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두루미
여우와 두루미
  • 송은섭 작가
  • 승인 2023.03.3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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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두루미 패러디 버전이 필요한 시대”
“개인이든 국가든 관계개선의 본질은 존중과 배려다.”

[개인이든 국가든 관계개선의 본질은 존중과 배려!]

초등학교 2학년 교실. 선생님은 두 아이를 지목하며 일어서라고 하셨다. 조금 전까지 다퉜던 아이들이었다. 두 아이는 곧 손바닥을 내밀어야 할 것처럼 두려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체벌 대신 국어책을 펼치라고 하셨다. 그리고 큰 소리로 한번 씩 읽으라고 하셨다.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를 자신의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두루미는 약속한 시간이 되자 여우네 집을 방문했습니다. 여우는 두루미를 반갑게 맞이하며 곧 둥근 접시 두 개에 음식을 담아 내왔습니다. 그러나 부리가 긴 두루미는 그것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쫄쫄 굶은 채 돌아온 두루미는 여우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 했다고 생각해 앙심을 품었고, 언젠가 똑같이 갚아줄 것을 다짐했습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여우가 두루미네 집을 방문하자 두루미는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왔습니다. 주둥이가 짧아 호리병 속의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여우는 자기가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가 읽은 국어책 속 이야기는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였다. 선생님은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잠시 망설이다가 한 아이가 대답했다.

“‘친구를 골탕 먹이려고 하면 자기도 똑같이 골탕 먹는다’입니다.”

무거웠던 교실 분위기는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 죽일 듯이 노려보았던 다른 아이도 삐죽삐죽 웃음을 참다가 “푸하하하”라며 폭소를 터뜨렸다. 선생님은 조용히 뒤돌아서 칠판에 한자 네 글자를 쓰셨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사람은 늘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친구나 형제간에 다툼이 생길 때 이 말을 꼭 기억해라.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아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법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비틀어진 관계를 개선하려고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본질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관계개선은 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상대방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전략은 자신의 종착지도 벼랑 끝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관계가 틀어진 본질이 무엇인지, 상대는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래야 갈등의 불씨를 완전히 끌 수 있다.

두 번째는 여건조성의 시간이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무작정 내가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어서도 안 된다. 사람의 감정이란 게 모두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여건조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조금 전까지 치고받고 싸우던 아이를 어른이 와서 화해하라고 하면 당장에는 강요 때문에 화해의 모습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악수하는 손과 달리 눈에는 복수의 의지가 이글거릴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충분히 관계개선의 필요성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세 번째는 관계개선의 이행을 보증하는 공증인 즉, 제3자 역할을 두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수는 없다. 직장 생활 간 겪는 관계의 문제라면 적어도 자신과 상대방보다 높은 서열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공증하는 형태가 좋을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라면 양국 모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국가가 중재와 공증에 참여하면 훨씬 더 이행력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나 형제간에 다툼이 생길 때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아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친구나 형제간에 다툼이 생길 때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아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여우와 두루미의 패러디 버전이 필요한 시대]

앞 이야기에 이어서 현시대에 필요한 패러디 버전으로 창작해봤다.

「여우와 두루미는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늘 어떻게 복수할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의 왕 사자가 여우와 두루미 집을 방문했습니다. 여우와 두루미는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자는 양쪽 입장을 모두 듣고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사자는 여우와 두루미를 왕궁으로 초대했습니다. 단, 조건이 있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밥그릇을 챙겨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우는 접시를 가지고 갔고, 두루미는 호리병을 가지고 갔습니다. 사자는 수프를 각자가 가지고 온 밥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여우와 두루미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다 해도, 자신의 밥그릇으로만 마음을 담으면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늘 좋은 관계만 있을 수는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조직의 리더는 이런 변화를 재빨리 감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본질을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세상 모든 이치가 본질을 외면한 채 해결되는 법은 없다. 존중과 배려, 충분한 여건조성, 실행력을 보증하는 제3자의 역할까지, 리더는 틀어진 관계를 개선하는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벌써 4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날의 선생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살면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의 교훈을 얼마나 잘 되새기며 살았는가? 가슴으로는 알지만, 머리는 늘 눈앞의 이익계산을 우선하지 않았는가? 그로 인해 관계가 멀어진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다시 한번 이 짧은 이야기가 얼마나 강한 지혜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송은섭 작가 seop2013@hanmail.net

송은섭의 리더십이야기

인문학과 자기계발 분야 전문 작가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마흔, 인문고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열다>, <지적대화를 위한 인문학 고전 읽기> 등이 있다. 경기대 외교안보학 석사,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유튜버(작가 조바르TV), 팟캐스트(책 읽는 시간)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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