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보스톤’...국뽕다운 국뽕영화
‘1947 보스톤’...국뽕다운 국뽕영화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09.27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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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291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손기정. 그러나 그는 일본인 손 키테이의 이름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47년 보스턴. 손기정은 마침내 대한민국과 서윤복을 세계에 알렸다. 황토 먼지 속에 땀방울이 새벽이슬처럼 빛나던 청년들의 얼굴엔 조국을 향한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1947 보스톤' 스틸컷, 서윤복 역의 임시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47 보스톤' 스틸컷, 서윤복 역의 임시완 배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47년은 미군정 시기다. 미군정은 19458월 광복 이후 미합중국 육군 제24군단이 점령하여 194599일부터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조선총독부서 한반도의 행정권, 치안권 등을 이어받아 38도선 이하 한반도를 통치했다. 1947년은 대한민국 공식 정부가 없는 무정부 시기란 뜻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 국적의 손 키테이이름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손기정은 일본의 탄압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아가던 중, 베를린 올림픽에서 친분을 맺었던 미국 선수 존 켈리로부터 보스턴마라톤대회 참가 권유를 받는다. 우여곡절 속에 1947년 손기정은 감독으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인 남승룡, 서윤복 선수를 인솔하여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서윤복은 1946년 제1회 전조선 마라톤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 같은 해 9월 제1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 10월 전국체육대회 등 3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유망주 마라토너였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이 그에게 걸림돌이 됐다. 손기정 같은 마라토너가 꿈이지만, 현실은 그에게 꿈을 버리게 했다. 변변한 운동화조차 없는 그에게 마라토너는 사치였다. 먹고 사는 일이 먼저였고 꿈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었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윤복은 손기정 감독과 남승룡 코치의 지도로 1947년 마라톤대회 참가를 위한 훈련에 돌입하고, 1년도 안 되는 훈련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한국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내 사명이다. 나라 없는 설움도 크지만, 나라가 있어도 알려지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라고 말한 그는 애국심으로 뜨거웠다.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며, 정부 수립도 되지 않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2시간 253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동양인 최초의 수상이다. 서윤복의 페이스메이커로 35세의 나이로 출전한 남승룡은 12등을 한다.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대표 마라토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감독은 영화 <마이웨이>(2011)를 연출할 당시, 주인공 준식(장동건)을 마라토너를 꿈꾸는 인물로 설정하면서 언젠가 꼭 마라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마이웨이>는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조선 청년 준식(장동건)과 일본 최고의 마라톤 대표선수 타츠오(오다기리 조)가 마라톤 경쟁자에서 끝내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 여정을 담은 시대극이다. 그 후, 감독은 <1947 보스톤>의 시나리오를 받고 이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1947 보스톤' 스틸컷, 손기정 역의 하정우 배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47 보스톤' 스틸컷, 손기정 역의 하정우 배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를 보기 전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대극이라 왠지 진부하지 않을까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기우였다. 장면마다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대 고증에 무척 공을 들인 흔적이 장면마다 진솔하게 스며있다. 극을 이어주는 에피소드도 설득력 있게 공감이 됐다. 손기정이 사주는 평양냉면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는 서윤복의 먹성에 절로 평양냉면이 먹고 싶어진다. 보스턴대회 막바지의 난코스인 하트브레이크 힐(Heartbreak Hill)을 달리며 서윤복이 지난날 무학재 고개를 달리는 회상 장면은 욱! 눈물이 핑 돌았다. 관객도 숨을 몰아쉬며 서윤복과 함께 달리는 순간이다. 마라톤 영화의 백미가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좀 더 오래 달리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극에 몰입을 준다.

영화는 2020년에 완성됐다. 3년 만에 극장개봉이다. 전화위복. 국론이 양분된 현 국내 정치 상황에 참 시의적절한 시기에 개봉한다. 1947년으로부터 76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고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뒤돌아보게 한다. 손기정 역에 하정우, 서윤복 역에 임시완, 남승룡 역에 배성우가 출연하여 열연한다. 지금 우리에겐 국뽕다운 국뽕 영화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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