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교복 입은 살인마, 그날의 진실
[사건의 재구성] 교복 입은 살인마, 그날의 진실
  • 박상미 기자
  • 승인 2023.06.10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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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물색부터 살해 도구 선택까지 치밀
사이코패스 점수 28점, 잠재적 ‘연쇄살인마’
살해 동기는 호기심,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 

[한국뉴스투데이] 전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또래 살인’이 발생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부산 금정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과외 중개 앱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23)에 관한 보도가 신문지상에 오르고 있다. 정유정의 사이코패스 지수 검사 결과, 그의 학창시절, 포토샵을 활용한 화장한 얼굴 사진 등 그와 관련된 소식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사이코패스’, ‘은둔형 청년’ 등 그의 정체에 대한 추측이 무성하지만, 그 어디에도 명확한 살인 동기를 찾기가 어렵다. 꽃다운 청년이 또래의 손에 목숨을 잃은 그 날, 사건 현장으로 돌아가 봤다. <편집자주>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뒤 신상이 공개된 정유정(23·여)이 지난 2일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부산 동래경찰서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뒤 신상이 공개된 정유정(23·여)이 지난 2일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부산 동래경찰서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3년 5월 26일, 1999년생 정유정에게는 특별한 만남이 예정된 날이었다. 이틀 전인 24일 과외 교사 아르바이트 중개 앱에서 만난 영어 과외 선생님에게 시범 과외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정유정은 이 앱에 학부모 회원 명의로 가입해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를 가장해 영어 과외 선생님을 물색했다. 본인 인증이 필요한 교사 가입 절차와 달리 학부모는 별다른 인증 절차가 없다는 점을 노렸다.

거절했지만 결국
피해자인 20대 여성과의 만남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과외를 수락했던 피해자가 결정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과외를 하러 정유정의 집으로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피해자의 집과는너무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정유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밝힌 이후에도 계속해서 과외를 해달라고 요구했고, 시범 과외를 해본 후 결정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정의 끈질긴 요구에 결국 피해자가 두 손을 들었다. 맞벌이 부부이니 학생을 선생님 집으로 태워다 주겠다면서 한 번 만나서 상담이라도 해달라는 간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과외받을 학생과의 상담 일정을 정하고 자신의 집으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정유정은 이번에는 학부모가 아닌 학생으로 둔갑했다. 23살이지만 체구가 큰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복을 입으면 충분히 중학생으로 보일 법했다. 정유정은 중고 거래 앱을 이용해 구입한 교복을 입고 학생인 척, 피해자의 집으로 향했다. 5월 26일 4시 20분께다. 약속한 학생이라고 말하니 피해자의 문이 쉽게 열렸다.

피해자의 집으로 들어간 교복을 입은 학생은 결국 가면을 벗었다. 학생 행세를 하며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정유정은 피해자의 집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 피해자를 살해했다. 무방비 상태에 있던 피해자는 정유정이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려 사망에 이르렀다. 

과감한 행보
정유정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피 묻은 교복을 벗고 피해자의 옷으로 갈아입은 정유정은 인근 마트에서 중식도와 락스, 파란색 김장용 비닐봉지를 구입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시신을 옮길 여행용 가방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피해자의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즐거운 여행이라도 떠나는 양 가벼웠고, 활기찬 발걸음에 그의 단발머리라 찰랑찰랑 흔들렸다. 

피해자의 집으로 돌아온 정유정은 훼손한 시신 일부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택시를 탔다. 오후 11시 10분, 행선지는 양산 동면 호포역 인근 낙동강변. 평소 정유정이 산책을 자주 했던 아주 익숙한 공간이다. 일부만 담았지만, 체구가 작은 정유정이 혼자서 캐리어를 꺼내기가 쉽지 않아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았다.

