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꿈꾸는 바다
‘밀수’... 꿈꾸는 바다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7.2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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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사랑과 삶의 실루엣

출발이 좋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가 오늘 개봉 첫날, 오전 7시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서 예매량 249,343장을 기록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에서도 예매율 1위를 차지하며 출항 성적이 좋다. 한여름에 수중 영화라 개봉 시기도 시의적절했지만, 한혜수, 염정아 투톱의 서사에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등 출연 배우들의 야무지고 찰진 앙상블이 한여름 극장가를 들썩일 기세다. 모처럼 반가운 활기다.

'밀수' 스틸컷, NEW 제공
'밀수' 스틸컷, NEW 제공

<밀수>1970년대 군천이라는 가상의 소도시가 무대다. 어촌에서 소도시로 막 변모하는 군천. 평온한 바닷가 마을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바다 생태계에 변화가 온다. 더는 바다가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녀들은 해양 밀수를 시작한다.

류승완 감독은 “70년대 배경이라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들, 기억 속 사람들의 행동들, 그들의 비주얼, 대중스타들의 모습 등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모든 기억을 총망라해 타임머신 여행하듯 관객들이 빠져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붙었다며 제작 배경을 밝혔다.

감독의 자신감은 어디서 온 걸까? 1973년생인 감독의 어린 시절엔 부친이 중심에 있었다. 부친이 영화와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부친은 경양식 집을 운영하며 DJ(disc jockey)도 겸했고,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영화에 쓰였다고 한다. 어쩌면 감독이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에 이야기를 입힌 것이 <밀수>가 아닐까 싶다.

음악과 영화를 좋아했고 옷도 잘 입었던 멋쟁이 부친이 유독 그리웠을까? <밀수>는 어쩌면 부친에게 보내는 헌정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밀수>는 음악이 한몫한다. 마치 시대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음악의 멜로디에 빠져든다. 음악감독은 장기하가 맡았다.

'밀수' 스틸컷, (왼쪽)조춘자 역의 김혜수, 고옥분 역의 고민시, 엄진숙 역의 염정아, NEW 제공
'밀수' 스틸컷, (왼쪽)조춘자 역의 김혜수, 고옥분 역의 고민시, 엄진숙 역의 염정아, NEW 제공

배우들의 찰진 앙상블

류승완 감독은 조춘자(김혜수)와 엄진숙(염정아)을 캐스팅할 때 김혜수, 염정아가 동시에 떠올랐다고 한다. 오랜 시간 지켜봐 온 배우의 팬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감독으로서 두 배우가 활약해주는 영화가 제작되길 바랐던 것은 오히려 감독 그 자신이었다고 한다.

<밀수>에서 김혜수는 <타짜>, <도둑들> 등에서 보여줬던 팜므파탈적인 매력과 또 다른 매력의 춘자를 보여줬다. 염정아는 진중하면서도 의리 있는 해녀들의 리더로서 진숙의 진솔한 모습을 안정감 있게 보여줬다. 동전의 앞, 뒷면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춘자와 진숙의 티키타카 호흡도 속도감이 있는 긴장감으로 드라마에 몰입하게 한다.

권 상사 역의 조인성은 <모가디슈>에서와 다른 액션을 보여 준다. 장도리 역의 박정민과 류승완 감독은 2014년 단편 영화로 이미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류승완 감독은 당시 무명 배우였던 박정민의 원석 같은 매력을 알아보고 옴니버스 영화 <신촌좀비만화>에 단편 <유령>의 인물로 박정민을 캐스팅했다. 이후 외유내강 작품 <시동>, <사바하>에 출연한 박정민은 <밀수>에 합류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배우 김종수는 <시동>에서 눈여겨본 후, 캐스팅한 배우. 베테랑의 풍모와 연기적인 기술까지 모두 갖춘 김종수는 <밀수>에서 이장춘 역으로 극에 안정감을 준다.

영화 <마녀>, OTT <스위트홈> 등 화제작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떠오른 배우 고민시는 <밀수>에서 고옥분 역으로 맛깔나게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밀수' 스틸컷, 조춘자 역의 김혜수, NEW 제공
'밀수' 스틸컷, 조춘자 역의 김혜수, NEW 제공

그동안 수평 액션이 아닌 수직의 액션 영화에 관심이 갔던 감독은 <밀수>로 어느 정도 소원을 이룬 것 같다. 영화 후반의 바닷속 액션은 색다른 영화적 재미를 준다. 슬로모션의 수중 액션의 맛이 흥미진진하고 몰입감을 준다. 해녀들의 물속 움직임은 수중 발레를 보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감독은 70년대 부산에서 있었던 여성 밀수에 대한 논픽션 책을 읽은 후, 오랫동안 영화 소재로 마음 한 곁에 담아 두었었다고 한다. 기회가 닿아 마침내 흘러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영상으로 재탄생시켰다.

담배, 양주, 바셀린, 크래커, 청바지 등등 생활필수품이 밀수되던 시절, 가난했던 그 시절, 그때의 그 공간과 그 사람들은 지금 사라지고 없어도,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은, 치열했던 그때의 삶은 환상처럼 스크린을 매혹한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이들의 고단한 꿈과 우울한 실루엣이 환하게 슬프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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