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리마스터링’...안개의 미학
‘만추 리마스터링’...안개의 미학
  • 곽은주 기자
  • 승인 2023.11.05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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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개봉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김태용 감독의 <만추>4K로 리마스터링한 버전인 <만추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한다. 12년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는 여전히 신선하고 여전히 애잔한 서정으로 스며든다. 이국적인 늦가을 시애틀 거리와 놀이공원의 환상적인 무대와 안개로 뒤덮인 하이웨이 간이휴게소, 그 어디쯤을 걸으며 애나의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듣는다.

'만추 리마스터링' 스틸컷, (왼쪽)훈 역의 현빈, 애나 역의 탕웨이, ㈜에이썸 픽쳐스 제공
'만추 리마스터링' 스틸컷, (왼쪽) 훈 역의 현빈, 애나 역의 탕웨이, ㈜에이썸 픽쳐스 제공

수인번호 2537번 애나(탕웨이). 그녀는 중국계 이민자다. 7년째 수감 중인 그녀는 어머니의 부고로 3일간의 휴가를 받는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탄 시애틀행 버스에 쫓기듯 탄 훈(현빈)이 그녀에게 차비를 빌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7년 만에 만난 가족도 시애틀의 거리도 온통 낯설기만 한 애나. 두려운 마음에 감옥으로 돌아가려고 터미널을 서성이다가 훈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둘은 관광객처럼 시애틀 투어로 하루를 같이 보낸다. 그리고 이튿날. 애나 모친 장례식에 참석한 훈은 식사 자리에 함께한 애나의 첫사랑과 실랑이를 벌이고, 급기야 애나는 울지도 못하고 내색하지도 못했던 첫사랑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며 서럽게 운다.

'만추 리마스터링' 스틸컷, 애나 역의 탕웨이, ㈜에이썸 픽쳐스 제공
'만추 리마스터링' 스틸컷, 애나 역의 탕웨이, ㈜에이썸 픽쳐스 제공

애나에게 허락된 72시간에 휴가의 끝은 다가오고, 감옥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동승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출옥하는 날 만나자는 약속을 남긴 채, 작별 인사도 없이 훈은 사라진다. 그로부터 2년 후 애나는 출옥하자마자 훈이 말한 장소로 간다. 훈이 그곳에 못 온다는 것을 뻔히 아는 애나지만, 그녀는 인기척이 나는 문 쪽을 힐끔거리며 훈을 기다린다. 2년간 간직한 그리움의 집이 너무 컸나.

다시 오지 못하는 과거의 단풍잎처럼 사라진 사람이지만, 오늘만큼은 훈을 추억하며 기다린다. 어디에도 없는 그를 향하여, 또한 암울했던 자신의 과거를 향하여 인사한다. “안녕. 오랜만이야라고. 안개는 걷혔고,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수놓인 맑은 시애틀 하늘 아래서 그녀는 새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만추 리마스터링' 스틸컷, (왼쪽) 훈 역의 현빈, 애나 역의 탕웨이, ㈜에이썸 픽쳐스 제공
'만추 리마스터링' 스틸컷, (왼쪽) 훈 역의 현빈, 애나 역의 탕웨이, ㈜에이썸 픽쳐스 제공

<만추>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관한 영화다. 버스는 누구나 쉽게 접하는 이동 수단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버스 안에서 사건이 생기지는 않는다. 애나는 버스 안에서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난다. 거래처럼 주고받던 손목시계와 10불짜리 지폐는 어느새 사랑의 증표처럼 상징적인 물건이 되고, 변덕스러운 시애틀의 기후는 사랑의 배경이 된다. 72시간은 인생에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2년 만에 스크린으로 재개봉하는 <만추 리마스터링>에 대해 김태용 감독은 어떤 느낌일지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번 리마스터링 버전에는 탕웨이가 직접 부른 만추곡이 엔딩곡으로 삽입되어,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더욱 깊게 완성한다.

곽은주 기자 cineeun6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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