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트로바토레(El Trovadore)’... 현대 미국으로 공간이동
‘일 트로바토레(El Trovadore)’... 현대 미국으로 공간이동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6.07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죽 재킷의 루나 백작

2023 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대미를 장식할 폐막작은 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의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이다. 국립오페라단은 베르디(1813~1901) 탄생 210주년을 맞아 베르디 3대 작품으로 꼽히는 <일 트로바토레>622()부터 625()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다. 이로써 지난 54<오페라 갈라 콘서트>로 시작한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일 트로바토레> 공연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 트로바토레' 포스터, 국립오페라단 제공
'일 트로바토레' 포스터, 국립오페라단 제공

사랑과 이별, 죽음을 그린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5.19~21)를 개막작으로 문을 연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역시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로 축제의 막을 내린다. 오페라 공연이 많지 않은 공연 환경에서 오페라 페스티벌은 음악애호가에게는 더할 수 없는 축제이다. 특히 올해는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 공연은 물론, 서울 접근이 쉽지 않은 지방 관객을 위하여 지역공연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전시오페라단의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팔리아치>(6.9~11) 공연은 열악한 지역 오페라 공연에 외연을 넓혀 전 국민이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폐막작인 <일 트로바토레><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 중기 3대 작품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일 트로바토레>1853119일 로마의 아폴로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페인의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스(18131884)의 희곡 엘 트로바도르(El Trovador)를 원작으로 한 4막의 오페라다. 일 트로바토레란 음유시인을 뜻하며, 작품 속 만리코를 암시한다. 집시 여인 아주체나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귀족에게 복수하려다 실수로 자신에 아들을 죽이고 만다. 그녀는 제대로 된 복수를 꿈꾸며 귀족의 둘째 아들을 납치한 뒤 만리코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에 아들처럼 키운다.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만리코는 자신에 친형인 루나 백작과 사랑하는 레오노라 사이의 엇나간 사랑 때문에 결국 파멸한다.

'일 트로바토레' 2막 무대 이미지,국립오페라단 제공
'일 트로바토레' 2막 무대 이미지,국립오페라단 제공

폐막작인 <일 트로바토레>는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원작 <일 트로바토레>15세기 초 스페인 배경을 두 범죄조직에 의해 점령된 현대의 미국으로 옮겨온다. ‘범죄와 내전으로 파괴된 도시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만리코의 조직을 이민자들의 조직으로, 루나 백작의 조직은 백인 우월주의 집단으로 그려 두 세력 간의 대립을 그려낸다. 인종차별과 폭력 등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작품에 녹여내 동시대성을 보여준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만리코는 후드에 청바지를 입고 루나 백작은 제복을 연상시키는 가죽 재킷을 입고 출연하여 두 형제의 대비를 극대화한다.

무대 디자인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할렘가를 연상시키는 이번 무대는 그래피티 등을 활용하여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그려낼 예정이다.

'일 트로바토레' 3막 무대 이미지, 국립오페라단 제공
'일 트로바토레' 3막 무대 이미지, 국립오페라단 제공

출연 가수의 진용이 환상적이다.

<일 트로바토레>의 매력은 각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아리아에서부터 박진감 넘치는 합창에 이르기까지 베르디 음악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레오노라가 만리코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노래하는 고요한 밤이었지(Tacea La Notte Placida)’부터 하이 C로 복수의 비장함과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만리코의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Di Quella Pira)’ 등 각 캐릭터의 특징을 살린 아리아는 가수에게는 고도의 기량을 뽐내는 순간이다.

아리아 외에도 합창곡도 더 할 수 없이 아름답다. ‘대장간의 합창으로 잘 알려진 보라! 끝없는 밤의 장막을(Vedi! Le Fosche Notturne Spoglie)’은 타악기를 이용해 대장간의 망치 소리를 묘사하고, 동시에 집시들의 활기찬 음성의 노래는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의 어깨까지 들썩이게 하는 우렁차고 활달한 리듬의 합창곡이다.

이와 같은 <일 트로바토레>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들이 뭉쳤다. 루나 백작 역의 바리톤 이동환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베를린 도이체 오퍼 극장 주역 가수로 활동했다. 한국 바리톤으로 베를린 도이치 오퍼 극장의 솔리스트는 이동환이 최초이다.

더블 캐스팅으로 출연하는 바리톤 강주원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등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가수다.

형제간의 삼각관계 중심에 있는 레오노라 역에는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후, 스위스 바젤 극장 솔리스트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발탁된 소프라노 서선영과 2018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코지 판 투테> 피오르딜리지 역으로 데뷔하여 주목받고 있는 신예 소프라노 에카테리나 산니코바가 열연을 펼친다.

만리코 역에는 오스트리아 빈 폴크스오퍼의 간판스타로 활약한 테너 국윤종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며 2022년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젊은 테너 이범주가 맡아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아주체나 역에는 매력적인 저음의 소유자이자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메조소프라노 김지선과 양송미가 맡았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2022년 국립오페라단 <아틸라> 연출을 맡아 명화 같은 무대를 선사했던 세계적인 연출가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맡는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로 알려진 마리오 델 모나코의 아들로 1965년 이탈리아 시라쿠사에서 <삼손과 데릴라> 연출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후 58년간 연출가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베테랑 연출가와 함께 호흡을 맞출 지휘자는 2017년 솔티 국제 지휘콩쿠르 최우수상에 빛나는 신예 마에스트로 레오나르도 시니가 맡는다. 2019년 부다페스트에서 푸치니 오페라 <요정 빌리>로 데뷔했다. 이번 작품이 레오나르도 시니의 국내 데뷔 무대다.

<일 트로바토레>624() 15시 공연은 온라인으로도 제공된다. 국립오페라단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로마이오페라와 네이버TV로도 감상할 수 있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