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개봉 프로젝트... 관객이 움직인다
‘수라’ 개봉 프로젝트... 관객이 움직인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6.18 16: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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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 극장 관객주도 배급

한국 영화의 침체가 생각보다 깊다. 독립영화 배급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극장 상황에서 새로운 배급 형태를 모색한 영화가 있다. <수라>는 관객 주도로 영화를 개봉한다. 이른바 관객이 극장을 대관하는 ‘100개 극장프로젝트다. 전적으로 관객이 주도하여 영화를 개봉한다는 것. 이는 수동적인 관객에서 능동적인 관객으로, 볼 권리의 관객 주권을 지향하는 소비자 운동인 셈이다. 구태의연한 극장 배급 시스템에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수라'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수라'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수라>(Sura:A Love Song)<작별>(2001),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 등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와 생명의 신비를 화두로 던지며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온 황윤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수라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갯벌 중 마지막 남은 갯벌이다. 황윤 감독은 수라 갯벌을 7년간 기록했다. 수라 갯벌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생명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를 비롯해 검은머리갈매기, 알락꼬리마도요, 쇠제비갈매기, 흰꼬리수리, 황새, 흰발농게, 금개구리, 수달, 삵 등 다양한 멸종위기 종이 수라에 서식한다. 황윤 감독은 이러한 멸종위기에 처한 비인간 생명과 그 아름다움에 매혹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7년간 한 땀씩 공을 들여 수를 놓듯, 생명을 관찰한다. 때론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촬영은 이어졌고, 결국 수라 갯벌의 숨겨진 속살까지 환하게 보여 준다.

'수라'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수라'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1991년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전북 군산부터 부안 변산까지 33.9 km에 이르는 방조제를 세워 바다를 막고, 만경강, 동진강 하구의 광활한 갯벌을 메워 간척지로 만드는 사업이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 갯벌이자 주요 습지 생태계가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전 국민적 반대 여론과 어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지만, 정부는 2006년 끝내 바다를 막는 물막이 공사를 강행했다. 군산, 김제, 부안에 이르는, 지구 최대 규모의 광활한 갯벌이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파괴되었다.

그 와중에 기적처럼 살아남은 마지막 갯벌이 군산의 수라 갯벌이다. 경제 논리에 밀려 흙으로 덮어지고 지워진 참혹한 땅 새만금 갯벌 그 끝 언저리에 남아 있는 수라 갯벌은 본래 이름도 없는 갯벌이었다. 이름조차 없는 보잘것없는 갯벌에 이름이 붙여지고 세상에 알려진 것은 갯벌을 사랑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정도 병이라 했던가.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갯벌의 신비에 마음을 빼앗긴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은 비단에 새긴 수라는 뜻의 수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비단에 새긴 수라고 명명했을까.

'수라'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수라'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에는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이 포기하고 단념해도 수라 갯벌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수라 갯벌에 이름을 지어 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인 동필은 목수이자 새덕후이다. 그는 수만 마리 도요새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20년 동안 한결같이 수라의 물새들을 모니터링하고 사진과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다. 그의 아들 승준은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아버지 동필을 따라 수라 갯벌의 새들을 관찰하다 아버지만큼이나 새들과 사랑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며 시민조사단의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쇠검은머리쑥새의 쏭(Song:수컷이 암컷을 찾기 위해 부르는 노래)을 녹음해 그들이 수라에서 번식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승준은 이와 같은 자료가 새만금 신공항 건설 용지로 확정되어 파괴 위험에 처한 수라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밖에 정희정 박사, 김경완 문화인류학자, 유승호 사진작가, 이성실 어린이책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으로 활동하며 갯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민조사단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20년째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시간을 쪼개고 후원금을 모아서 갯벌을 조사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도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물새들, 저서생물들, 그리고 어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세세히 들여다보고 기록해오고 있다.

황윤 감독은 도요새의 군무를 잊지 못하는 동필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수라 갯벌의 시간, 사람, 생명을 7년 동안 관찰한다. 감독은 “<수라>는 국책사업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기록하는 행위로 저항하는 시민들의 이야기이자,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고 영화 제작 배경을 밝혔다.

'수라'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수라' 스틸컷,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관객이 100개 극장 추진하여 동시 상영

<수라>의 제작이 알려진 후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는 곧 <수라>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소리로 이어졌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첫 상영 이후, 정식 개봉 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강릉, 광주, 울산, 제주, 수원, 부산, 인천,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30차례가 넘는 시사회를 통해 4,000명 이상의 관객이 이미 개봉 전에 영화를 관람했다.

제작진은 이 목소리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배급 방법을 모색했다. <수라>를 보고 싶은 관객들이 직접, 자신이 가까운 지역에 극장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관객주도형 배급 캠페인인 ‘100개의 극장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00개의 극장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성환 프로듀서는 독립영화의 배급망은 허약하다. 공동체 상영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객이 추진하는 배급 방식을 모색하게 됐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는 침체한 극장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스러지는 독립영화 시장에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수라> 개봉 당일, 관객들의 힘으로 대관한 상영관 100곳에서 같은 시간에 <수라>를 관람하는 프로젝트다. ‘100개의 상영관을 관객이 직접 대관하고, 관객을 모으고,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 대관을 위한 비용은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모금했다. 이미 후원인 1,106명이 목표액의 169%를 초과 달성하여 개봉 첫날인 21일 저녁 730, 100개 이상 극장에서 <수라>를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관객주도의 시사회가 장기 상영으로 확장되길 바라며,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정희정 활동가는 이 영화는 정말 숨막히게 아름다운 영화다. 수라 갯벌의 아름다움이 영화 속에서 박제되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황윤 감독은 오동필 단장이 경험한 매혹의 순간이 나에게 전이되어 영화 <수라>가 탄생했듯, 영화 <수라>와 수라 갯벌을 본 관객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매혹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길 바란다고 수라 갯벌의 아름다움이 이어지길 소망했다.

<수라>61~7일 개최된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인간과 비인간의 생명이 소곤소곤 교감하는 군산 수라 갯벌로 솟아오르는 붉은 아침 태양이 곱고 찬란하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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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솔 2023-06-22 00:32:44
오늘 관람하고 와서 기사 봅니다 보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