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2주년 특별기획】 불안한 일상…철근 빠진 아파트, 무너진 신뢰
【창간 12주년 특별기획】 불안한 일상…철근 빠진 아파트, 무너진 신뢰
  • 박상미 기자
  • 승인 2023.10.23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근 빠진 지하주차장, 입주 앞두고 불안감 호소
고개 숙인 LH, 철근 누락 조직적 은폐 집중 추궁
"입주 못 한 책임은 누가"…보상금 두고 진통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뉴스투데이] LH 아파트, 이태원이라는 두 단어에서 연상되는 공통어는 ‘불안’ 그리고 ‘참사’다. 안정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던 아파트와 젊음의 활기가 기대되던 두 공간에서 우리가 목도한 참사는 일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을 야기했다. 국정감사의 핫이슈가 된 참사에 대해 살펴본다.<편집자 주>

건축물에 적합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거나 적정한 시간을 지키지 않고 불성실하게 시행한 공사를 부실공사라 한다. 부실공사로 올린 건물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이 없는 문제다. 높은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부실 공사된 건물로 인해 서민들의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한밤중에 ‘쿵’
아파트 신축 현장의 지하주차장 지붕이 한밤중에 ‘쿵’하고 무너졌다. 지난 4월29일 밤 11시30분경 인천 서구 원당동 ‘검단 신도시 안단테’ 건설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1층 지붕층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늦은 밤 사고여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예정된 올 12월 입주는 불가능해졌다. 더욱이 무너진 천장 상부가 공원과 놀이터를 조성할 예정이었던 터라 입주민의 안전에 대한 불안이 치솟았다.


사고의 원인으로 철근 누락이 지적됐다. 시공사인 GS건설은 “자체 조사 결과 철근 30여 개가 시공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무너진 지붕 구조물(슬래브)은 상부 철근과 하부 철근 등 두 개 층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연결하는 전단보강근 일부가 빠졌다는 설명이다. GS건설은 초음파 촬영을 통해 설계와 다르게 시공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부분을 발견했다”며 “시공사로서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후 ‘철근 누락’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15곳에서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7월31일, 국토교통부는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 가운데 보강 철근을 누락한 15곳의 명단과 설계·시공·감리업체의 정보를 공개했다. 10곳은 철근을 설계 단계부터 빠뜨렸고, 5곳은 시공 과정에서 누락했다. 공사 과정을 감시해야 할 감리는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공사 중인 경기도의 한 단지는 보강 철근 154개 전부를, 입주를 마친 충북의 한 단지는 123개 중 101개가 빠졌다.

보 없이 기둥만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무량판 구조에서는 보강 철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철근이 누락된 이 아파트 건설현장들을 두고 ‘순살 아파트’라는 비판 섞인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아파트 부실 공사는 국민의 거주 공간의 안전성과 직결되는 만큼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아파트 현장 및 이미 입주가 완료된 아파트에서도 유사한 사고들이 발생해 국민들의 불안을 키웠다. 마감이 덜 된 상태에서 입주가 시작된 충북 충주시의 민간 임대 아파트, 서울역 센트럴자이아파트 하루 필로티 균열, 경기 양주시와 대구 수성구 침수 사고, 인천 미추홀구의 옹벽 붕괴 등 아파트에서 시공 하자로 인한 사고가 이어졌다.

고개 숙인 LH
‘철근 누락’ 사태는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1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최근 논란이 된 ‘철근 누락’ 사태와 이 과정에서 불거진 전관 특혜 의혹에 대한 집중 추궁이 진행됐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서 인천 검단 아파트 단지에 대해 “정식으로 승인절차도 거치지 않은 것인데 발주처로서 현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LH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LH가 설계도면 변경에 필요한 사전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부실시공에 대한 조직적 은폐도 지적됐다. 같은 당 이소영 의원은 “(주거동 외벽 철근 누락) 사건이 보도되기 전인 지난 8월에 LH는 검단 21블록 현장 감리단장을 해임했다”며 “철근을 누락한 것도 문제이지만 적당히 숨기고 넘어가려는 LH 태도가 더 불안감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허영 의원도 “국민적 요구로 LH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LH의 ‘철근 누락’ 사태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한 목소리로 질타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은 “이슈가 터지면 하나씩 정리가 돼야 하는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숨어 있던 적폐들이 새롭게 확인되는 모양새”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도 높은 조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일벌백계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보상안 합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권영세 의원은 “LH와 시공사인 GS가 책임을 다투면 안 된다”면서 “LH도 발주처로서 책임이 있으니 모든 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임해달라”고 주문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재차 머리를 숙이며 강도 높은 쇄신을 약속했다. 이 사장은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설계·시공·감리 등 전 프로세스를 강도 높게 쇄신하고 개선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전관 특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LH의 설계·시공·감리사 선정 권한을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달청이나 전문기관에 업체 선정을 위탁하는 등 기능을 분리하면, 전관의 입김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지난 8월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남부지역본부에서 LH가 발주한 아파트의 철근 누락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지난 8월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남부지역본부에서 LH가 발주한 아파트의 철근 누락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상 둘러싼 진흙탕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로 새 집 입주를 기다리던 주민들은 결국 내 집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모양새다. 시공사인 GS건설과 LH 간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GS건설은 LH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LH는 시공사인 GS건설의 책임에 무게를 싣고 있어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GS건설은 앞서 국토교통부의 사고원인 발표 당시, 장문의 사과문을 내고 "자이 브랜드의 신뢰와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판단해 전면 재시공을 결정했다"면서 "입주시기 지연에 따르는 피해에 대해 충분한 보상과 상응하는 비금전적 지원까지 전향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LH는 GS건설이 전면 재시공, 입주 지연 보상을 독자 결정 및 발표한 것이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LH의 이런 입장은 앞서 국정감사에서도 확인됐다.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의 책임 묻는 질문에 "GS건설 잘못"이라며 "LH가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피할 이유가 없지만 설계책임 문제는 법상, 계약서상 모든 게 GS건설이 지도록 분명히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입주 지연에 따른 보상금은 크게 3가지다. 지체 보상금과 주거지원비, 중도금 대위변제가 그것인데, 지체 보상금은 LH가 우선 책임을 져야한다. 계약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LH는 입주 예정자들에게 우선 입주 지연금을 선지급하고 GS건설에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다. 주거지원비는 GS건설에서 부담한다. 이를 위해 GS건설은 입주 예정자들에게 6000만원 무이자 대출을 제시했으며, 이에 대한 부담을 LH와 나눠질 것으로 요구했다.

LH와 GS건설이 지난 17일 국토부 중재로 비공개 회의를 가졌지만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등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LH 관계자는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이날 서로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로 회의가 끝났다"고 설명했다. 양측 관계자는 오는 27일 예정된 국토교통부 종합국감 전까지 최대한 보상안 관련 의견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박상미 기자 mii_media@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