 빛을 향해 나아가세요.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라고 위로의 말로 수상의 기쁨을 전했다.
슬픔의 심연까지 내려간 남자, 그 끝에서 비로소 참 빛으로 승화하는 구원의 기쁨으로 환하게 웃는 찰리, 행복한 시절은 되돌릴 수 없지만, 서러워하지 말라고, 고통 속에 숨겨진 오묘한 힘을 찾으라고, 남겨진 딸을 위로하며 떠난다. 굿바이 웨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