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와 로키타’... 사라지는 아이들
‘토리와 로키타’... 사라지는 아이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5.13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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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 같은 우정

다르덴 형제는 늘 사회 주변인에 카메라를 비춘다. <토리와 로키타> 역시 경계에 서 있는 아프리카에서 온 미성년 이민자에 관한 이야기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지난 전주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유럽에서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 이민자 대다수가 행방불명이 된다는 프랑스와 벨기에 신문 기사가 이 영화의 시작점이라고 밝혔다. 취약한 환경에서 서로가, 서로를 살뜰하게 보듬어 주는 토리와 로키타의 우정은 싱그러운 5월의 신록처럼 눈부시고 아름답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처럼, 로키타의 우정은 토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 준다.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왼쪽)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 토리 역의 파블로 실스, (주) 영화사 진진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왼쪽)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 토리 역의 파블로 실스, (주) 영화사 진진 제공

벨기에 출신의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동생) 형제 감독은 <토리와 로키타, 원제: Tori et Lokita>(2022)를 통해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체류증을 받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일을 선택하고 무수한 폭력에 노출되는 현실을 그려낸다.

다르덴 감독은 우리는 관객들이 이들의 운명에 슬픔을 느끼면서, 용인할 수 없는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기를 바란다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감독은 토리와 로키타를 사회적 피해자로 묘사하기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그리는 데 중점을 둔다.

영화의 토리와 로키타는 어쩌면 실제 10대 미성년 이민자가 처한 절박한 상황일지 모른다. 영화의 토리와 로키타는 물론 실존 인물은 아니다. 감독은 일부 젊은 이민자들은 18세가 되면 유럽 국가 밖으로 추방당하기 때문에, 유럽의 젊은 난민들은 몸을 숨기고 유럽에 남게 되고, 우리 영화에서처럼 마약과 연관된 마피아의 쉬운 먹잇감이 된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가 영화에 영감을 줬다고 한다.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주)영화사 진진 제공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주)영화사 진진 제공

토리는 미성년자 난민 보호 센터에서 만난 누나 로키타를 믿고 의지한다. 정식 체류증을 받지 못해 불법 이민자 신세인 누나 로키타를 곁에서 지키며 하루빨리 체류증을 받아 함께 살기를 꿈꾼다.

난민 지위 심사에 합격해 체류증을 받아 정식으로 취직하여 동생 토리를 학교에 계속 보내고 싶어 하는 로키타 지만, 그 작은 바람이 쉽게 오지 않았다. 로키타는 인터뷰에서 실수를 해 끝내 체류증을 받지 못하고, 결국 위조 서류를 만들 돈을 구하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선택한다. 사회적 시스템의 피해자로 어디서든 폭력에 노출되고 착취를 당하지만,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영화에는 두 곡의 노래가 유의미하게 사용됐다.

하나는 아프리카 자장가인데, 로키타가 토리에게 가르쳐 준 노래고, 또 하나는 이탈리아 가수 안젤로 브란두아르디(1950~)가 불러 유행시킨 알라 피에라 델레스트’(Alla Fiera Dell‘Est, 1976)’.

감독이 " '알라 피에라 델레스트  곡을 쓴 이유를, 북미나 유럽에 이주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자녀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불러 주는 노래"라서 영화에 인용했다고 전했다.

아프리카 자장가는 엄마가 아이에게 불러 주는 아프리카 노래다. 그리고 이탈리아 노래는 토리와 로키타가 유럽에 도착했을 때 이탈리아 여인이 가르쳐 준 노래다. 토리와 로키타는 음식점에서 알라 피에라 델레스트를 부르며 돈을 번다. 동요 같은 멜로디지만 가사가 예사롭지 않다.

더 큰 동물이 더 작은 동물을 때리고, 더 작은 동물을 때린 그 동물을 그보다 더 큰 동물이 때린다는 약육강식을 은유하는 풍자적인 가사가 영화의 주제를 상기 시켜 주며 의미 있게 다가온다. 현존하는 계급 사회의 단면이 연상되어 두 아이의 천진무구한 눈망울처럼 노랫말이 깊이 담긴다.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왼쪽) 토리 역의 파블로 실스, 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 9주)영화사 진진 제공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왼쪽) 토리 역의 파블로 실스, 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 (주)영화사 진진 제공

토리와 로키타를 연기한 파블로 실스와 졸리 음분두는 모두 연기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다.

토리 역을 맡은 파블로 실스는 <토리와 로키타>가 첫 작품이다. 극 중 로키타 캐릭터와 대비되게 체구는 작지만, 생기가 넘치고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토리 역에 안성맞춤 배우. <가버나움> 자인 알 라피아 등,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천재 아역 배우의 계보를 이을 아역 배우로 주목받았다.

로키타 역을 맡은 졸리 음분두 역시 <토리와 로키타>를 통해 첫 스크린에 데뷔했다. 오디션 당시 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상대와 전화하는 연기를 해내어 캐스팅됐다.

졸리 음분두가 맡은 로키타는 정식으로 체류증을 받아 취직한 뒤, 동생 토리를 계속 학교에 보내고, 고향에 있는 가족을 도우려는 캐릭터이다. 공황장애까지 앓는 로키타는 동생 토리와 함께 살아남기 위해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인물.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시작했다.

1978년 나치에 저항했던 벨기에 레지스탕스에 관한 장편 다큐멘터리 <나이팅게일의 노래 Le chant du rossignol>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으로서 행보를 시작했다.

<레옹 엠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 강을 내려갈 때>(1979) , 벨기에의 노동계급과 무산계급의 문제를 다룬 사회성 짙은 다큐멘터리를 연출한다.

1987년 연극작품을 각색한 영화 <잘못된 falsch>을 연출하면서 극영화의 세계로 뛰어든 다르덴 형제는, 1996년에 연출한 <약속 La promesse>이 칸느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면서 주목을 받게 된다. 벨기에의 불법 이민자 문제를 다룬 <약속>은 감독들의 고향인 리에주가 배경으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이어,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십 대 소녀 로제타의 이야기를 담은 <로제타>(1999)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도 다르덴 형제 감독은 소외 계층의 현실을 비춘 걸작들을 탄생시키며 <아들>(2002)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더 차일드>(2006)로 다시 한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칸이 사랑하는 거장으로 우뚝 섰다. 이뿐만 아니라 다르덴 형제 감독은 <로나의 침묵>(2008)으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자전거 탄 소년>(2011)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소년 아메드>(2019)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 마스터클래스: 다르덴 형제,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 마스터클래스: 다르덴 형제,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토리와 로키타>2022년 제75회 칸국제영화제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했다.

동생 뤽 다르덴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형과 의논하고 수정을 거쳐, 리허설 과정을 거친다. 리허설을 마친 후에야 촬영에 돌입하고 촬영은 영화 진행 순서대로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 촬영 첫 장면이 영화의 첫 장면이고, 촬영 마지막 장면이 영화 마지막 장면이 된다. 이번 작품 <토리와 로키타>도 예외는 아니어서 5주 동안 리허설을 하고 촬영을 했다고 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 같은 토리와 로키타의 우정이 5월의 눈부신 하늘 아래 아름답게 빛난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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