심야에 혼자서 여행용 가방을 든 젊은 여자가 풀숲으로 사라지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광경이었다. 정유정을 태우고, 여행용 가방 내리는 것을 도와준 택시기사는 여행용 가방에서 낯선 물기를 봤다. 손이 젖어 택시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붉은 혈흔이었다. 황산문화체육공원 인근에 시신을 유기하고 여행용 가방을 챙겨 돌아 나오던 정유정은 경찰에 그렇게 붙잡혔다.

택시기사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혈흔이 묻은 가방에 대해 추궁했다. 가방 안에 있는 피 묻은 옷, 이불, 그리고 다른 여성의 신분증까지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확인에 나서려는 경찰에게 정유정은 복통을 호소하며 ‘하혈’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산부인과로 정유정을 데려가면서 그의 범행이 덮이는 듯 했지만, 신분증이 문제였다. 피해자의 신분증을 확인한 경찰이 피해자의 집을 확인해 시신을 발견했고, 정유정을 긴급체포하면서 그의 범죄가 알려졌다.

의문① 살해 동기 ‘호기심’
정유정은 경찰조사에서 “살인에 호기심이 생겨서 범행했다”고 말했다. ‘호기심’이라는 살해동기가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안겼지만, 이는 살해동기에 대해 묻는 경찰조사에서 세 번째로 한 답이다. 지난달 27일 첫 경찰조사에서 정유정은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 상황이었고, 시선을 유기하라고 시켰다”고 진술했다. 

그의 첫 번째 거짓말은 금세 탄로났다. 피해자의 집에 출입한 타인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추궁하는 경찰에게 정유정은 말을 바꿔 “피해자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정유정과 피해자는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디지털 포렌식 분석 결과, 정유정은 올해 2월부터 ‘살인’ 등의 단어를 온라인에서 집중적으로 검색하고 있었다. 범행 석 달 전이다. 우발적 범행이 아닌 오랜 시간 계획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범행 전에는 ‘살인’. ‘시신 없는 살인’, ‘살인사건’ 등을 검색했고, 지역 도서관에서는 범죄와 관련된 소설을 대출한 이력도 확인됐다.
정유정이 범행 대상을 과외 선생님 중에서 물색했다는 점, 혼자 사는 여성을 골랐다는 점, 범행 후 피해자의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 등에서 피해자의 신분 탈취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과외 앱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명문대를 나온 사람일 것”이라며 정유정이 피해자의 신분을 선망하여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아갈 계획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1일 오후 부산경찰청은 '부산 또래 살인' 사건 피의자 정유정(23)의 신상을 공개했다.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지난 1일 오후 부산경찰청은 '부산 또래 살인' 사건 피의자 정유정(23)의 신상을 공개했다.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의문②. 그는 사이코패스인가
정유정이 사이코패스이든 아니든 그의 형량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이코패스 진단 결과는 유무죄 및 양형 요소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정유정은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PCL-R)에서 28점을 받았다.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는 총 20개 문항, 40점 만점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한국은 통상 일반인의 경우 15점 안팎이며, 25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로 간주한다.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강호순은 27점, 조두순은 29점, 유영철은 38점, 이영학은 25점이 나왔다. 정유정은 강호순과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수치 사이 수준이다. 사이코패스 검사를 받았던 다른 범죄자의 성별이 모두 남자였다는 점도 이번 사건과는 차이가 있다. 

정유정의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 결과를 근거로 그가 검거되지 않았다면 연쇄살인마가 됐을 가능성에 대한 의견도 전해진 바 있지만 이에 대한 추가 근거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검거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가정이므로 이미 검거된 정유정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정유정의 경찰 조사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정유정의 진짜 범행동기, 체구가 작은 여성이 단독 범행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검증 등 아직 밝혀져야 할 의문이 많이 남아있다. 경찰은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와 함께 정 씨의 과거 행적 및 성장 과정,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 프로파일러 면접 내용, 수사팀의 조사와 현장 검증 내용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를 이번 주 중에 검찰에 전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미 기자 mii_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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