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트’... 비밀의 숲
‘이노센트’... 비밀의 숲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9.09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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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속삭임

<이노센트: The Innocents>는 노르웨이 장르 영화다. 10세 전후의 아이들이 주인공이란 점이 남다른 공포를 유발한다. 어른의 눈을 피하여 놀던 아이들의 놀이는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죄악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 상처받기 쉬운 유년의 뜰에서 겪는 어른의 무관심은 비밀을 공유한 또래와 어울리며 다른 힘으로 표출되고, 점점 강해지는 분노의 응징은 범죄로 이어진다. 작은 돌멩이에 파장의 위력은 섬찟하다.

'이노센트' 스틸컷, 이다 역의 라켈 레노라 플뢰툼,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노센트' 스틸컷, 이다 역의 라켈 레노라 플뢰툼,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를 연출한 에실 보그트 감독은 “<이노센트>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관객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감독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고, “어린 시절을 항상 행복했던 순간처럼, 그리운 마음으로 기억하기 쉽지만, 사실 모르는 게 정말 많기에 두려운 시기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감독은 뒤엉켜 있는 유년의 기억 창고에서 그 시절의 두려움과 판타지를 정교하게 끄집어낸다. 부모의 눈을 피해 숨어서 하던 작은 악행은 친구와 함께 공유하면서 놀라운 쾌감으로 확장되던 시절. 그 천진난만 불온한 기억들 위에 위태로운 <이노센트>가 세워졌다.

부모의 온전한 보살핌에서 막 벗어난 나이가 10세 전후가 아닐까 싶다. 허락받고 혼자서 놀이터에 갈 수 있는 나이, 또래 친구들과 비밀이 생기는 나이, 부모에게 거짓말을 시작하는 나이가 10세 전후가 아닐까.

'이노센트' 스틸컷, (왼쪽)언니 안나 역의 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 이다 역의 리켈 레노라 플뢰툼,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노센트' 스틸컷, (왼쪽)언니 안나 역의 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 이다 역의 리켈 레노라 플뢰툼,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다(라켈 레노라 플뢰툼)와 안나(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한 후 또래인 벤자민(샘 아쉬라프)과 아이샤(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를 만난다. 네 명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하여 비밀의 숲에서 그들만의 놀이를 한다. 그러나 네 아이의 관계는 곧 균열이 온다. 벤자민은 특별한 잠재 능력을 계속 키워나가고, 급기야 잠재 능력을 이용해 사람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호기심과 장난으로 시작한 일들이 분노의 감정과 이어지면서, 벤자민은 통제 불능으로 자신의 힘을 사용하게 된다. 그 힘으로 자신을 조롱했다고 생각한 친구 아이샤를 죽게 한다. 이 사실을 안 이다는 벤자민이 자신과 언니 안나까지 해칠 것이란 걸 직감한다. 아이샤와 교감하며 잠재 능력을 발휘하던 안나의 능력은 그러나 혼자서는 아무 힘도 발휘 못 한다.

에실 보그트 감독은 점점 커지는 벤자민의 악행을 도덕적으로 응징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물론 벤자민의 고통과 두려움도 방관한다. 예컨대, 감독이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를 본 관객이 맑은 물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듯이, 각자의 유년 시절을 솔직하게 만나길 원한 것 같다.

이다가 언니 안나를 야무지게 꼬집거나 운동화 속에 유리 조각을 넣는다든지, 혹은 지렁이를 밟아 뭉개버리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부모 눈을 피해 자행하던 못된 짓 한두 개쯤은 있을 터니깐.

'이노센트' 스틸컷, 영화의 배경이 된 주택 단지 전경,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노센트' 스틸컷, 영화의 배경이 된 주택 단지 전경,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자폐증 증상이 있는 언니 안나 때문에 부모의 관심에서 소외된 9살 이다 역의 라켈 레노라 플뢰툼, 자폐아 안나 역의 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 물체를 움직이는 초능력이 있는 벤자민 역에 샘 아쉬라프, 자폐의 안나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아이샤 역에 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 등 네 명의 아역 배우들의 열연이 극의 긴장을 배가시키며 몰입감을 준다. 무엇보다 에실 보그트 감독의 섬세한 각본과 연출력이 돋보이는 놀라운 수작이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자란다. 매일 보는 동네 풍경의 한 귀퉁이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웅성거리는 소리는 일순간 무료한 한낮에 정적을 깨운다. 그 안에는 이다, 안나, 벤자민, 아이샤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비밀 아지트를 만들고 짓궂은 놀이에 흠뻑 빠져있을 아이들. 오늘도 유년의 비밀의 숲에는 아름다운 가을 햇빛이 놀고 있을 것이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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